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06-24 15:04:37
“수개월만에 천여개의 협동조합이 생겨날 정도로 지금 대한민국은 협동조합 전성시대라 할 만하다.
하지만 서울시처럼 관이 주도해 목표액을 설정하고 예산까지 투입한다면 협동조합은 결국 권력을 잡기 위한 방편으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지난해 12월 협동조합 기본법이 발효된 이후 6월 말까지 이미 1000여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설립됐고, 매달 250여개씩 협동조합 신청이 줄을 이을 정도로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세계적으로 170년 역사를 지닌 협동조합의 치열한 투쟁사를 알게 되면 마치 협동조합을 사회적기업의 대안처럼 좋은 사례만 내세워 미화시키고 있는 현실은 위험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 21일 금요정책세미나로 연 ‘협동조합 전성시대의 기대와 우려’에서 최양부 바른협동조합실천운동본부 이사장(전 청와대 농수해양수석)은 “작년 말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이후 서울시를 중심으로 1200개의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 속에는 분명 협동조합 자체를 위태롭게 하는 조직이 함께 생겨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 이사장은 “우리 협동조합기본법에서 정치적인 활동은 금지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막을 조치가 없기 때문에 서울시처럼 지자체가 나서 협동조합을 지원한다면 결국 임원을 위한, 권력을 좇는 조직으로 협동조합은 변질되고 만다”고 말했다.
그는 “그는 이어 “서울시가 앞으로 설립 개수를 설정하고 지원센터를 만들어서 예산을 들이면서까지 협동조합을 유지시키려 하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며 “게다가 협동조합을 마을공동체나 마을기업과 연계시키려 하는 것에서 정치적 계산이 깔렸다는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올해 초 향후 10년 안에 서울에 8000개의 협동조합을 운영하는 ‘협동조합도시’를 선포하면서 5명 이상이 모여 협동조합을 만들면 시가 사업비의 80%를 지원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협동조합 종합지원센터를 만들고 마을공동체까지 포함해 지원할 활동가를 3180명 육성하기 위해 222억원을 지원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최 이사장은 “협동조합은 기업은 아니지만 엄연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속 제3의 경제사업체라는 점에서 조합원의 목표 달성이 중요하다. 그런데도 지금처럼 누군가 한사람이 깃발을 들고 자기 의도로 협동조합을 끌고 나가려고 한다면 이를 사유화하려는 의도라고밖에 말할 수 없다”고 했다.
대한민국에선 협동조합이 우리 사회의 을로 대변되는 약자들의 충족 수단으로 인식되지만 이미 세계적으로 249개국에서 140만개의 협동조합이 조직돼 활동 중인 것이다. 전 세계 인구의 20~40%가 협동조합원이며, 협동조합원은 미국에만도 25%, 프랑스에 38% 등 선진국에서도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다.
최 이사장은 “흔히 협동조합이 사회주의 국가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오해하지만 그 태생은 1844년에 방직공장 밀집했던 영국 로치데일 지역에서 노동자들이 식료품 구입을 손쉽게 하기 위해서 스스로 만든 식료품 가게에서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협동조합이 국민의 생활경제를 좌우하는 바탕이 되고 있다는 방증으로 살아 있는 실천적 민주주의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즉, 소집단이지만 실제적인 경제조직인 협동조합의 의사결정 체제가 민주주의가 아니면 실현될 수 없게 돼 있으므로 결국 협동조합이 발전하는 사회는 자연히 정치적 민주주의뿐 아니라 경제적 민주주의가 성장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협동조합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영국 로치데일의 소비자 협동조합 이후 1448년 파리에서 공장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이 공장의 주식을 소유해 인수하면서 노동자 중심의 생산 협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또 1849년 독일에서 라이파이센이라는 농촌신용조합이 생겨났고, 1882년 덴마크에서 세계 최초의 농업협동조합인 낙농협동조합이 설립됐다.
이후 1963년 이탈리아의 주세페 필리피니 주교의 주도로 사회적 협동조합이 탄생했으며, 1991년 이를 지원하기 위한 협동조합법이 제정돼 유럽의 사회적기업의 원형이 제공됐다.
최 이사장은 “협동조합이 자칫 정치적으로 이용되거나 권력화될 우려 때문에 경제적인 기대치를 저버릴 수 없다”면서 “협동조합의 잠재력은 매우 커서 지난 60년 산업화시대보다 앞으로 더 큰 성장동력이 협동조합에서 나올 수 있다”고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거치면서 유수 기업들이 도산하고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가 양산되자 유엔은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선포했다. 당시 협동조합이 설립한 회사나 그 자회사에선 오히려 추가 고용이 있으면 있었지 해고 현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최 이사장은 그 이유에 대해 “협동조합의 목적이 이윤창출이 아니라 조합원의 목표 달성이었기 때문”이라면서 “협동조합이 활성화되려면 방송통신위원회처럼 국가 차원에서 관리·감독할 기구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할 사업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또한 “이번에 입법예고된 협동조합기본법 개정안을 보면 공무원들로 하여금 시·도 단위로 협동조합을 감독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는 말도 안 된다. 불필요한 논란만 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협동조합이 순수한 민간단체로 성장하면 좋겠지만 그 정신이 아무리 좋아도 주체들에 대한 관리·감독이 필요하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감독을 위해 공정거래위가 있듯이 협동조합 관리를 위한 기구가 필요하고, 국가가 투자하고 민간이 참여하는 준공공적 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최 이사장은 마지막으로 협동조합운동에 평생을 몸 바친 영국의 에드거 파넬 여사의 ‘협동조합을 위한 기도문’을 소개했다. 기도는 ‘아래와 같은 사람들로부터 협동조합을 지켜주소서’로 시작된다.
그 사람들이란, 협동조합을 학문적 대상으로 보고 합병 또는 분할을 주장하는 사람들, 보통사람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믿는 전문가들, 협동조합을 위해 일하기보다는 협동조합이 자신을 위해 일하기를 바라는 협동조합의 간부 직원들, 권력을 잡기 위한 방편으로 협동조합을 이용하는 정치인들, 자신의 세계관을 고집해 협동조합을 경제적 기업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교리 전파자들 등이다.
최 이사장은 “협동조합이라고 설립되는 것이 다 같은 협동조합이 아니다. 가짜가 많은 만큼 잘 판별할 필요가 있다”면서 “에드거 파넬 여사의 ‘협동조합을 위한 기도문’에 열거돼 있는 우려가 바로 현실에서 불거질 수 있는 문제점을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데일리안 = 김소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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