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9.26 (월)
조선일보 / A14면
통일 비용이 이익보다 큰 '전환의 계곡' 기간 단축해야
[한반도선진화재단·본지 공동 개최 '제4차 통일포럼']
기존 연구들 통일비용 과장, 초기엔 비용 많이 들지만 편익은 지속적으로 발생
통일비용, 아내 수술비 같아… 미리 건강 돌보는게 현명하듯 대북정책 잘 하면 줄어들 것
한반도선진화재단과 조선일보는 지난 23일 '통일능력과 통일비용'을 주제로 제4차 통일포럼을 개최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기존의 통일비용 논의들이 오히려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공포심만 증폭시켰다는 공통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통일비용의 실체를 제대로 들여다보자는 의견들이 봇물 터지듯 나왔다.
◆"통일은 남는 장사"
참석자들은 지금까지의 논의들이 통일비용을 '북한의 1인당 소득을 남한의 일정 수준까지 도달하도록 하기 위해 투자하는 돈'으로 정의한 것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독일 통일비용(20년간 2조유로)이 이런 식으로 계산됐다.
이화여대 조동호 교수는 "순비용(net cost)으로 정의돼야 할 통일비용을 총비용(total cost)으로 정의함으로써 실제 비용을 크게 부풀리는 결과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통일에 필요한 비용을 모두 합산한 총비용에서 통일로 인해 발생할 편익(이익)을 빼지 않아 비용이 과대 계산됐다는 것이다.
그는 "통일 편익은 통일 한국이 존속하는 한 영원히 발생하기 때문에 그 크기는 논리적으로 무한대"라며 "(유한한 통일비용에서 무한한 통일편익을 뺀) 순비용은 마이너스"라고 말했다. 통일은 '남는 장사'란 얘기다.
서울대 임현진 교수는 "통일비용보다 통일편익이 많다면 그 차이를 통일혜택이라 할 수 있다"며 '통일혜택=통일편익-통일비용'의 등식이 성립한다고 했다.
고려대 조영기 교수는 "투자 성격이 아닌 소모성 비용만 통일비용으로 봐야 한다"며 통일 초기의 위기관리비용, 북한의 사유화 지원비용, 북한의 대외채무를 갚는 비용만을 통일비용으로 정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환의 계곡'을 넘어라
통일연구원과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등 정부의 통일재원 마련 방안을 연구해온 연구기관들은 '2031년 통일이 이뤄질 경우 첫 1년간 55조~249조원의 체제 통합비용이 소요될 것'이란 연구 결과를 지난달 발표했다.
임현진 교수는 "이 규모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몰라도 통일 초기에 부담해야 할 비용이 상당한 규모인 것만은 틀림없다"며 "통일비용의 문제가 '전환의 계곡'〈그래픽〉을 발생시킨다"고 했다. '전환의 계곡'이란 통일혜택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할 때까지를 의미한다는 게 임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전환의 계곡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하나의 장애물에 불과하다"며 "전환의 계곡 통과 시간을 얼마나 단축할 것이냐가 관건"이라고 했다.
◆통일비용 줄일 정책이 중요
통일비용 계산에만 치중한 기존 연구들에 대한 반성도 이어졌다. 미래전략연구원의 구해우 이사장은 "비용 계산보다 초점을 맞춰야 하는 것은 통일과정을 어떻게 만들어가고 관리할 것인가"라며 "그 내용 안에서 통일재원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강대 정영철 교수도 "통일비용을 줄일 수 있는 통일 정책이 전제돼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굉장히 회계학적인 논의에 함몰돼 있었다"고 지적했다.
조동호 교수는 통일비용을 '아내의 수술비용'에 빗댔다. 그는 "아내가 언제 어떤 병에 걸릴지도 모르는데 무작정 돈을 모으는 것보다는 아프지 않도록 평소에 운동과 음식조절에 신경을 쓰는 게 낫다"며 "마찬가지로 우리 경제를 양적·질적으로 건실하게 성장시키는 한편 통일비용을 줄일 대북정책과 외교정책을 모색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통일비용 감당할 만"
조 교수는 "한국의 GDP(국내총생산)가 1조달러이고 한 해 예산이 약 3000억달러"라며 "북한 식량난은 3억달러면 해결된다. 통일 초기 긴급 구호비용 정도는 미리 준비 안 해도 평상시 예산 범위 내에서 조달 능력이 된다"고 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의 윤덕룡 선임연구위원은 "전체 통일비용이 얼마인지도 모르면서 통일비용을 적립하는 것은 저항감만 키운다"면서도 "적어도 통일 초기 3개월, 6개월, 1년간 긴급하게 필요한 것에 대해서는 대비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전환의 계곡
통일 초기 남한의 경제성장은 통일을 하지 않았을 경우보다 저조할 수밖에 없다. 통일 비용이 통일 편익을 압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일 편익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반면, 통일 비용은 점점 줄어들다가 소멸하기 때문에 남한의 경제성장이 통일을 하지 않았을 경우의 예상치를 상회하는 시점이 오게 된다. 이처럼 통일 혜택(통일 편익-통일 비용)이 마이너스에서 플러스로 전환될 때까지가 '전환의 계곡'이다.
[이용수 기자]
"北 개혁·개방하면 통일비용 크게 줄어… 개혁세력 육성에 정부 예산 편성을"
'통일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통일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는 최고의 카드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꼽았다.
통합 직전 동·서독의 경제력 격차(9.7배)에 비해 현재 남·북한의 경제 규모 차이(40배)가 훨씬 큰 것을 감안하면 개혁·개방을 통한 북한의 건실한 경제 성장이 그 어떤 통일비용 절감 방안보다도 효율적(서울대 임현진 교수)이란 것이다.
임 교수는 "지금까지는 통일비용 논의를 하면서 북한의 변화, 즉 개혁·개방이나 체제 전환이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며 "통일비용에 대한 논의에 앞서 북한을 어떻게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낼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보다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전략연구원의 구해우 이사장은 "통일비용은 통일의 과정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이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라며 "구체적 전략을 고민하는 차원에서 본다면 북한을 개혁·개방의 길로 나가게 하는 것이 비용 절감의 핵심 방안"이라고 했다.
구 이사장은 구체적 방안으로 "북한 간부 집단 내에 개혁·개방 세력을 육성하는 데 정부 차원에서 예산을 배정하는 문제를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북한의 특구 개발에 한국이 적극 참여하는 것도 북한의 개혁·개방을 촉진할 수 있는 핵심적 수단"이라고 했다. 그는 "북한의 개혁·개방은 북한 지도부가 원하든 원치 않든 진행될 것"이라며 "다만 그 폭과 깊이에서 북한과 중국의 줄다리기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화여대 조동호 교수도 "내년에 강성 대국의 문을 열겠다는 북한 김정은 체제는 과거의 생존 논리인 '선군정치'를 고집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개방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4차 통일포럼 참석자〈가나다順〉
구해우 미래전략연구원 이사장 권태진 한국농촌경제연구원 부원장 김석진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이효원 서울대 교수 임현진 서울대 교수 정영철 서강대 교수 조건식 한국기술교육대학교 특임교수(전 통일부 차관) 조동호 이화여대 교수 조영기 고려대 교수
[김진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