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저널1126호] 2011년 05월 18일 (수)
조현주 기자
“보수·진보 합친 거대 ‘1.5당’ 필요”
‘보수 진영의 거두’ 박세일 한반도재단 이사장 인터뷰
“야권 연대는 ‘야합’, 보수는 ‘가치 연합’ 택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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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저널 임준선 |
박세일 한반도재단 이사장은 ‘태생적 보수’이다. 그는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지냈고,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지난 17대 때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을 지내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그가 내세운 ‘선진화 담론’은 현재 보수 진영의 이론적 토대로 자리 잡았다. 그에게는 언제나 ‘보수 진영의 거두’라는 수식어가 뒤따른다.
그럼에도 그는 스스로를 ‘보수’라 보지 않는다. 지난 5월11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공동체자유주의연구소에서 만난 박이사장은 “나는 보수도, 진보도 아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지금 정치권은 변화가 필요하고, 그에 따른 정계 개편이 불가피하다.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만난 중간지대의 거대 ‘1.5당’이 탄생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지난 4·27 재·보선 이후 한나라당의 위기감이 상당하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는가?
가장 큰 원인은 국민을 실망시켰다는 데 있다. 현 여당에는 두 가지가 빠져 있다. 바로 ‘가치’와 ‘정책’이다. 한나라당의 이념적 가치는 무엇인지, 또 그에 따른 민생에 대한 전략과 정책이 무엇인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그동안 한나라당이 추구하는 ‘이익’은 확실했다. 하지만 추구하는 ‘가치’의 정체성은 불확실했다. 이것이 결국 국민들에게 실망을 주었고, 위기로 간 것이다.
여당의 위기를 넘어 보수의 위기를 이야기하는 이들이 많다.
지금 보수가 ‘보수의 가치’를 지키지 못하고 있어서 그렇다. 보수는 사회 주류적 가치를 보존하고 발전시키려는 이들이다. 이 주류적 가치라는 것이 바로 ‘자유주의’와 ‘공동체’이다. 자유를 추구하는 속에서 사회 발전의 원동력이 생기고 개인의 행복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또 중요한 것이 바로 ‘공동체’이다. 개인의 자유가 자칫 이기적 자유로 번질 수 있기 때문에 공동체를 생각해야 한다. 한나라당이 보수 정당이라면 보수의 기본 가치, 즉 자유와 공동체를 추구해야 한다. 한나라당은 보수적인 문화는 형성되어 있지만 아직 ‘가치’ 면에서는 그렇게 되지 못했다. 지금 현실을 보면 안다. 정책 면에서도 ‘야당이 이렇게 하면 우리도 이렇게 한다’는 식이다. 이렇게 인기 영합으로 나아가는 것은 올바른 보수가 아니다.
그래서인지 보수 진영 내에서 위기에 따른 쇄신 의지가 대단하다. 한나라당 원내대표 선거 결과만 해도 이례적이었다. 비주류 의원이 원내대표직을 맡게 된 것도 그렇고.
아직 멀었다. 주류·비주류의 구분이 국민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나. 주류와 비주류가 가치에 의해서 구분되는 것인가. 가치와 정책에 의해서 구분되는 주류와 비주류였다면 중요하다. 결국 지금 한나라당에서 하는 쇄신이라는 것은 정책이나 가치 면에서 차이가 없는 사람들끼리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니까 국민의 마음이 여의도로부터 떠나는 것이다.
보수의 쇄신과 관련해 최근 ‘가치 연합론’을 주장한 바 있는데, 이에 대해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달라. 또 야권 연대와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인가?
