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재창출만 몰두하면 한나라 또 망한다"
<위기의 한나라, 보수의 위기?①-인터뷰>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손잡고 대한민국 세력 만들어야"
이의춘 편집국장 (2011.05.08 09: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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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 ⓒ데일리안 민은경 기자 |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는 그를 ‘선진화의 교주(敎主)’ ‘보수의 숨은 신(神)이자 거대한 이론가’라고 불렀다. 그러나 그는 일률적인 보수우파-진보좌파의 잣대를 경계했다.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은 보수우파 진영의 ‘기둥’이다. 문민정부 이후 세계화에 이어 선진화를 시대정신으로 제시하며 보수우파의 담론을 주도했다. 보수 우파의 설계사인 셈이다. 뉴라이트를 비롯한 신보수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제공했으며 ‘개혁적 보수’라는 가치를 재정립한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보수우파의 시민사회단체가 내세우는 ‘공동체 자유주의’는 박 이사장이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해 내놓은 이론이다. 조국 교수의 표현은 이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다.
박 이사장은 이제 보수우파만의 ‘장자방(중국 한나라를 세운 유방의 책사)’을 넘어서고 있다. 보수우파의 한계를 벗어나 진보좌파, 중도를 아우르는 ‘대한민국 세력’을 발진시키는 중심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것. 그가 꿈꾸는 선진통일 대한민국은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 그리고 객관적 중도가 공존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가 최근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가감없이 비판을 해 온 까닭도 현재와 같은 ‘편을 가르는 수구적 행태가 계속돼선 안된다’는 위기의식에서였다.
<데일리안>은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동에 있는 <공동체자유주의연구소>에서 박 이사장과 만나 보수및 진보의 위기와 해법, 차기 대선 어젠다, 신 국가 비전, 통일방략, 그가 제창하는 공동체 자유주의의 이념 등에 대해 심층 인터뷰를 가졌다.
박 이사장은 극단적인 이념적 대립과 계층 간 갈등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보수와 진보가 모두 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권 창출에만 골몰하거나, 기득권에 안주하려는 수구적인 행태와 작별하고, 21세기에 걸맞는 보수와 진보의 가치를 정립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정파간 연대 논의와 관련, 정치권에 대해 던진 화두는 이익정당과 가치정당론이다.
보수와 진보진영의 ‘정권을 잡아 나누는 식의 이익연대’에 대해선 날카롭게 비판했다. 박 이사장은 이익연대론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없다”며 “이미지와 구호만으로 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국민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동체를 위한 희생과 헌신, 구국의 청사진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런 과정이 생략됐다는 것이다. 그가 신국가발전 전략으로 개인의 자유 및 창의 확대와 공동체의 책임과 의무를 조화시킨 공동체 자유주의를 제창한 것은 이런 맥락이다.
그는 친정이나 다름없는 보수우파에도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그는 “맹자는 ‘임금은 대의를 이야기해야지, 이익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정치하는 사람이 이익을 말하면서 대의와 가치를 어떻게 제시하고 국가를 바로 세우겠느냐”며 “헌신과 희생이라는 보수의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그가 통일 운동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도 이같은 생각과 구상을 구체화하려는 포석에서 비롯됐다. ‘헌신과 희생’이라는 보수우파의 가치를 실생활 속에서 펼쳐 보이고,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상생하는 원대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밑그림인 셈이다.
이 같은 행보로 인해 내년 12월 대권 도전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박 이사장은 “여의도식 이익정치로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일단 선을 그었다. 기미독립선언문에 참여했던 애국 지사들처럼 현실적 방법론을 고민하는 지성이되, 정치보다 큰 틀에서 해법을 찾아가고 싶다고 밝혔다. 이를 담보할 운동으로 신 만민공동회 같은 시민운동을 구상중임을 내비쳤다.
만민공동회는 일제가 한반도에 대한 강점을 노골화한 1898년 서재필 · 이승만 등 독립지사와 관료, 시민, 단체가 내정개혁과 자주독립외교를 기치로 벌인 대중정치운동이다.
