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한반도선진화재단 공동 기획
[서울 컨센서스 10大 전략] [1] 정신자본을 중시해야
'절제'와 '배려'가 선진경제의 열쇠다
사회 신뢰도 10% 오르면 비용 절감·시너지 효과로 경제성장 0.8%P 증가
한국은 연고집단만 뭉쳐 낮은 신뢰지수 더욱 악화
'런치(Lunch) 2.0'. 이 말은 세계에서 가장 창조적인 사람들이 모여 있는 산업단지라는 실리콘밸리의 엔지니어들이 즐기는 공짜 점심을 뜻한다. 그러나 단순한 공짜 점심이 아니다. 경쟁관계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엔지니어들이 서로 상대방 회사의 구내식당을 차례로 돌아다니며 아이디어를 나누고 협력방안도 모색하는 점심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꽃피울 수 있으려면 이렇게 경쟁과 협력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생태계'가 중요하다.
창조와 혁신을 잘하려면 우선 지식자본(知識資本)이 커야 한다. 새로운 기술을 만들고 시장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이 지식이다. 역사상 한 시대를 풍미한 경제대국들은 모두 지식자본으로 무장한 나라들이었다. 지식자본은 인간이 가진 욕망과 이기심을 고취함으로써 키울 수 있다. 우리가 세계 4위의 특허출원국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우리의 교육열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제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해선 신뢰와 협력의 정신자본 또한 중요하다. 신뢰와 협력은 사회의 거래비용을 낮추고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게 한다. 세계은행의 한 연구원이 낸 논문에 의하면, 한 국가에서 신뢰가 10% 상승하면 경제성장이 0.8%포인트 증가한다고 한다. 21세기는 융합의 시대다. 창조를 위해서 신뢰와 협력은 더욱더 중요하다. 전화와 PC의 기능을 합한 아이폰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앱스토어라는 협력 모델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러면 신뢰와 협력의 원천은 무엇인가. 그것은 도덕심이다. 공정한 법규를 만든다고 해서 신뢰와 협력이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는다. 서구에서 자본주의가 성공한 것도 근면, 검약, 정직의 칼뱅주의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영사상가인 찰스 핸디는 경제가 발전하려면 '올바른 이기주의'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이기적 욕망이 창조와 혁신에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 이기심은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올바른 것이란 탐욕을 경계하는 '절제'와 타인에 대한 '배려'를 기반으로 한다. 절제와 배려의 도덕성이야말로 경제의 장기발전을 위한 최대의 자본이다. 미국에 금융위기가 초래된 것도 파생상품이란 혁신을 뒷받침할 월가의 도덕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시장에 절제가 없다면 케인스가 말한 '야성적 충동'이 넘쳐날 것이고, 배려가 없다면 홉스가 말한 '야수의 정글'이 될 것이다.
한국경제는 지금 전략적 변곡점을 맞고 있다. '나'만 아는 경제에서 '너'를 포용하는 경제로의 전환이 필요한 순간에 있다. 그동안 물질적 성장만 추구하다 보니, 전통적 인의는 사라지고 이기심, 불신, 불만만이 가득 차게 되었다. 그나마 있는 신뢰도 혈연, 지연, 학연의 연고집단을 벗어나면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그러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보다 낮았던 신뢰지수가 점점 더 악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의 정신자본을 강화할 것인가.
첫째, 학교와 사회의 도덕교육을 강화하여야 한다. 국영수에 밀려 잊혀진 도덕교육, 전문지식에 점령당한 문사철(文史哲·문학 역사 철학) 교육을 살려야 한다. 경영학이나 공학이 물질자본의 증대에 기여한다면, 인문학은 정신자본의 축적에 기여한다. 오늘날같이 인문학이 제 역할을 못해 인문교육이 죽는다면 한국의 경제 선진화는 기대하기 어렵다. 인문학 연구가 인문교육과 긴밀히 연계되어야 하며, 이를 구조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경영학과와 사범대학을 학부에서 폐지하고 전문대학원으로 격상시키는 교육구조 조정이 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 자기성찰을 할 줄 아는 리더를 만들어내는 교육이 필요하다. 기업가는 사회적 책임의식, 공직자는 선공후사(先公後私)의 정신, 지식인은 선비정신을 가져야 한다. 정약용은 군자의 일은 '수신(修身)이 반이고 나머지 반은 목민(牧民)'이라고 했다. 지도층의 수기치인(修己治人)이야말로 하나의 살아 있는 교과서이다.
셋째, 한국 공동체에 대한 자긍심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나라와 역사에 대한 사랑과 자긍심이 없이는 선진경제가 될 수 없다. 리아 그린펠드 교수는 애국심이야말로 경제발전의 동인이라 하였다.
도덕과 신뢰의 사회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동시에 발전하는 사회이다. 이기적 냉혈한만 득세하는 사회, 무책임한 평등주의자만 넘쳐나는 사회로는 선진경제가 될 수 없다. 그래서 우리가 그려야 할 미래는 경쟁 속에도 절제와 배려가 있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자유 속에서도 책임과 소통을 아는 성찰적 민주주의다.
