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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先進化와 善進化  
 
2008-03-04 09:08:32
 
[경향의 눈]先進化와 善進化  
입력: 2008년 03월 03일 18:10:54
 
몇해 전 캐나다 밴쿠버에서 연수생활을 할 때 음주 검문을 받았던 기억이 난다. 경찰이 차를 세우고 창문을 내리게 한 다음 운전자를 향해 경례를 붙이는 것까지는 한국과 같다. 그 다음이 달랐다. 목을 창 밖으로 빼고 입술을 오무려 ‘후’하고 불 준비를 하고 있는 나에게 경찰관은 “술 마셨나요”라고 물었다. 그래서 “아니오”라고 대답하자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냥 가라고 했다.

그로부터 얼마 뒤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났다가 미국 피닉스에서 여권이 든 가방을 잃어버려 발을 동동 구른 기억도 있다. 그때가 12월31일이어서 LA 영사관까지 가 임시여권을 받을 시간 여유가 없었다. 절망적인 심정으로 공항에 나갔더니, 공항 직원이 하는 말이 뜻밖이었다. 밴쿠버행 비행기는 여권이 없어도 태워줄 테니, 거기서 입국심사관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해보라는 것이다. 실제 밴쿠버 공항의 심사관은 내게 “현재 사는 곳 주소는?”이라고 묻더니 대답이 막힘없이 나오자 두말 않고 통과시켜 줬다.

내가 겪은 이 두 에피소드는 꽤 특별한 것이다. 일반화시켜 말할 수는 없다. 당시는 9·11 테러가 나기 전이었으니 지금과는 환경도 많이 다르다. 그럼에도 이 경험담을 꺼내는 것은 선진화에 대한 생각 때문이다.

경제가 전부인 李정부 先進化

이제 막 출범한 이명박 정부의 국정목표가 선진화다. 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선진화라는 단어를 15차례 언급했다. 그리고 “올해를 선진화의 원년으로 선포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스타일로 미뤄보면 조만간 선진화라는 이름의 대대적 국가 개조작업이 벌어질 판이다. 지금은 인수위 시절 까먹은 표를 의식해 입조심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4월 총선에서 예상대로 여당의 과반 의석이 확보되면 선진화 바람은 거세게 불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 나는 대통령이 추구하는 선진화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대선때 줄곧 외친 경제 살리기나 기초질서 바로세우기는 무슨 말인지 알겠는데, 그 이상의 개념은 머릿속에 좀체 그려지지 않는다. 경제성장과 법 질서 확립이 선진화의 한 요건이라 해도 그게 전부가 될 수 없음은 물론이다.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한 인사에게 단하의 티끌에 대한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단상에서는 안보이겠지만, 행사장 의자에 먼지가 부옇게 끼어 있어 자리에서 일어서는 앞 사람의 바지가 흉하게 더러워지더라는 것이다. 대통령 취임식장마저 눈에 보이는 곳은 광택나게 닦지만, 보이지 않는 곳은 방치한 것이다. 후진국의 전형적 특성이다.

논자(論者)에 따라 강조점이 다르겠지만, 박세일 서울대 교수는 선진화의 개념으로 ‘부민덕국’(富民德國)을 제시한다(대한민국 선진화전략). ‘부유한 국민이 사는 덕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박 교수는 부(富)가 덕(德)에 우선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선진화(先進化)가 되려면 먼저 덕이 있는 나라, 즉 선진화(善進化)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캐나다 경찰관이나 입국심사관이 나에게 보여준 것은 정직을 소중히 여기는 선진(善進) 사회의 면모다. 그곳이라고 음주운전과 허위진술이 없을 리 없지만, 기본적으로는 정직이 상식으로 통하는 선(善)의 사회인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거짓말을 하다 들키면 엄한 벌이 기다린다. 가령 버스나 지하철에서 승차권을 상시 체크하지 않지만 무임승차하다 걸리면 정상요금의 수 십배를 칼같이 물리는 식이다. 준법과 탈법의 경계를 명확히 한다는 점에서 선진화(線進化)라고 할까.

‘표절’ 통하는 先進사회는 없어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이런 선진화(善進化)도, 선진화(線進化)도 도통 기미가 안보인다. 정직을 소중히 여기는 국정철학이 느껴지지 않는다. 도대체 논문 표절이 고위공직을 수행하는 데 결격사유가 안된다고 대놓고 말하는 선진국이 어디 있는지 모르겠다.

국정목표는 대통령이 밀어붙인다고 저절로 달성되는 게 아니다.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으면 한갓 공허한 구호에 그칠 뿐이다. 김대중 정부가 제2건국위원회를,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중심국가론을 들고 나왔지만, 지금 그걸 기억하는 사람조차 많지 않다는 사실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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