정파와 지역간 이익정치에 매몰된 여의도식 정치와 결별하고, 차별화된 21세기 신민(新民)운동을 구상중인 것으로 보인다.
그는 대권도전을 묻는 질문에 대해서는 말을 아꼈다. 하지만 그가 신국가 발전전략으로 내세운 ‘공동체 자유주의’를 실현하기위한 큰 뜻은 여전히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민정치운동을 통해 국민들에게 새로운 희망과 리더십을 보여주려는 의지는 강했다. 그는 ‘밭’을 갈고, ‘자갈’을 없애는 노력을 한다면 ‘꽃’을 피울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대선 때까지 큰 정치를 위한 밭갈기에 매진할 것임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다음은 박세일 이사장과의 일문일답 전문이다.
- 이명박 정부가 올해로 4년째를 맞고 있다. 그동안 정치, 경제, 사회 등 곳곳에서 갈등이 심화하고 있다. 집권 후반기를 맞아 보수세력의 위기론마저 부쩍 늘어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하나.
“집권세력이 위기를 맞고 분열한 것은 집권세력 내부의 문제와 외부의 좋지 않은 환경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지난 10년 간 김대중 · 노무현 진보정부에서 국가정체성이 흔들리고 사회의 기본가치들이 크게 훼손되는 것을 우려해왔다. 그 결과가 이명박 대통령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현 정부는 이런 민심의 기대에 부응하는데 미흡했다. 국가정체성을 바로세우는 노력이 부족했고 우리 사회의 기본가치를 재정립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국민들은 그동안 이념적으로 대립하고 갈등이 확산되는 것에 염증을 느껴왔다. 현 정부는 국가정체성을 바로세우고 난 후에는 정책과 인사를 통해 사회통합을 실현하는 데 힘써야 했다. 그러나 이 같은 노력이 미흡했다. 특정지역이나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전문성과 합리성을 갖춘 인재를 과감히 등용해야 했다. 정권을 잡는 과정에서는 편을 나눠 경쟁할 수 있지만, 집권세력이 되면 모두가 하나의 국민이다. 끌어안아야 한다. 그런 부분도 부족했다.
정책도 마찬가지다. 보수층을 지지기반으로 한 정부로서 이에 합당한 보수적 가치와 철학을 정립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안마다 단순히 이해관계를 조정하는데 매달려 시간을 허비했다. 양극화와 빈부격차 문제, 성장과 분배, 효율과 형평 문제를 어떻게 다룰 것인지에 대한 보수적 정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공동체를 위한 성장 전략과 철학이 미흡했음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중심이 없는 정책은 국가발전에 마이너스를 가져온다.
야당과 진보 언론들이 ‘파괴적 비판’을 한 것도 부담이 됐다. 야당과 이념언론들이 자유민주주의를 명분으로 공동체를 발전시키는 데 하등 도움이 안 되는 비난을 위한 비난에 몰두한 것은 문제다. 공동체를 파괴하고 국가를 어렵게 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에 독이 된다. 무책임한 정파적 행위다. 하나부터 열까지 비판만 하는데 매달리면 안 된다. 과거 절대권력, 권위주의적 군사정권과 싸울 때는 파괴적인 공격이 민주주의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을 그렇지 않다. 여하튼 현재는 누가 국정을 운영해도 어려운 구조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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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리안 민은경 기자 |
- 청와대의 독주에 따른 소통 부재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소통 부재가 큰 문제임은 틀림없다. 권력이 마음을 낮추고 국민과 야당의 의견을 잘 들어야 하는 것은 정치의 기본이다. 그 점에서 비판받아야 한다. 그러나 소통을 주장하는 야당에도 과연 상대방의 의견을 듣고 합리적이라면 존중하겠다는 마음을 갖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여야 모두 지금은 자기 정리가 안 되어 있는 것 같다. 오직 권력투쟁형이다. 국가경영이라는 관점이 너무 약하다. 각자 스스로를 반성하여 이념적 정책적 자기정체성을 찾고 그 다음에 상대를 존중할 때 비로소 생산적 소통을 할 수 있다. 지금의 소통은 ‘왜 내 말을 들어주지 않느냐’는 불만인 경우가 적지 않다.”
