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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돈 한국외대 정치행정언론대학원장 ⓒ 힌산재단 | 새 정부가 출범했다. 10년 만에 이루어진 정권 교체 때문인지 정부조직개편부터가 범상치 않더니만 장·차관, 국·과장 등 인적 교체를 둘러싼 소리없는 아우성과 어수선함이 관가를 휩쓸고 있다. 여기에 4월 총선까지 겹치면서 정부는 정무적으로나 정책적으로 그야말로 격변의 시기를 지나고 있다.
격변기의 한 특징은 불확실성의 증대에 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나게 될 지, 또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할 지 아무도 가늠하기 어려운 것이 격변기의 한 특징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격변기에는 통상 구질서의 해체는 급속히 진행되는데 반해 이를 대체하는 새로운 질서로의 재편은 상대적으로 더디게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Ⅰ. 격변기를 거치고 있는 우리나라 정보화 및 전자정부 정책: 위기와 도전
현재 정보화 및 전자정부 정책 분야는 이런 류의 격변이 특히나 두드러진다. 정부조직개편으로 정보통신부의 업무는 행정안전부, 지식경제부, 방송통신위원회 등 3개 기관으로 분해되었다.
이것만으로도 가히 기존의 질서는 무너졌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새로운 질서, 즉 새롭게 무엇이 어떻게 시작되는 것인지에 관해선 정부 어디에서도 드러나고 있는 것이 없다.
대선의 경선 과정에서도 본선 과정에서도 여야를 막론하고 정보화나 전자정부에 관해 아무런 공약이 없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새 정부의 국정 비전과 과제, 전략 어디에도 ‘정보화’나 ‘전자정부’라는 글자가 들어있질 않다.
이 점은 대통령 취임사에서도 마찬가지였고, 관계 부처 장관의 취임사와 대통령에 대한 관계 부처 장관의 업무 보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청와대 비서실에서 어느 비서관이 전자정부나 정보화를 챙기는 것인지도 알려진 바 없다.
전두환 대통령 시절 이래 처음 벌어진 일이다. 바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전자정부에 관한 한 세계 1위니 5위니 하던 나라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Ⅱ. 현 상황에 대한 세간의 설명: 완료론, 신뢰론, 차별론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인가? 떠도는 세간의 이야기는 크게 3가지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완료론이다. “그 동안 정보화와 전자정부에 관해선 정부가 할 만큼 했다”라든가, “그 동안의 노력으로 세계 최고 수준에 올랐으니, 더 이상 정부가 나서서 집중 투자할 곳이 없다”는 식의 설명이다.
둘째는 신뢰론이다. 정보화나 전자정부는 그 동안 정부가 잘 추진해 온 분야로서 새 정부가 특별히 강조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잘 진행될 것이라는 믿음이 깔린 설명이다.
셋째는 차별론이다. 전자정부는 역대 정부들이 역점을 두어 추진한 것인데 정권 교체에 성공한 새 정부가 또 다시 정보화나 전자정부를 중점사업으로 추진하는 것은 역대 정부와의 차별성을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Ⅲ. 실제의 상황은? 그리고 진정 지금 필요한 것은?
필자는 이 세 가지 설명 모두 사실이 아니거나 부적절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 설명은 모두 정보화와 전자정부는 과거 산업화 시대에서의 부의 창출 방식과 정부 운영 방식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르고 거부할 수 없는 문명사적 변화에 대한 이 시대의 국가적 생존 전략이라는 것을 부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선 완료론은 사실에 근거한 설명이 아니다. 정보화 및 전자정부와 관련하여 그 동안 우리 정부가 한 것은 이 시대의 문명사적 변화의 규모와 강도에 비춰볼 때 완료론의 설명과는 달리 겨우 시작에 불과할 뿐이다.
그럼에도 현재 세계적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다른 나라들보다 비교적 일찍 진지하게 정보화 및 전자정부 사업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결코 할 만큼 한 것이 아니다. 지금까진 우리보다 앞서 있는 나라들의 것을 참고하며 부지런히 이들을 따라잡으면 되었다.
