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가세 2%p 올리면 15兆 확보… 물가 낮은 지금이 적기
단계적으로 조세부담률 늘려 '中부담-中복지'로 가야
고소득자에게 세금 더 매기면 결국 중산층도 부담 커져
기초연금, 하위 50%에 집중 지원… 노인 빈곤 줄여야"
기초연금·무상보육 등 정부의 복지 예산은 2012년 92조원에서 올 115조원으로 3년 새 23조원이나 늘어났다. 반면 이런 복지 재정을 부담할 세금 수입은 오히려 거꾸로다. 국세 수입은 작년에 예상보다 10조여원이 덜 걷히는 등 2012년부터 3년간 22조원이나 적게 걷혔다. 이처럼 재정에 구멍이 펑펑 생기면서 정부는 '증세냐, 복지 재정 축소냐'라는 선택의 기로에 서 있게 됐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공약한 '증세 없는 복지' 덫에 걸려 옴짝달싹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증세 없는 복지는 없다고 단언한다. 증세를 하면 연말정산처럼 국민의 반발이 커지고, 복지를 축소하면 공약을 어긴 대통령이라는 비판에 휩싸일 수 있다. 하지만 장기 불황으로 사회적 약자가 늘어나 복지 재정을 확대하기 위한 증세는 불가피하고, 증세를 현실화하기 힘들다면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한 보편 복지의 틀에서 벗어나 꼭 필요한 사람에게만 주는 선택적 복지 제도로의 개편이 시급하다는 처방전을 내놓고 있다. 이를 위해선 대통령이 국민에게 솔직하게 동의를 구하고 사회적 공감대도 얻는 게 전제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은 우선 '알뜰한 정부 가계부'부터 요구했다. 불필요한 예산을 걷어내고 줄일 예산을 찾아내 가정주부처럼 알뜰 정부의 가계부를 만드는 노력을 보여야 국민도 제도 개혁에 동의할 수 있다는 얘기다. 강 전 장관은 "정부 각 부처 등의 반발을 딛고 불필요한 예산을 덜어낼 수 있도록 대통령이 기획재정부 예산실에 힘을 실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진념 전 부총리는 "사회적 약자가 늘고 있어 복지 제도 확충은 불가피하므로 '중(中)부담-중(中)복지'로 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선 5~10년 이내에 현재 19~20%인 조세부담률을 20~25%, 국민부담률(세금 외에 연금·건강보험료 등을 합친 부담)을 23~25%에서 28%까지 높여야 한다고 했다. 또 꼭 필요한 복지와 하지 않아도 될 복지제도를 구분해 우선순위를 매겨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도 "고소득자에게 세금을 더 내라는 주장이 나오지만 그럴 경우 중산층도 부담이 커지는 것이 불가피하다"며 "정부가 솔직하게 이런 사정을 설명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급선무"라고 했다. 다만 경제 사정이 어려운 현 상태에서 세 부담 증가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정부가 아직 많이 남은 각종 비과세 감면을 없애는 등 과세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가가치세 인상으로 해결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강봉균 전 장관은 "부가가치세를 올리면 부작용이 우려되지만, 만약 한다면 지금처럼 저물가 시대가 적기(適期)"라며 "그래야만 인플레이션 우려 등을 덜 수 있다"고 말했다. 부가가치세를 10%에서 12%로 올리면 15조원이 더 걷혀 복지 재정을 충당할 길이 열리게 된다는 얘기다.
현재의 무상 복지는 근로 의욕을 북돋우고 일자리와 연계되는 복지제도로 고쳐야 한다는 것도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주문이다. 진념 전 부총리는 "국민연금은 수익률을 몇 % 더 올리는 것보다 돈(보험료) 낼 사람을 많이 확보하는 게 더 시급하다. 그러므로 국민연금 기금을 이용해 국공립 보육 시설을 확충해 후세대 양성 책임을 지도록 하자"고 했다. 국·공립 어린이집이 늘면 질 좋은 교사 일자리도 늘어나므로 적극적으로 추진하자는 주장이다.
노인빈곤율은 2013년에도 48%로 OECD국가 중 최상위다. 기초연금에 한 해 10조원을 쓰면서도 정작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액수가 적어 빈곤 탈출이 어렵기 때문이다. 차흥봉 전 복지부장관은 대안으로 "소득 하위 70% 대신 소득 하위 50%로 끊어 집중 지원하자"고 제안했다. 그는 무상 보육에 대해선 "스웨덴도 능력 있는 사람들은 돈 내서 어린이집에 가게 한다"며 "보육료 지급 연령을 만 5세보다 낮춰 무상 수요를 줄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재완 전 장관은 "공무원연금에는 연금 피크제를 도입, 돈이 많이 필요하지 않은 80세 이상에서는 연금액을 동결하거나 적게 지급하는 방식으로 적자를 줄이자"고 했다. 대학 반값 등록금도 대학을 다니지 않는 사람이 전체 고교 졸업생의 30%나 돼 형평성에 어긋나므로 학점 등 자격 제한을 두고 엄격히 운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성균관대 김준영 전 총장은 "보편적 복지를 하면 오히려 복지를 꼭 필요로 하는 계층에는 복지 혜택이 줄어드는 모순이 생긴다"며 "결국 소득과 경제 수준에 맞추는 '소득 매치형' 복지로 간 뒤 복지를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로드맵으로 무상 복지제도를 재설계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