- 정파간 정쟁과 이전투구가 심각해지고, 재보선 패배로 대통령의 레임덕도 가속화하고 있다. 집권층에 대한 민심이반마저 나타나고 있다. 레임덕을 막고, 떠나는 민심을 되돌릴 방안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정부가 지향해야 할 국가적 가치가 무엇인가에 대한 정립이 미흡했다. 지금 이 시기에 보수정권이 나타난 이유가 무엇인지, 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보수적 정권의 존재 이유와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지난 10년간 국가정체성이나 국가가치가 많이 흔들렸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이를 바로세우는 노력이어야 한다. 정권이 진정성을 갖고 국민들에게 다가갔어야 했다. 여기에 지금은 더하여 경제의 성장 동력이 약화되고 있고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북한의 변화를 포함해 동북아가 급변하고 있다. 안과 밖의 엄청난 도전의 시기에 직면해 있다. 어떻게 하여 양극화를 막으면서 성장 동력을 회복할 것인가? 어떻게 하여 북을 개혁개방으로 유도내지 강제하여 통일을 이룰 것인가? 등등에 대한 국가전략과 국가정책을 제시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이해시키고 설득시켜야 한다.
인사 문제 등에서도 사회통합노력이 부족했다. 누가 봐도 그 분야의 전문성과 공인의식이 높은 납득할만한 인사를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인재 풀이 너무 좁은 것 같다. 새로운 인재를 끌어다 쓰지 못하고 있다. 지역과 이념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 진보인사라도 전문성이 있고 합리적이라면 과감하게 기용해야 한다."
- 한나라당이 가치정당이나 이념정당이 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해체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왜 그런가?
“한나라당을 해체하라는 글을 2번이나 썼다. 그때 전화 많이 받았었다.(웃음) 야당도 문제가 많다. 민주당 등 야권전체, 좀더 넓게는 소위 진보세력 전체가 이념적 정체성의 혼란에 빠져 있다. 대한민국의 진보는 이제 종북좌파세력과의 연계를 끊고 합리적 진보세력 중심으로 거듭나야 한다. 야권은 수적으로는 합리적 진보세력이 많은데도, 정작 헤게모니는 종북세력이 잡고 있는 경우가 많다. 본래의 진보는 사회적 약자의 문제 기본적 인권의 문제를 중시하는 입장이다. 그런데 왜 북한 동포의 인권에는 관심이 없는지, 왜 북한인권법은 반대하는지 한심하게 느껴진다. 한마디로 종북좌파는 반(反) 진보이다. 그리고 종북좌파의 영향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대한민국의 진보에는 미래는 없다. 국가발전을 위해 아주 불행한 일이다. 우리사회는 특히 건강한 합리적 진보를 많이 필요로 한다“
- 진보세력이 정권창출에 대한 의지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조국 교수는 <진보집권 플랜>이란 책을 내서 좌파 및 진보세력 연대를 모색하고 있다. 문성근씨는 ‘100만 민란프로젝트’를 가동하며 기선을 잡고 있다. 보수에서도 ‘범우파연대’론이 나오고 있다.
“보수든 진보든 생산적이고 미래지향적인 ‘가치연대’를 지향한다면 긍정적이다. 가치연대는 반드시 구국의 청사진을 제시하는 데, 그리고 공동체를 위한 헌신과 희생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점이다.
범우파연대의 경우 먼저 우파가 무엇인지 정의를 하고, 어떤 가치를 발전시킬지 제시해야 한다. 그런 과정은 생략하고 진보진영처럼 권력을 얻기 위한 이익연대에만 매달리는 것은 올바른 정치가 아니다. 국민에 대한 예의도 아니다. 이미지와 구호만으로 표를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민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지난 대선에서 보수진영이 승리한 것은 주류적 가치를 지키면서 이를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이젠 선진화와 통일을 목표로 새로운 가치를 제시하며 연대해야 한다.