하지만 선두에 선 지금에서 이제 더 이상 참고할 대상이 없다. 스스로 창조적으로 길을 개척하여 나가지 않으면 험난한 문명사적 조류에 표류하다 좌초하게 될 뿐이다. 아마도 앞으로 상당 기간 정보화와 전자정부 사업은 “끝이 있을 수 없는 이야기”(a never-ending story)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이처럼 완료론이 성립하지 않으면 신뢰론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다. 신뢰론의 한 전제가 바로 완료론이기 때문이다.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거대한 문명사적 조류를 고려해 볼 때 정보화 및 전자정부와 관련하여 역대 정부들이 한 것에 만족을 표하는 것은 샴페인을 너무 일찍 터뜨리는 경솔함이다.
그럼에도 더 이상 강조하지 않고 그냥 두어도 관계 정책 기관에서 앞으로도 해당 업무를 잘 수행할 것이라고 믿는 것은 너무나도 안이한 생각이다.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은 신뢰로 포장된 방치가 아니라 지금까지 해 온 것에 대한 냉철한 자기반성과 문명사적 변화에 대한 심도있는 해석에 근거하여 정보화 및 전자정부에 대한 새로운 관점에서의 전략적 강조와 거침없는 추진이다.
이상의 관점에서 볼 때 차별론은 다분히 시대착오적인 생각임이 분명해진다. 정보화와 전자정부는 정권 간 차별을 논하기엔 21세기 국운이 걸린 너무나 중차대한 문명사적 과제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기존의 정부들이 강조했던 정책 의제를 죽이거나 피해가는 소극적인 차별이 아니라 기존의 정부들과는 진단과 처방, 규모와 질 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른 정보화 및 전자정부 비전과 사업, 전략을 구사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기는 적극적 차별이다.
Ⅳ. 제언
이런 시대 인식과 현실 진단에 입각해 볼 때 새 정부에서 시급히 취해야 할 조치들을 제안하면 다음과 같다.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전자정부’의 개념을 ‘정보화’라는 보다 큰 틀에서의 개념으로 재정립하는 일이다. 그 동안 정보화는 정보통신부가, 전자정부는 행정자치부가 관장해 오면서 ‘정보화’는 기술산업적인 것이고, 전자정부는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하여 정부 내부의 일하는 방식이나 국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방식을 혁신하는 등의 응용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정보화와 전자정부 정책이 행정안전부로 일원화되었다. 산업적 측면에서의 정보화와 정보보호는 각각 지식경제부와 방송통신위원회로 분리되었지만, 이런 상황에선 ‘정보화’가 무엇이고 ‘전자정부’는 그런 ‘정보화’와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정립해야 한다.
그래야 행정안전부는 명실상부하게 대한민국의 정보화와 전자정부를 책임지는 부처로 자리매김될 수 있다. 이러한 개념 재정립의 핵심은 정보화를 공공부문 정보화와 민간부문 정보화로 나누는 것이고 기존의 전자정부라는 것이 바로 공공부문 정보화로 대치되는 것이다.
둘째, 새 정부의 국정 운영 방향과 궤를 같이 하는 전자정부 비전과 목표, 사업들이 하루 빨리 마련되어야 한다. 새 정부는 새로운 국가발전전략의 비전과 5대 국정지표, 21대 전략, 192개 국정과제를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문건으로 이미 발표한 바 있다.
이 내용을 살펴보면 다행스럽게도 어느 것 하나 전자정부와 무관한 것이 없다. “선진 일류 국가: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나라”라는 새 정부의 국가 발전 비전은 새 정부의 전자정부 비전으로 거의 그대로 가져다 쓸 수 있다. 예컨대 선진 “일류 전자정부” 정도면 훌륭한 전자정부 사업 비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활기찬 시장경제’, ‘인재대국’, ‘글로벌 코리아’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이 국정지표의 명칭이 ‘성숙한 세계국가’로 한글화되어 있다.