이홍규 KAIST 경영과학과 교수
손동현 성균관대 철학과 교수
서울 컨센서스정신자본팀전문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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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 정신'이 서양 경제 발전 시켰듯이.. '弘益人間' 정신이 선진화에 기여할 수 있어
19세기 중반 영국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빅토리아 여왕 시절엔 근면·자조·의무가 통치이념이었다. 1970~80년대 대처 전 총리는 다시 이 정신을 강조했다. 사회복지정책에 의존하려다 생긴 영국병을 고치기 위해 국민들의 인내와 자제를 요구한 것이다. 근검·절약·사회봉사를 중시하는 칼뱅의 청교도 정신은 스위스의 경제발전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스위스 국민들의 청교도적 생활신조 덕분에 스위스는 자원이 없는 알프스 산속에서도 자본을 축적하고 기술을 개발해 시계산업의 왕국으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도 기업가 정신을 중시하는 문화가 국부 창출의 원동력이었다. 그 밑바탕엔 청교도 정신이란 미국인들의 생활신조가 자리잡고 있다. 2006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펠프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오늘날 미국의 부는 기업가 정신, 개방경제, 시장주도의 혁신과 창의성, 경쟁을 통한 생산성과 효율성 개선에서 나왔고, 특히 인적자본이 신기술과 경제성장을 주도했다"고 했다.
일본을 선진국으로 만든 조건 중 하나는 섬나라 안에서 서로 싸우다가 함께 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이좋게 살고자 하는 '와(和)' 정신이다. 일본사람들은 '와'라는 틀에서 벗어나면 따가운 눈총과 비난을 받고 '왕따(이지매)'를 당하기 쉽다.
그래서 자신에게 허용된 영역, 즉 남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 안에서 안으로 끝없이 파고들어 가는 '오타쿠(마니아보다 한발 더 나아가 미치다시피하는 것)' 문화가 생겼다. 이런 성향이 각 분야에서 뛰어난 전문가를 탄생시키는 일본 특유의 문화로 이어졌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정신자본의 사례가 있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사람을 돕는' 정신을 구체화한 새마을 정신이 대표적인 경우다. 과거 박정희 정부는 '하면 된다'는 신념으로 동기를 부여하여 국민들의 생각을 발전친화적으로 바꿨다.
선진화를 달성하기 위해 한 단계 더 높은 경제발전을 실현해야 하는 상황에선 '홍익인간' 사상을 시대정신에 맞춰 재조명할 필요가 있다. 공동체 자유주의에 적합한 정신자본 모형으로서 홍익인간을 바탕으로 한 애국심의 강화가 필요하다. 홍익인간은 중층적이고 복합적이며 고도로 분화된 산업사회에서 서로를 널리 이롭고 생산적인 관계로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정모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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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로스의 스승은 철학자
美경영자들 중엔 인문학 전공자들 많아
미국 월가에 뛰어난 금융기관 CEO와 애널리스트 등을 배출해온 세인트존스 대학은 '책만 읽히는 학교'로 유명하다. 뉴욕의 금융가로 진출하는 졸업생들이 많아 투자나 경영기법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학교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이 학교에서 4년 내내 하는 공부란 고전 100권을 읽고 토론하는 것이다. 1학년 땐 고대와 그리스 시대, 2학년은 로마와 중세시대, 3학년은 17~18세기, 4학년은 19세기부터 최근까지 사상가들의 책을 읽고 토론하며 글쓰기 훈련을 받는 것이다.
월가에 근무하는 이 학교 졸업생들을 인터뷰한 내용을 담은 '지혜와 성공의 투자학'이란 책에 따르면, 졸업생들은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사고자(thinker)가 될 수 있는가를 배웠다"고 했다. 또 다른 졸업생은 "세계를 바라보는 폭넓은 시각을 배웠다"고 했다. "원전을 찾아보고 거기서 자신의 고유한 결론을 도출하는 과정의 중요성"을 배운 것이 가장 큰 교훈이었다고 한 졸업생도 있었다.
미국의 경우엔 최고경영자뿐 아니라 월스트리트의 투자 고수들 중 경제학이나 경영학을 전공하지 않은 인재들이 많다. 오히려 철학·역사·문학 등 인문학 지식이 장기적으론 투자활동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게 상식이다.
한때 실리콘밸리의 여제(女帝)로 불렸던 칼리 피오리나 휼렛패커드(HP) 전 회장은 대학에서 중세역사와 철학을 전공했다. 학창 시절에 온갖 종류의 지식을 접했던 그녀는 "수학과 과학에서는 분석기술, 음악과 미술에서는 영혼의 양식, 문학과 철학에서는 정신의 풍요를 얻었다"고 말했다.
전설적 펀드 매니저인 피터 린치는 대학에서 정치학과 심리학을 전공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투자 조언엔 복잡한 경제 이론과 전문용어가 등장하지 않는다. 국제 자본시장의 '큰손'인 조지 소로스의 대학 시절 스승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쓴 세계적인 철학자 칼 포퍼였다. 그는 당시 학습한 논리적 사고와 추리 및 논증을 바탕으로 현실 경제를 보는 안목을 키웠다.
반면 우리나라 경영자들 중엔 경영·경제 전공자들이 많다. 지난해 10대 그룹 계열사의 사장급 이상 CEO 471명을 대상으로 한 재벌닷컴의 조사에 따르면 이들의 5명 중 2명(39.7%)이 경영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했고 이공계 출신은 35.9%였다.
홍영림 기자 ylhong@chosun.com
♤이 글은 2010년 2월 1일자 조선일보 A14면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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