진보측의 연대도 지금까지는 ‘이익연대’에 치우쳐 있다. 이익지향적인 집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진정한 진보적 가치를 고민하지 않고, 진보적 가치를 책임있게 실현할 21세기적 방법을 성찰하지도 않는다. 국가와 역사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도 별로 보이지 않는다. 우선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능한 한 모든 표를 모아 정권을 잡아 권력의 이익을 나누자는 구호와 말만 요란하다.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면서 국민들을 위한다고 한다. 이건 속임수에 불과하다. 이런 나눠먹기식 이익연대는 바람직하지 않다. 집권 후 국가정책을 혼란에 빠지게 한다.
이제 자유와 공동체를 중시하는 개혁적 보수와 평등과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는 합리적 진보세력이 힘을 합쳐 선진통일세력을 만들어야 한다."
- 보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일본 수상이 최근 <보수의 유언>이란 책을 통해 “일본의 잃어버린 10년은 보수의 가치를 망각한데서 비롯됐다”고 강조했다. 보수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끊임없이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의 보수는 어떻게 개혁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의 정치·경제·사회적 갈등은 사상·가치의 혼란에서 온다. 그리고 이런 갈등을 만드는 근본 원인은 정치에서 비롯되고 있다.
정치권의 혼란은 이익정치, 붕당(朋黨)정치에 매몰된 데서 비롯됐다. 가치· 이념· 철학으로 국가가 운영되지 않고 있다. 맹자는 ‘임금은 대의를 이야기해야지, 이익을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정치하는 사람이 이익을 말하기 시작하면 그 밑의 사람들은 더하다. 모두가 자신의 이익만을 말하는데, 대의와 가치를 어떻게 제시하고 국가를 바로 세우겠나.
보수의 가치에 충실해야 한다. 그게 첫 번째다. 보수의 가치는 자유와 공동체고 보수의 미덕은 바로 헌신과 희생이다. 그것이 현재는 잘 나타나지 않지만, 이것이 선행된 다음에 가치와 이념을 같이하는 집단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고 국가비전과 전략을 고민하고 이를 국민들에 제시해야 한다.”
- 보수가 재집권하려면 쇄신과 개혁을 부단히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쇄신과 개혁은 보수의 집권전략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나는 올바른 대한민국 세력이 집권하길 바란다. 기본적으로 자유와 공동체라는 가치를 지키면서 평등과 약자보호라는 가치에도 깊이 관심을 가지는 세력 그러면서도 역사· 자연 ·문화 등을 소중히 할 수 있는 세력이다. 한마디로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힘을 합치면 대한민국 세력이 된다고 볼 수 있다. 언젠가 우리 역사에도 진정한 개혁적 보수와 합리적 진보가 하나가 된 세력이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그러면 정치안정도 국민행복도 국가발전도 훨씬 빨라질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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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리안 민은경 기자 |
- '대한민국 세력'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내년 선거에 내걸 공약이 그 잣대가 될 것이다.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포퓰리즘적 공약이 쏟아질 것이다. 바람직한 국가전략은 소홀히 한 채 인기영합적인 정책을 앞 다퉈 내놓을 게 뻔하다. 그렇게 되면 개혁적 보수도 합리적 진보도 아니다. 이익집단이지 가치집단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리가 만드는 선진통일연합은 이런 문제를 거르기 위한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할 것이다. 후보들의 공약을 예산적 측면에서 실현가능성이 있는지 점점해서 그 결과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 국가적 현안과 관련해 이야기를 돌려보자. 영남권 신공항 백지화, 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선정, LH본사 이전 등 대형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나라가 사분오열되고 있다.
