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1.07.18/A10
"남북통일땐 동북아에 새 시장… 4강<미국·일본·중국·러시아>에 나라별 실리 제시해야"
한반도선진화재단·본지 공동 개최 '제3차 통일포럼'
中-FTA, 日-해저터널 러-한반도 종단철도 등
맞춤형 경협방안 내놓고 "핵위협 사라진다" 설득을
"중국은 무조건 통일에 반대하고, 미국은 반드시 지지할 것이라는 생각부터 버리자. 통일외교는 2차 방정식이 아니라 4차, 5차 방정식이다."(윤영관 서울대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과 조선일보가 지난 15일 개최한 '제3차 통일포럼:적극적 통일외교 전략'에선 주변 4 강대국을 아우를 수 있는 한국의 통일 외교 방안이 논의됐다.
참석자들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선 미국·중국·러시아·일본에 통일한국에 대한 명확한 비전과 함께 각국별 실리를 제시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中: "한중 FTA 즉각 추진해야"
참석자들은 새로운 수퍼파워로 떠오른 중국을 설득하지 않고는 통일이 어렵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오승렬 한국외대 교수는 "중국 합참의장이 김관진 국방부 장관을 만나 15분 동안 미국을 비난한 것은 '한국은 미국의 대리자'라는 편견이 있기 때문"이라며 "중국 일각에선 우리가 한-EU FTA를 추진하는 것을 보고 '한국이 한중 FTA는 등한시하는 것 아니냐'는 시각이 있다"고 말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는 "중국이 최근 북한을 반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핵에 대한 반대이지 북한 정권에 대한 반대는 아니다"며 "중국에 북한과 관계를 끊으라는 식으로 설득하는 것은 중국에 먹히지 않는다"고 했다. 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통일이 되면 동북철도 등으로 중국의 물류망과 새로운 시장이 열린다는 것을 적극 어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 김정일 父子, 개방 상징 中공연 보고 무슨 생각 했을까… 김정일(맨 오른쪽)과 그의 삼남 김정은(왼쪽 첫 번째)이
지난 15일 북중 우호조약 50주년을 맞아 방북한 중국 외교 관리들과 함께 중국 간쑤성 가무극원의 무용극
‘비단길 위의 꽃보라’를 관람하고 있다. 이 창작무용극은 실크로드를 무대로 중국인과 여러 민족이 우정을 쌓는 것이
주요 내용인데, 베이징 외교가에선 북한의 개혁·개방을 유도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담긴 것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조선중앙통신 연합뉴스
◆美: "한미관계 잘못되면 큰일"
오승렬 교수는 "우리 사회에서 보수는 친미, 진보는 친중이라고 하는데, 국익 확보에 대단히 큰 저해 요인"이라고 말했다. 남궁영 한국외대 교수는 "미국은 민족 감정 때문에 한국이 중국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며 "미국의 우려가 지금은 외형적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통일을 가장 방해하는 요소가 될 수도 있다"고 했다. 남궁 교수는 "미국에 대해서 분명한 신뢰 관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한국이 가장 먼저 미국으로부터 버림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日: "北 붕괴 시나리오 공유해야"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의 주된 관심은 한반도 상황이 자국의 안보와 번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라고 했다. 손기섭 부산외대 교수는 "일본은 1990년대까지는 남북 분단을 다소 즐기는 측면이 있었으나 2000년대 들어서는 북한을 잠재적 위협을 넘어서 현실적인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했다. 손 교수는 "일본은 통일 문제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한국과 협력을 하길 원하고 있다"며 "북한의 급변사태에 따른 '컨틴전시 플랜(위기 대처방안)'을 일본과 공유하면서 일본을 완전히 한국 편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고 했다.