‘능동적 복지’, ‘섬기는 정부’와 같은 새 정부의 5대 국정지표는 그대로 새 정부 전자정부 사업의 목표로 사용될 수 있다. 또한 각 국정지표별로 3개~5개씩 제시된 21대 전략(예컨대 ‘활기찬 시장경제’라는 국정지표의 경우 ①투자환경 인프라 개선, ②제로베이스 규제개혁, ③신성장 동력 확보, ④서비스 산업 선진화, ⑤일자리 창출; ‘인재대국’이라는 국정지표의 경우 ①수요자 중심의 교육경쟁력 강화, ②핵심인재 양성과 과학한국 건설, ③평생학습의 생활화)은 새 정부가 추진할 전자정부 사업들의 분야를 나누는 기준으로서 손색이 없다.
그리하여 21개 분야별로 2~3 개의 대표적인 전자정부 사업들을 정부 안팎의 관계자들 사이의 공론화 과정을 거쳐 새 정부가 추진할 전자정부 추진 과제로 선정하면 된다. 각 지표별로 시급한 전자정부 사업들을 예시적으로 열거해 보면 다음과 같다.
새 정부는 총 192개의 세부 국정 과제들을 5대 국정지표별로 분류하여 발표하였는데, 이 192개의 세부 국정 과제들은 그 중요성과 시급성에 따라 ‘핵심과제’, ‘중점과제’, ‘일반과제’ 등의 세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앞으로 새 정부의 국정지표와 192개 세부 국정 과제들을 지원하는 다양한 전자정부 사업들이 마련되면 이 전자정부 사업들도 경중에 따라 ‘핵심과제’, ‘중점과제’, 또는 ‘일반과제’의 형태로 분류하여 추가되어야 할 것이다.
‘활기찬 시장경제’ 및 이에 연관된 5대 국정과제와 관련한 전자정부 사업
•우리나라 기업이 국내외에, 또 외국기업이 우리나라에 투자하는데 필요한 모든 정보와 행재정적 지원을 단시간에 실시간으로 통합하여 지원해주는 (가칭) ‘국내외 온라인 통합 투자지원시스템’ 구축 사업
•대한민국 정부의 모든 규제를 실시간으로 종합 제어하여 제로베이스 규제 개혁을 가능케 해 주는 (가칭) ‘실시간 종합 규제 제어 시스템’ 구축 사업
•재래시장의 모든 거래가 실시간 전자상거래방식으로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가칭) ‘재래시장 u-정보화’ 사업
•모든 서비스 산업의 거래 양식을 유비쿼터스(ubiquitous) 기반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하는 (가칭) ‘서비스산업 u-정보화’ 사업
•대한민국 내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육·해·공 상의 물류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획기적으로 극복할 수 있게 철도, 고속도로, 일반도로, 항만, 항공 등의 기본 구조를 유비쿼터스 기반으로 전환하는 (가칭)‘전국토 실시간 물류관리 시스템’ 구축 사업
‘섬기는 정부’ 및 이에 연관된 4대 국정과제와 관련한 전자정부 사업
•행정 단가가 실시간으로 계산되고 정부 기관 예산의 과잉 부분과 부족 부분, 성과의 적절성 정도를 실시간으로 파악하여 조치할 수 있게 해 주는 (가칭) ‘온라인 예산절감’ 시스템 구축
•제반 공공기관 혁신을 지원하는 (가칭) ‘온라인 공공기관 혁신 지원 시스템’ 구축
•중앙과 지방, 공공기관 모두를 대표하는 (가칭) ‘단일한 온라인 종합민원서비스 체계’ 구축
•세계적인 지방 특성화 사업(예컨대 대구의 세계육상대회, 여수 엑스포 등)을 정보통신기술로 지원하여 효과를 배가시키는 (가칭) ‘IT를 활용한 지방 세계화 사업’
•국민과 기업에게 세금을 절감할 수 있게 온라인으로 상담해주는 (가칭)‘국민·기업 세금 절감 지원 시스템’ 구축 사업
•국민과 기업들이 정부로부터 지급받을 수 있는 제반 금전적, 행정적 지원의 내용을 일목 요연하게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지원받을 수 있게 하는 (가칭) ‘국민/기업 권익 종합 지원 시스템’ 구축
•대한민국의 부패의 발생 원인과 실태, 처리 과정, 사후 관리에 이르기까지 부패에 관해 실시간으로 종합 관리하는 (가칭) ‘종합 부패 제어 시스템’ 구축
•실시간으로 관련된 모든 국민, 기업, 전문가, 공무원들이 모두 참여할 수 있게 하는 (가칭) ‘온라인 공청회·청문회·고충처리 시스템’ 구축
