성한용
이른바 보수는 지금 통합이 아니라 새로운 깃발이 필요하다. 박세일 교수가 제시한 세계화, 공동체 자유주의, 선진화, 선진통일은 보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였다. 박세일 교수의 뒤를 이을 보수의 이데올로그는 누구일까?
2000년부터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소중히 하는 ‘공동체 자유주의’를 주장했다. 2006년부터는 ‘대한민국 선진화’를 산업화·민주화 이후의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고, 2010년부터는 ‘선진통일’을 21세기 한반도 비전으로 제시했다.
현실 정치에도 깊숙이 개입했다. 2004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위기에 처한 한나라당은 박세일 교수에게 비례대표 공천을 맡겼다. 박세일 교수는 윤건영 연세대 교수(4번), 박재완 성균관대 교수(10번), 이주호 교육개혁연구소장(12번) 등 정책 전문가들을 끌어들였다. 이들은 훗날 이명박 정부에서 중용됐다.
비례대표 2번으로 국회의원이 된 박세일 교수는 여의도연구소장, 정책위의장을 맡아 한나라당을 정책 정당으로 변모시키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2005년 세종시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자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하며 의원직을 사퇴했다.
2006년 선진화와 통일을 연구하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창립해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그 뒤 2012년 국민생각을 창당해 서초갑에 출마했지만 3위에 그쳤다. 그는 2017년 1월 별세했다.
이른바 보수의 선동가들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욕할 때, 그는 “금융개혁, 공공개혁, 노동시장 유연성 등 시장주의적 개혁을 추진하면서, 복지 확충, 균형발전, 부동산 세제 개혁 등 평등을 위한 정책도 추진했다”고 평가했다. 좌우 정책의 혼합을 긍정적으로 본 것이다. 그는 “21세기는 ‘성장도 복지도’, ‘개방도 보호도’ 함께 해야 하는 시대”라며 “정책 패키지가 필요하다”고 했다. 탁견이다.
박세일 교수의 주장이나 행보가 다 옳다고 볼 수 없다. 그러나 그가 이른바 보수의 가치와 비전, 대한민국 국가 전략을 끊임없이 고민한 경세가(經世家)였다는 사실을 부인하기 어렵다.
최근 정가의 화두는 야권통합이다. 국회 곳곳에 펼침막과 포스터가 나붙고, 기자들 휴대폰에 야권통합 단체 결성이나 토론회 안내 문자가 쏟아진다.
2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통합과 혁신 준비위원회’가 주관한 ‘대한민국 위기극복 대토론회’가 열렸다. ‘플랫폼 자유와 공화’ 공동의장 박형준 전 의원, 박인제 변호사가 주도했다.
주제는 ‘위기의 대한민국과 보수의 성찰’이었다. 박형준 전 의원은 “대한민국 주류가 자기반성과 성찰을 통해 올 하반기부터 대안적 주도세력을 구성해나가자”고 제안했다.
‘통합과 혁신 준비위원회’는 오는 27일 2차 토론회를 열고 ‘통합과 혁신을 위한 우리의 결의 선언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내용이 뭘까? 결국 반문연대를 구축해서 2020년 4·15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기자는 결론을 내놓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공허하다. ‘왜’(why)가 빠졌기 때문이다.
사실 야권통합은 이른바 보수와는 거리가 먼 정치 의제다. 야권통합이 처음 등장한 것은 1991년이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탄생한 거대 민자당의 폭주에 맞서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제1야당이었던 신민주연합당의 김대중, 꼬마 민주당의 이기택·노무현·이부영 등이 손을 잡았다. 그 이후에도 1997년 디제이피(김대중·김종필) 연합, 2008년 통합민주당(손학규), 2011년 민주통합당(한명숙·이해찬) 등 야권통합 사례가 있다.
야권통합의 명분과 목표는 정권교체다. 1997년 디제이피 연합에서 정권교체 절박감은 최고조에 달했다. 야당 지지자들은 ‘유신 본당’과의 제휴도 용인했다. 야권통합 중에서 1997년 야권 연대가 유일하게 성공을 거둔 이유다.
최근 야권통합, 보수통합의 명분은 뭘까? 정권교체? 약하다.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은 죄를 짓고 재판을 받고 있다. 이른바
보수는 지금 통합이 아니라 새로운 깃발이 필요하다.
광복 이후 이른바 보수의 유일한 이데올로기는 반공이었다. 분단 기득권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박세일 교수가 제시한 세계화, 공동체 자유주의, 선진화, 선진통일은 보수의 새로운 이데올로기였다. 박세일 교수의 뒤를 이을 보수의 이데올로그는 누구일까? 이데올로그가 없으면 이데올로기가 없다. 이데올로기가 없는 정당은 아무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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