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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일 오후 서울 중구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선진화재단 주최로 열린 북핵 억제력 국가전략 긴급토론회에서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발표를 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국내 일각에서 일고 있는 ‘핵주권론’, ‘핵무장론’과 관련해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댔다.
18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 주최로 열린 ‘우리도 핵을 가져야 하나’ 주제의 토론회는 북핵위기에 대처하기 위한 한반도의 외교·안보·정치적 전략을 다각도로 모색하는 자리였다. 정치권에선 외교통상부장관을 지낸 송민순 전 민주통합당 의원과 이인제 새누리당 의원, 언론계에선 김대중 조선일보 고문과 김영희 중앙일보 대기자, 군사전문가인 이상의 전 합참의장 등이 토론자로 나섰다.
이날 ‘북핵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뿌리에서 시작된 논의는 크게 핵무기 상호로 전쟁을 억지하는 ‘공포의 균형(balance of terror)’과 외교-경제적 압박 및 핵우산과 미사일방어(MD) 등을 통한 ‘확장된 억지력(extended deterrence)’으로 갈렸다.
특히 김대중 고문은 “우리나라도 핵무장 논의를 시작할 단계”라며 핵무장론을 주장했다. 김 고문은 “북한이 핵을 보유하는 이유는 미국 때문이 아니라, 내부 체제유지를 위해서”라며 “핵을 해결하는 방법은 핵 공포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므로 우리도 핵보유를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중 "핵무장 논의 시작할 단계…'핵과 함께 살자'는 것은 무릎 꿇고 사는 것"
김 고문은 우리도 핵을 보유해 ‘핵균형’을 이뤄야 한반도 평화가 지속될 것이라고 했다. 즉,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으면, 누구도 먼저 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북한이 사실상 핵보유국을 선언한 상황에서 “가만히 있자는 것은 자존심 문제다. (핵개발에 대해) 말이라도 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김 고문은 미국과 중국에 대한 ‘외교 및 군사의존 한계’를 지적하기도 했다. “(북한이 한국에 대한) 무력도발을 했다고 해서 (미국이) 한국의 비위에 맞게 보복을 감행해 줄 리는 없다”며 “미국은 ‘이제 북핵은 너희들이 해결해 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미국은 지금 지쳤고, 손을 내밀 수도 없다”고 말했다. 또 “중국은 북핵을 없앨 능력도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전쟁이라는 것은 심사숙고해서 논리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없다”며 “북한 내부에선 ‘선당(先黨)주의자’가 밀리고 ‘선군(先軍)’으로 가고 있고, 김정은이 확실한 지도력으로 손안에 넣고 압도해 나갈 인물이 아닌 상황에서 군인들이 위험한 불장난을 하는 시기로 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우리가 핵을 갖자고 했을 때, NPT(핵확산금지조약)탈퇴로 인한 (국제적 고립 등) 문제와 미국의 제재문제 등 (핵개발을) 구체화 시키자고 한다면 난관에 부딪힐 것”이라면서도 “그렇다고 해서 ‘핵과 같이 살자’는 것은 (북한이) 하라는 대로 하는 것이다. 무릎 꿇고 사는 것이다”고목소리를 높였다.
‘핵주권’의 공론을 세우는데 필요한 여론형성의 어려움도 지적했다. “조선일보 기사에서 남북문제에 대해 쓰면 관심이 없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해 쓰면 댓글이 100개 씩 달린다”고 했다.
아울러 그는 “그래도 앞으로 북한을 옥죌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중국”이라며 “박 대통령이 취임후 첫 순방지역으로 미국을 먼저 가는 것은 올바른 처사가 아니다. 중국을 먼저 방문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전략적으로 중국을 먼저 방문해 ‘한반도 문제에 이만큼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인식을 주면서 북한에 ‘리버럴리즘’이 상부로 올라와서 중국의 지도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외교적 협정을 해야 한다”며 “미국은 (먼저 방문해도) 잘해야 본전 아닌가”라고 되물었다.
앞서 김 고문은 지난 2011년 <南이 核 가져야 北이 협상한다>, <한국의 핵무기, 논의할 가치도 없다는 말인가> 제하 칼럼을 통해 “한국이 핵을 보유하는 날, 남북 간에는 비로소 실체가 있는 협상의 길이 열릴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당시 일본 등 외신에선 “한국을 대표하는 언론에서 핵무장론 주장이 나왔다”며 큰 관심을 표시하기도 했다.
송민순 "미북관계 정상화 추진하며 중국도 한배에 태워야"
송민순 전 장관은 북한 핵문제에 대한 ‘단계적 접근’을 주문했다. 송 전 장관은 “외교적 노력과 경제적 제재를 우선 시도하고, 그것이 실패할 경우 핵무장을 논의해도 늦지 않다”며 “단계적 접근을 취해야 나중에 핵주권을 주장하더라도 명분이 생기고, 행동의 자유를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미국과 북한의 관계 정상화에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북한의 수교라는 사업을 시작하고, 그래도 사업이 안 좋으면 중국을 동업자로 참여시키자는 것”이라고 ‘중국 동반자론’을 강조했다.
송 전 장관은 “우리가 해볼 수 있는 부분은 미국의 대북관계 정상화를 한번 해보는 것이다. 아니면 핵을 가진 북한과 함께 살아야 한다”며 “또 미국과 중국을 한 배에 태워서 북한을 압박했는데도 북한이 계속 핵을 개발하면, 이후에 우리가 핵개발을 강구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송 전 장관은 “우리의 핵무장론을 민간차원에서 논의하는 것은 압력을 행사하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면서도 “그 방향을 가더라도 어느정도 시간을 정해놓고 수순을 밟아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당장 핵개발을 논의하면 미국의 제재를 비롯해 정치?외교?경제적 부담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2004년 국내 과학계에서 소량의 우라늄을 추출했는데, 당시 국제사회 반응이 우리를 유엔 안보리에 제재조치를 하겠다고 했다. 이에 가장 앞장선 나라가 바로 미국”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김영희 대기자는 미사일방어막 등을 통한 ‘북핵 억지력 강화’를 주장했다. 김 대기자는 “전술핵을 탑재한 미국 핵잠수함을 동해에 상시 배치하면, 북한이 도발하고 싶은 때 미국이 왔는지 알 길이 없어 억지력이 된다”고 말했다.
김 대기자는 “북미관계 정상화를 제시하면서 신뢰 프로세스를 작동시켜야 한다”면서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중국은 물론 그동안 도외시했던 러시아를 끌어들이는 방안을 깊이 있게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인제 의원은 “북한에서 핵을 개발하는 강경자주파는 아주 소수이고, 지배엘리트 가운데 온건개혁파의 숫자가 더 많다”며 “그동안 국제사회가 강경자주파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이제는 온건개혁파와 주민들을 변화시키고 내부정세를 바꾸고 비핵화를 이뤄내는 방향으로 전략을 바꿔야 할 때”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또 “한미동맹을 더 강화해야 한다”며 “이제 우리국민들은 북핵을 불안해 하지만, 두려워하지는 않는다. (미국과) 군사 동맹을 강화하면, 북핵에 안심할 것이고, 북한도 함부로 위협하는 일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박세일 이사장은 인사말에서 “현재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다양한 의견들이 개별적으로 나오고 있지만, 논의가 하나로 수렴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공론이 서 있지 않고, 그래서 국론이 확실히 보이지 않는다”며 “이율곡 선생도 공론은 나라의 원기라고 했다. 지금 북핵과 관련한 공론과 국론을 세우고, 국가의 전략을 끌고 국민적 합의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데일리안 = 이충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