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02 09:41:13
이선민 선임기자의 동서남북
지난 13일 세상을 떠난 박세일 서울대 명예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2월 그가 역저(力著)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을 펴냈을 때였다. 그 이전에는 박 교수가 주로 활동한 영역이 정치 쪽이었기 때문에 줄곧 문화부에서 일해온 기자가 접촉할 기회는 없었다. 박 교수가 세종시 건설은 국가 발전에 장애가 된다며 국회의원직을 사퇴한 뒤 학문 연구와 국정 참여 경험을 토대로 21세기 한국이 나아갈 길을 종합적으로 제시한 '대한민국 선진화 전략'은 정권 교체를 위한 국가 비전을 갈망하던 보수 우파로부터도 큰 주목을 받았다. 이 책에 대해 서평을 쓰고 얼마 뒤 박 교수에게 연락이 와서 저녁을 함께 하고 그의 사무실에서 대화를 나누었다. 그 뒤 박 교수가 저서를 내면 서평을 쓰고, 본지에 기명 칼럼을 연재할 때는 담당 데스크를 맡았으며,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있으면 인터뷰를 하는 등 이야기할 기회가 이어졌다.
박세일 교수는 자리를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중국 고전 예기(禮記)에 나오는 '천하위공(天下爲公·천하는 공공을 위한 것)'이란 문구에서 자신의 아호를 따온 데서 드러나듯 그의 사고와 활동은 공익을 위한 것이었고, 국가 발전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대적·민족적 과제인 '선진화'와 '통일'을 위한 헌신을 강조하는 그의 열변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라와 사회를 향한 그의 일편단심과 열정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박세일 교수는 자리를 함께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뜨겁게 만들었다. 중국 고전 예기(禮記)에 나오는 '천하위공(天下爲公·천하는 공공을 위한 것)'이란 문구에서 자신의 아호를 따온 데서 드러나듯 그의 사고와 활동은 공익을 위한 것이었고, 국가 발전에 초점이 맞춰졌다. 시대적·민족적 과제인 '선진화'와 '통일'을 위한 헌신을 강조하는 그의 열변에 부담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지만 나라와 사회를 향한 그의 일편단심과 열정은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