셋째, 최소한 국가경쟁력강화특위에 이러한 전자정부 과제들을 총괄적으로 추진하는 분과 체계가 장착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어야 전자정부 사업들은 지금까지처럼 이른바 ‘대통령 프로젝트’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야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위와 같은 방식으로 선정될 전자정부 사업들은 대부분이 일개 장관이 조정력을 발휘할 수 없는 범정부적이고 범국가적인 사업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안정적인 예산 확보가 일의 성패를 결정할 필수적인 전제 조건이 되는 사업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현재의 정보화추진위원회를 대통령직속위원회(가칭 ‘정보화전략회의’)로 개편하고 대통령실에 전자정부와 정보화를 전담하는 비서관을 설치하여 행정안전부와 함께 이 위원회를 통해 전술한 전자정부사업들을 추진하는 것도 별도의 안으로 충분히 고려해 볼만한 안이다.
넷째, 전자정부 관리 인력의 역량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일을 역점사업으로 추진해야 한다. 모든 일은 사람에 달려 있다. 지금까지의 노력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수준의 전자정부 시스템을 갖추었다.
그러나 이 전자정부 시스템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역량은 아직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한 부분이 적지 않다. 전자정부나 정보화에 관련된 기술이나 세계적 동향에 문외한인 사람이 관련직에 보임되는가 하면, 전산기술자들도 여러 가지 구조적인 문제들로 인해 자신들의 기술을 최신화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정보화나 전자정부 업무를 전산직이 해야 옳으냐 일반 행정직이 해야 옳으냐 하는 것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지난 30여년에 걸친 국내외의 경험과 오늘날 정보사회의 동향을 보면 전자정부 관련 직책을 전산직이 담당하는 것이 옳으냐 일반 행정직이 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논의는 이제 구태의연하기 짝이 없다.
중요한 것은 누가 오든 해당 업무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처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한 방법의 요체는 전자정부 관리 전담 인력풀을 확보할 수 있게 인사제도를 정비하는 것이고, 이들에 대해 정보화 및 전자정부 관리에 필요한 제반 역량, 즉관련 첨단 기술에 대한 이해라든가 정책 기획 및 집행, 법제 관리, 예산 운영, 사업관리, 평가, 관계부처간 협력 기술 등을 비용효과적으로 함양시키는 세계 최고 수준의 국내외 교육훈련시스템을 구축·운영하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하게는 해당 사람들을 선발하여 2년 정도 정보화 및 전자정부 분야에 유수한 해외 교육훈련기관에 파견하여 교육받게 하면 제일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어가기 때문에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할 수 없다.
보다 바람직한 방안으로 고려해 볼 수 있는 것은 국내외 최고 수준의 교육훈련기관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1년 짜리 농축된 교육훈련 프로그램이다. 9개월 정도는 국내에서 근무하면서 온라인 교육과 오프라인 방식으로 국내 및 해외 전문 교수로부터 교육을 받고 소정의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3개월 정도 해외 교육훈련 기관에 직접 가서 해당 교수의 지도로 현장 중심의 지식과 기술, 문제 해결 역량을 습득케 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