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가 끝나자 경제 부처 관료들이 가슴을 졸이고 있다. 이명박 후보가 차기 대통령 당선자가 되면서 수면 아래 잠복해 있던 정부 조직 개편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슈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공무원들도 대선이 끝나자 조직 개편이 코앞에 닥쳤음을 실감하는 모양이다. 대선 전처럼 ‘우리 부처’의 운명을 걱정하는 정도가 아니다. 이명박 당선자가 대부처(大部處)-대국(大局) 체제를 공언했기에 이젠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국(局), 과(課)가 어떻게 되는 것인지’까지 가늠해 봐야 하는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이 당선자는 대선 과정에서 정부 기능을 통합 재편한다는 목표 아래 현재의 18부 4처 17청 기타 중앙 행정 조직 17개 등 56개 중앙 행정 조직을 10여 개 안팎으로 줄이는 ‘대수술’에 착수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은 바 있다. 게다가 이 같은 정부 조직 개편 논의를 새 정부가 출범하는 2월까지 끝내고 취임과 동시에 집행한다는 방침을 세워 뒀다.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조직 개편 이슈에 각 정부 부처의 ‘서바이벌 게임’도 뜨거워지고 있다.
20여가지 시나리오 나돌아최근 경제 부처 안팎에서는 20여 가지의 조직 개편 시나리오가 나돌고 있다. 대부분이 학계 정부부처 시민단체 등에서 대선 전에 내놓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던 내용들이다.
하지만 이 당선자는 10여 개 안팎의 대부처 체제로 가겠다는 원칙만 내놓았을 뿐 공식적으로 어떤 부처를 어떻게 손본다는 얘기는 아직까지 없었다. 이 같은 불확실성 때문에 오히려 각 부처 공무원들의 불안감은 더 커지고 있다.
관료들이 예상하는 조직 개편 시나리오는 우선 김관보 가톨릭대 교수(행정학과)가 지난 6월 발표한 개혁안을 주된 골격으로 삼아 여기에 여러 가지 변수들을 더하고 빼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김 교수안이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까닭은 그가 한나라당과 이념 성향이 비슷한 한반도선진화재단의 정부조직연구소장을 맡고 있다는 배경 때문이다.
김 교수는 현재의 정부 조직을 ‘1원 10부 2처’로 축소해 기능별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개편안 중 경제 부처와 관련된 내용 중에는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의 일부 기능을 통합해 국가전략기획원을 신설하고 재정경제부의 조세 및 금융 파트를 재무부로 분리하는 것이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다.
과천 공무원들은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변수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일단 예산 기능을 전략기획원에 합치느냐 떼어 내느냐가 첫 번째다. 만약 예산 기능까지 합쳐진다면 기존 기획예산처를 모태로 현(現) 재경부의 기획 기능이 옮겨오는 모양새를 띨 것이다.
그동안 남이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국가 전략의 싱크탱크’ 역할을 자임해 왔던 기획예산처 공무원들로선 이보다 더 좋은 상황이 있을 수 없다. 기획예산처 관계자는 “김영삼 정부 시절 ‘막강 파워’ 재경원을 현재의 기획예산처 중심으로 복원하는 시나리오가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도 생각할 수 있다. 전략 기획과 거시경제 운용 및 정책 조정 기능만을 강조하고 예산 기능은 별도로 떼어내 차관급의 예산지원처 정도로 축소하게 된다면 반대로 기존 재경부가 이니셔티브를 쥐게 된다.
재경부 관료들은 “기획예산처가 노무현 정부 들어 불필요하게 비대화됐다”며 재경부 중심의 전략기획원 수립에 기대를 걸고 있다. 양 부처 모두를 맥 빠지게 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는 국가 전략 기획과 경제 정책 조정 기능 등이 청와대나 국무조정실로 일원화되는 경우가 거론된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재경부는 옛 재무부보다 못한 조직이 되는 것이고, 기획예산처는 단순한 회계처리 업무만 보게 되기 때문이다. 아울러 재경부의 금융 정책 기능과 금융감독위원회의 감독 기능 사이의 일원화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경제 부처들 가운데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위협에 직면한 부처는 역시 산업자원부다. 산자부는 과거 상공부와 동력자원부를 합쳐서 상공자원부로 확대 개편됐다가 통상산업부로 명칭을 바꾼 뒤 김대중 정부 출범 때 통상 기능을 외교통상부에 떼어 주고 지금의 모습을 갖게 됐다. 하지만 산업 정책이 과연 필요한지에 대한 의문이 점점 커지면서 자원 및 에너지 분야를 제외한 나머지 국·과의 기능 축소 또는 통폐합 필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로는 산자부의 산업 정책 기능을 과학기술부 정보통신부 등 분야 및 업종별 산업 육성 부처와 통폐합하는 방안이 있다. 여기에 변수로 작용할 것은 에너지·자원 분야를 별도 부처로 놔두느냐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에너지·자원 쪽도 최근에는 대부분 민간 주도로 사업이 추진되는 만큼 최소한의 공적 기능이 필요한 부분은 준정부기관이나 공기업 성격의 책임 운영 기관으로 내보내고 정부 차원의 지원 및 육성 기능은 일반 산업 정책 분야와 마찬가지로 조직을 최소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반대로 산자부 관료들은 중소기업청을 흡수·통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몸집이 어느 정도 줄어드는 것을 감수하더라도 챙길 것은 챙겨 만회할 길을 열어놓겠다는 포석이다.