“국책사업은 그동안 크게 잘못 운영해왔다. 이는 지방의 사업이 아니라 국가가 책임지고 해야 하는 사업이다. 그런데 개별부처나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문제를 풀려고 하다 보니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국책사업들은 청와대나 총리실이 국토의 종합적이고 합리적인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추진했어야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됐나. 중앙정부는 손들고 있었고 지방자치단체장들은 주민들을 부추기고 국회의원들은 여기에 장단을 맞췄다.
영남권 신공항 문제만 보더라도 그렇다. 통일 이후를 대비한 동북아 시대에서도 영남권 신공항이 과연 적합한 위치인지 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지자체장들이 예산을 따내려고 경쟁을 벌였다. 정부는 그런 상황에서 조정역할을 하지 않아 지역갈등의 골을 깊게 만들었다. 전체적 관점에서 국가 비전을 어떻게 구체화시킬지에 대해 조정하고, 이를 국민들에게 설득하는 데 실패했다.”
- 내년 대선의 핵심 어젠다는 무엇이 돼야 하는가.
“통일문제가 가장 큰 이슈가 돼야 한다. 통일의 시기가 빨리 다가오고 있음은 분명하다. 통일에 대비한 비전과 전략을 세워야 한다. 현재의 분단체제가 지속될 것이라거나, 북한의 급변사태에 의한 붕괴 후 통일이 저절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시각은 잘못됐다. 이미 분단이 유지될 수 없는 상황이 된 데다, 북한이 붕괴된다고 새로운 분단으로 가지 않고 통일이 자연스럽게 이뤄진다는 보장도 전혀 없다.
둘째 국가능력을 높이는 과제가 중요하다. 우선 종합적인 국가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그동안 개별 전략이나 기획은 있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전략과 기획은 없었다. 과거 경제기획원과 같은 기능의 국가기획원을 설립해 중장기 계획을 세워야 한다. 동시에 싱크탱크인 국가전략원을 만들어 종합적인 국가전략도 모색해야 한다. KDI는 경제쪽에만 치중돼 있어 한계가 있다. 중국의 사회과학원처럼 각 분야에 걸쳐 종합적인 장기 정책과 비전을 수립하는 국가전략원이 필요하다.
셋째 교육개혁과 과학혁신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교육은 세계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 우리만 문 닫고 살 수는 없다. 결과 평등에 치우친 교육정책은 국가의 책무를 방기하는 것이다. 국민들을 버리는 기민(棄民)정책이다. 무한경쟁시대를 맞아 창의교육에 힘써 세계최고의 인재를 길러야 한다. 동시에 모든 학생들이 그러한 양질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지도록 지원하는 것도 대단히 중요하다. 한마디로 하향 평등화가 아닌 상향 평등화정책을 펴야 한다. 물론 교육을 통해 성숙한 민주시민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하는 교육도 중요하다.
넷째 고용과 복지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先고용 後복지를 국가전략으로 기본으로 제시해야 한다. 사실은 빈부격차 및 양극화 해소도 교육투자와 고용확대에서 시작된다. 그래서 국가경제의 성장 잠재력과 동력을 높이는 전략도 함께 나와야 진정한 고용복지비전이 된다.
마지막으로 정치개혁이다. 현재처럼 정당이 폐쇄되고, 지역과 이익에 기반 한 정당 구조로는 선진정치를 이룰 수 없다. 가치중심이 아니라 이익중심의 정치, 국가전략보다 정파이해가 앞서는 정치, 국가경영보다 권력투쟁이 앞서는 정치, 공당이 아니라 붕당이 지배하는 정치. 이래 가지고는 대한민국은 안과 밖의 도전을 극복할 수 없고 따라서 선진과 통일을 성공적으로 이루어 낼 수 없다.
- 통일비전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는.