보수가 위기를 벗어나 진정한 쇄신을 하려면 ‘가치 연합’으로 나아가야 한다. 보수의 가치가 무엇인지 정체성을 분명히 정하고 그에 따라 서로 뭉칠 수 있어야 한다. 자유와 공동체라는 가치를 추구하고 그 바탕에서 국민을 위한 정책을 만들어 국민 앞에 나서야 한다. 야권 연대는 기본적으로 ‘이익 연합’이다. 서로 지향하는 가치가 다른데 권력 이익을 위해 모여드는 것이다. 말이 좋아서 야권 연대이지 이는 일종의 야합이다. 보수도 이런 식으로 연합을 하면 안 된다.
더 나아가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상생도 주장했다. ‘극우’와 ‘극좌’를 제외한 중간 세력이 모두 연대해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사실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하나의 당을 만드는 것이 이상적이다. 하나의 당 안에서 진보와 보수가 모여 발전된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여야의 싸움은 정책 개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네들 이익을 위한 것이다. 당이 다르면 생각이 비슷해도 의견이 하나로 모이지 않는다. 하지만 당이 같으면 의견이 쉽게 모인다. 이렇게 될 때 정치가 안정이 된다. 그런 면에서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모인 거대 ‘1.5당’이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되려면 기존 정치권 내의 분당과 신당 등 이합집산이 불가피할 텐데.
당연하다. 하지만 필요한 과정이다. 지금 정치권의 최대 문제는 정책의 혼선이다. 같은 당 내의 정책도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지속되지 못하고 ‘좌로 갔다 우로 갔다’ 한다. 여야가 권력 투쟁을 하기 위해 정책을 인기 영합적으로 쓰기 때문이다. 정책의 혼란을 줄이는 것은 가치의 혼란을 줄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보수의 가치를 지키고 진보의 가치를 지키는 사람들끼리, 각자의 가치관으로 이합집산해서 모이면 오히려 더 좋아질 것이다. 가치를 지키는 사람은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너무 이상적으로 들린다.
물론 쉽지 않다. 보수 정당, 진보 정당 할 것 없이 기득권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멀리 내다볼 때 가치에 따른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의 연대는 바람직하다. 이를 위해 여야 모두 가치 지향성을 확실히 해야 한다. 지금은 정치 개혁이 필요한 시기이다.
현 정치권에서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를 대변하는 정치 세력을 꼽아본다면.
없다. 지금부터 만들어야 한다. 나는 합리적 진보의 경우는 손학규 대표가 만들기를 바란다. 손대표가 합리적 진보의 노선을 확실히 해 나가고 그를 위해 ‘종북 좌파’와는 손을 끊어야 한다고 본다. 한나라당은 개혁적 보수로 나아가기 위해 ‘수구적 보수’와 선을 끊어야 한다.
내년 대선에서 보수 진영의 재집권 가능성을 어떻게 보는가?
자기 개혁을 한다면 재집권이 가능할 것이다. 이는 보수 진영에만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다음 정권을 잡는 문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누가 개혁을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 사실 지금 여당은 이런 개혁이 시작도 못한 단계이다. 이전에도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린 적이 있지 않았나.
내년 대선의 주요 의제는 무엇이 될 것이라고 보는가?
크게 통일, 정치 개혁, 경제 성장 동력 그리고 복지라고 할 수 있다. 통일 문제는 반드시 풀어야 한다. 5년 이내에 통일이 안 되면 대한민국은 극한 분단 상황을 겪게 될 것이다. 정치 역시 이익 정치가 되어가고 ‘사물화’되어가는 것을 개혁해야 한다. ‘박 아무개의 정치, 김 아무개의 정치’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 우습지 않나. 한 사람의 취향이 정치에 영향을 주는 것이 말이 되는가. 사실 지금의 정치에는 정책, 이상, 나아가 국민이 없다. 정치 개혁 문제는 시급하다. 또 현재 경제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있어서 문제이다. 이것이 국민 복지를 떨어뜨린다. 순서상 통일, 정치 개혁, 경제 성장 동력이고 그 다음이 복지이다. 선거 때만 되면 유독 복지 운운하는 것은 한마디로 정치가 쇼를 하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