▲ 한반도선진화재단과 조선일보가 지난 15일 공동 개최한‘제3차 통일포럼’에서 참석자들이
한반도 통일·외교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러시아: "철도사업 등 비전 필요"
러시아에 대해서는 시베리아 개발과 관련해 남한과 북한, 러시아를 연결하는 철도사업이나 에너지 파이프라인 등 경제 사업의 비전을 제시해서 지지를 이끌어 내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윤영관 교수는 "통일 한국이 새로운 투자 시장을 열어주고 안보에서 핵의 위협이 사라진다는 점을 적극 강조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한국의 국제적인 의무와 이미지 강화도 강조했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영국은 1990년대 국가의 쇠퇴를 막으려고 '쿨 브리튼' 이미지를 만들었고, 일본도 국가 홍보에 적극 나섰었다"며 "한국도 통일 한반도의 이미지와 비전을 세계 각국에 전파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제3차 통일포럼 참석자 〈가나다順〉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김동명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 김상규 건국대 교수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김용호 인하대 교수 남궁영 한국외대 교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박영호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손기섭 부산외대 교수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오승렬 한국외대 교수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 윤영관 서울대 교수 조영기 고려대 교수 주재우 경희대 교수 기사원문
통일 위한 주변국 협력 이끌어내려면
한국 주도로 다자간 新안보협력기구 창설 필요
對北 경제개발 체제 구축 통일 비용 부담도 줄여야
포럼 참석자들은 한반도 통일에 대한 주변국들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방안으로 '다자간 안보협력 체제' 구축을 제안했다.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6자회담과 별개로 다양한 정치·경제 공동체의 틀 속에서 주변국들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냉전시대가 끝났음에도 '한·미·일' 대 '북·중·러'의 대결구도는 그대로 남아 통일에 심각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런 양극화를 뛰어넘는 방법으로 '소 다자주의' 협의체를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한국이 미국·일본과만 대화할 것이 아니라 사안에 따라 중국·일본, 미국·중국 등 여러 파트너와 활발한 대화를 함으로써 냉전(冷戰)식 대결구도를 다자간 협력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김상규 건국대 교수는 한발 더 나아가 한국 주도의 '동북아안보협력기구' 창설을 제안했다. 김 교수는 "우선 '한·미·일'에 더해 러시아까지 총 4개국으로 동북아안보협력기구를 결성하고, 이후 단계적으로 중국 그리고 북한까지 참여시키면 남북문제 해결에서 주변 이해국들이 대타협을 볼 수 있다"고 했다.
통일비용 부담을 줄이기 위한 국제적 차원의 경제·문화 협력 활성화도 시급한 과제로 지적됐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북한의 국민소득을 연간 3000달러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400억달러가 필요하다"며 "통일 이전이라도 세계은행, IMF(국제통화기금), ADB(아시아개발은행) 등과 함께 '북한 경제개발 협력체제'를 구축해 국제 사회의 대북 개발사업을 유도할 수 있다"고 했다.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주변국들과의 관계에서 정부와 기업뿐 아니라 학계와 문화계, 개인들이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통일에 대한 공감대를 끌어내는 노력을 함께해야 한다"며 "한반도 통일이 지역의 번영과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인권을 증진시킬 수 있다는 관점에서 사회 각 부문이 스스로 '공공 외교'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정민 기자 sunny@chosun.com
한국, 독일의 통일외교서 배울 점은
獨, 美 전폭적 지원 끌어내 英·佛 반대 잠재워
포럼 참석자들은 "서독이 통일 과정에서 취한 외교전략에서 한국이 배울 점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당시 독일과 현재 한국이 처한 환경은 차이가 크지만 통일외교전략의 기본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첫째 서독이 미국을 지렛대 삼아 주변국들의 협력을 이끌어냈던 '친서방정책'을 계승해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참석자들은 말했다.
노무현 정권에서 외교부 장관을 지낸 윤영관 서울대 교수는 "독일 통일 과정에서 미국의 (아버지)부시 대통령과 서독의 헬무트 콜 총리는 긴밀하고 끈끈한 협력 관계를 유지했다"며 "서독이 영국과 프랑스의 통일 반대를 잠재우고 소련으로부터 협조를 이끌어낼 수 있었던 핵심 원동력은 미국의 힘이었다"고 말했다.
김상규 건국대 교수도 "당시 미국의 전폭적 지원이 없었다면 동독과 소련을 설득하는 '신동방정책' 역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한국의 지난 정권은 이념적 성향에 따라 한미동맹이라는 기본축을 '북방 관계의 강화'로 대체하려고 했었다"면서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로부터도 협조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했다"고 했다.
둘째, 참석자들은 국민적 합의가 통일외교의 밑바탕이 된다는 점을 서독의 경험이 실증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성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외교 못지않게 내교(內交)가 중요하다"며 "한국 내부의 이념 대립과 통일에 대한 회의론을 불식시키고 큰 합의를 이뤄야 비로소 외교가 힘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는 "통일을 위해 더 큰 경제 발전이 필요하다"고 했고, 김동명 서울대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세계 3위의 경제대국으로서 자연스럽게 동독 주민의 지지를 이끌어낸 서독처럼 한국도 지금보다 막강한 경제력을 키우는 데 전력을 쏟아야 한다"고 했다.
*김진명 기자 geumbori@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