“앞으로 남북문제는 현상유지가 아니라 적극적 통일정책으로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적 관점에서 통일을 어떻게 성공시킬 지 그 과정과 방법에 대한 비전제시와 준비노력이 대단히 미약하다. 그동안은 남북대화나 협력도 분단의 평화적 관리라는 현상유지가 주된 목표였다. 그러나 더 이상 분단체제는 지속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 앞으로는 북한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 북한이 붕괴하면 저절로 통일이 오기보다는 친중국 변방정권의 등장이라는 신분단시대로 되어 버릴 가능성이 더 높다. 이는 절대적으로 막아야 한다.
그동안 역대정부는 화해와 협력을 북한정권과만 하려 했다. 북한주민들과의 화해협력은 전혀 관심 밖이었다. 그래서 각종 지원과 경제협력 등을 많이 했지만, 핵개발 지속과 식량난, 정치범 수용소 증가와 인권유린 등 역효과만 냈다. 북한 김정일 정권은 북한주민의 삶을 개선하기위한 개혁개방정책의 노력을 전혀 하지 아니했다.
이제는 대북정책의 초점을 북한 주민에 맞춰야 한다. 북한 주민을 포용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들에게 여러 가지 직접적 지원을 할 수도 있지만, 가장 빠르고 현실적인 대책은 2만 명이 넘는 탈북자에 대한 우리의 정책이다. 그리고 50만 명이 넘는 조선족 동포들에 대한 우리의 정책이다. 탈북자들과 조선족 동포들이 남한 사회에서 제대로 정착하도록 그리고 이 사회에 사는 것에 대하여 보람과 가치를 느끼도록 모든 노력을 하여야 한다. 이것이 북한주민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대단히 클 것이다."
- 통일에 대비해 4강 외교를 넘어선 통일외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그렇다. 우리의 통일여건 조성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주변4강에 대한 적극적 통일외교가 대단히 부족하였다. 천안암 폭침이후 한국과 미국, 북한과 중국의 동맹관계가 다시금 굳건해지면서 신냉전시대가 전개되고 있다. 이제는 적극적 통일외교로 가야 한다. 특히 중국 러시아 등이 한국주도의 통일에 대한 우려를 줄이도록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이를 위해 모든 외교역량을 모아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중국과의 관계이다. 중국은 통일과정에서 한반도가 안정적으로 관리되지 않을 가능성 때문에 불안해한다. 다양한 대화 채널을 통해 중국을 설득시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 미국과 소통하면서도 얼마든지 중국과도 원만하게 지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중국과의 외교 성적표는 좋지 못하다. 정부가 이 점은 분명히 반성해야 한다. 대중국 통일외교 전략이 미흡하다. 그리고 우리나라 중국 전문가라는 이들도 중국의 입장에서만 현상을 ‘설명’할 뿐 우리의 입장에서 통일을 위한 적극적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대중국 통일외교는 새로운 시각에서 고민할 필요가 있다.”
- 국내 문제로 돌아가보자. 통일과 선진화를 화두로 선진통일연합을 발족시켰다. 취지를 설명해 달라.
“우리나라는 아직 선진국은 아니다. 선진국과 중진국 그 사이에서 서 있다. 선진화는 단순히 경제적 사회적으로 더 나아지는 문제가 아니다. 우리가 세계 일등국가, 세계중심국가가 되어 새로운 국제질서를 주도해나가자는 데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한민족의 2000년 역사를 보면 우리는 항상 세계주변국에 머물거나, 세계2등 국가에 불과했다. 3국 시대부터 당나라 등 중국으로부터 임금 책봉을 받았고 조공이 시작됐다. 원나라, 청나라에 꽃다운 여성들이 얼마나 많이 끌려갔나. 원나라가 고려 침략 후 압송된 고려여인들이 현지에서 상추를 심어먹었다. 고려 여인들은 상추쌈을 먹으면서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달랬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중국에 대한 변방국 수난은 1894년 청일전쟁까지 이어졌다. 1910년 이후 일제에 강점되면서 우리는 일본의 주변국이 됐다가, 해방 후 냉전시기에는 미·소의 변방국이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한(恨)이 많았다.