농림부는 비교적 느긋한 입장이다. 해양수산부가 폐지 1순위로 떠오르면서 그쪽 기능을 가져오게 될 것이란 기대감과 함께 식품의약품안전청의 식품 분야를 떼어와 농업·식품 정책을 총괄하는 대부처로 커질 것이란 희망에 근거해서다. 아울러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농업 분야 보완 대책들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고 농업이 갖는 여론상의 민감성으로 인해 의욕적으로 조직을 개편하려는 차기 정부라도 섣불리 농림부의 기능 축소를 거론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노동부 역시 교육인적자원부가 맡고 있는 평생교육을 자신들의 직업교육과 합쳐 확대 개편을 노리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교육부의 초중등 교육 파트는 각 지방교육청 및 자치단체에 맡기고 대학 교육 파트는 자율화해 기능을 대폭 축소하자는 논의가 들끓고 있다. 그렇게 되면 나머지 평생교육·성인교육 쪽을 노동부가 가져올 수 있으리라는 전망이다. 다만 교육부가 완강히 저항하면서 주도권 싸움으로 흐른다면 반대로 노동부가 교육부에 흡수되는 일도 없다고만은 볼 수 없는 상황이다.
보건복지부는 여성가족부와의 통합이 유력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규제개혁위원회와 합치고 심판 기능을 별도의 ‘공정거래심판원’으로 떼어 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건설교통부는 환경부와 합치는 것을 기정사실로 보고 있다. 도로 건설 신도시 개발 등 대규모 개발 사업에 있어서 환경 영향성이 항상 문제가 되기에 대부처의 틀 안에 두고 규제를 간소화할 필요성이 제기돼 왔기 때문이다. 건교부와 환경부는 각각 중복되는 기능을 앞으로 어떻게 재조정해야 할지를 두고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당선자는 후보 시절 조직 개편을 공언하면서도 공무원 수는 동결을 원칙으로 한다고 여러 번 강조해 왔다. 따라서 정부 조직 개편에도 불구하고 많은 수의 관료들이 갑자기 옷을 벗는 식의 구조 조정은 없을 것이란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하지만 자신이 몸담고 있던 부처가 없어지기라도 하면 10년 이상 해당 부처에만 있었던 공무원은 아무래도 보직이나 승진상의 불이익이 뒤따를 수밖에 없다. 다른 데로 ‘시집가는’ 입장이 되면 ‘출신성분’에 따른 파워 게임에서 밀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조직 사수할 논리 찾기 위해 ‘안간힘’따라서 각 부처는 우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에 자기 조직의 사람을 더 많이 집어넣기 위해 물밑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아울러 조직을 ‘사수’할 논리를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앞으로 인수위를 상대로 한 부처별 업무 보고는 자기 부처가 꼭 살아남아야 하는 이유를 당선자의 머릿속에 각인시키는 게 가장 중요한 미션이다. 1차적으로는 정책 홍보 파트가 이 같은 생존 게임에 앞장서고 있다. 정권 말이라서 보통 때처럼 언론을 상대로 한 정책 소개 및 설명 업무가 상대적으로 덜한 틈을 타 조직 홍보 논리 개발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수세에 몰린 산자부 환경부 등은 관련 태스크포스(TF)도 구성해 대처하고 있다.
새 대통령 입장에서는 대부처로 개편하면 장관들을 관리하기가 용이해 자신의 구상을 행정부를 통해 현실화하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관련 공무원들의 저항도 만만치 않아 정권 출범 초기에 이 문제를 빨리 해결하지 않고 질질 끌면 자칫 정부 조직 개편이 표류할 가능성도 간과할 수는 없다.
한 경제 부처 국장급 간부는 “어떤 식으로든 정부 조직을 개편해야 한다는 데에는 동감하지만 직무 분석 없이 부처를 떼어 내고 합치는 식으로 서둘러 진행된다면 예상외의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다”며 “새로운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반복적으로 쪼개고 합치는 식의 조직 개편을 했지만 공무원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사례가 많다”고 말했다.
차기현·한국경제 기자 khc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