신채호 선생이나 이승만대통령 김구선생 등이 자주국, 독립국의 국민으로 살고 싶다고 절규한 것은 다른 국가에 직·간접적으로 종속되어 살아온 변방국가의 국민으로서의 한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동안 그런 역사였다면, 이제는 바꿔야 하지 않나.
선진화라는 것은 이런 불행했던 역사를 바꿔 우리도 세계 중심국가 세계 일등국가가 되어보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남북이 통일되고, 신동북아 시대를 열어야 하고 나아가 신유라시아 시대로 발전해야 한다. 우리가 꿈꾸는 선진화가 이뤄진다면 국제관계도 종전과 같이 중심과 변방의 수직적인 관계가 아니라 독립주권국가 간에 호혜평등의 수평적 관계로 만들 수 있게 된다. 그러면 그러한 수평적 관계 속에서 우리는 동북아 공동체 혹은 동아시아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경제 분야에서 세계일등국가로 도약하고, 외교 분야에서 동북아 3국 관계에서 1극을 담당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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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일리안 민은경 기자 |
- 새로운 국가의 이념으로 공동체 자유주의를 강조하고 있는데?
“공동체 자유주의는 새로운 국가발전 원리를 천명한 것이다. 국가발전과 개인의 행복은 자유를 확대하고 심화하는 데서 비롯된다. 자유의 폭과 깊이를 넓힐수록 창조와 진보가 나온다. 그러나 너무 자유만 확대하면 개인의 이익만 중시하는 이기적 자유주의에 빠질 수 있다. 이럴 경우 자유는 지속될 수 없고, 공동체는 깨어진다.
따라서 자유를 추구하되 공동체의 가치, 윤리를 소중히 여기는 자유주의를 추구할 때 비로소 개인과 공동체가 함께 균형 있고 조화롭게 발전을 이룰 수 있다. 공동체나 자유주의 어느 한 쪽에 쏠리게 되면 우파의 파시즘이나 좌파의 국가사회주의로 변질될 수 있다.
공동체를 강조한다고 해서 집단주의, 전체주의를 지향하자는 것은 아니다. 역사와 국가에 대한 자긍심, 환경에 대한 소중함, 이웃에 대한 배려와 사랑을 실생활에 적용하자는 것이다. 공동체적 연대가 약하면 개인의 성취동기도 약하고 개인의 발전이 국가의 발전으로 이어지지도 않는다. 공동체 자유주의는 국가와 개인을 묶는 고리인 동시에 국가와 개인이 모두 발전할 수 있는 방법론인 것이다.
중국의 한 교수가 2006년에 우리가 쓴 <공동체 자유주의>라는 책을 관심있게 읽었다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중국은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루었지만 사회가 혼란스럽고 분열되어 있다. 사회를 다시 묶을 해법의 하나로 공동체 자유주의에 주목하고 있는 것 같다.
공동체 자유주의는 정치개혁이라는 분야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공동체주의에서는 지도자의 윤리, 정신적 기강, 국가 리더십의 중요성 등이 나온다. 자유주의에서는 의회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제도화가 나온다.”
- 선진통일연대를 출범하면서 ‘큰 뜻’을 품고 있는 것 같다.
“여의도식 붕당정치, 이익정치로는 선진화와 통일을 이룰 수 없다. 국민운동을 통해 선진화와 통일을 앞당기려는 취지에서 출범시켰다. 이 운동은 개인의 프로젝트가 아니다. 깨어 있는 국민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가는 운동이다. 밭을 갈고 꽃을 심고 가꾸는 일을 공동체 구성원이 함께 하는 것이다. 여의도 정치보다 더 크고 의미가 있는 일이다.
나는 역사를 바로잡고, 통일을 앞당기는데 힘을 쏟고 싶다. 기미독립선언을 이루어낸 큰 정치를 만드는 역사세력으로서 내 몫을 다할 생각이다. 지금과 같은 식의 여의도 정치에 복귀할 생각은 없다.”[데일리안 = 대담 이의춘 편집국장/정리 변윤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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