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선진화재단ㆍ한경 월례 토론회]
"인위적 물가통제보다 인플레 기대심리 꺾어야"
지난달 물가상승률 4.5%…이마트 지수는 2배 넘어
공공요금 억제 역효과 불러 환율 하락 등 고려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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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선진화재단과 한국경제신문은 29일 '물가,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월례 토론회를 열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이날 주제발표에서 "당초 3.2%로 예상했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 후반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2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전년 동월 대비 4.5%를 넘는 등 물가 불안이 현실화하고 있다. 3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도 2월 수준을 넘어 5%까지 치솟을 것이라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체감 인플레(물가상승)는 더욱 심각하다. 이마트가 78개 주요 상품가격을 조사해 집계하는 이마트 생활가격지수 2월치는 전년 동월 대비 9.4% 올랐다. 한은 통계치의 2배를 넘는다.
이 같은 물가 대란에도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반도선진화재단과 한국경제신문은 29일 월례 토론회에서 '물가,무엇이 문제인가'를 주제로 다양한 방안들을 논의했다.
◆현실이 지표보다 더 심각
토론 참석자들은 정부의 물가지표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해 대응이 늦어지는 게 아니냐고 질타했다. 김자혜 소비자시민모임 사무총장은 "시장에 나가보면 주먹만한 감자 하나가 1700원 하고,기름도 ℓ당 2000원이 넘는 주유소가 절반을 넘었다"며 "한국은행에서는 물가 상승률이 4%대라고 하는데 소비자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조만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도 "전셋값이 작년에 비해 수천만원씩 뛰었는데 정부의 물가 지표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인규 한국은행 물가통계팀장은 "소비자 물가지수는 489개 품목을 조사해 만들어진다"며 "5년에 한 번씩 조정이 이뤄지기 때문에 체감 물가와는 거리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연령이나 소득에 따른 새로운 지표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해봐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인플레 기대심리 진정 시급
물가를 잡기 위해서는 인플레 기대심리부터 꺾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인플레 기대심리가 커지면 수급 문제와는 무관하게 임금 인상 압력이 높아져 물가가 계속 올라가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는 "통화량 증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수요가 늘고 공급이 줄면서 인플레 기대심리도 확산되는 추세"라며 "그렇다고 해서 원가공개 요구나 인위적인 공공요금 억제와 같은 시장왜곡 정책은 부작용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원가를 따지는 가격책정은 원가를 부풀리게 할 우려가 많고,인위적인 공공요금 억제는 수요를 오히려 늘리는 역효과를 초래한다는 얘기다.
김현욱 KDI 거시경제연구부장은 "한국의 잠재 경제성장률이 4.5% 정도인 점을 감안할 때 2% 정도의 물가 상승률을 더한 명목금리는 6% 정도가 적당하다"며 "4%대에 머물고 있는 현 금리 수준은 비정상적으로 낮다"고 강조했다.
박원암 홍익대 경제학과 교수는 "물가를 올리려면 고용을 줄여야 하는 선택의 문제에 부닥치게 된다"며 "유가 상승도 단순히 외부 변수가 아니라 수출 증가 때문이라고 한다면 결국 총수요 문제로 귀결된다"고 지적했다.
◆환율 하락 용인 가능성
송태정 우리금융지주 수석연구위원은 "정책 당국이 금리는 계속 올리겠다는 시그널을 시장에 주고 있지만 환율에 대해서는 별다른 스탠스가 없는 것 같다"며 "고환율 정책은 수출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인 만큼 이에 대한 정상화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세상인이나 농민 등 생산자 보호와 소비자 권익 보호에 대한 이해관계 상충 문제도 있는 만큼 정책 당국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영빈 변호사는 "쌀 가격을 높게 유지하는 것은 결국 농민을 보호하기 위한 측면도 있다"며 "소비자와 생산자 간 트레이드오프 관계가 존재하는 만큼 정부가 이에 대한 정책을 제대로 잡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
한국 돼지고기값 외국의 2배…밀가루 40%ㆍ설탕 16% 저렴
11개국 생필품 가격 조사
소비자원 지난달 21~25일
서울ㆍ뉴욕ㆍ파리 등 조사
"독과점 감시 강화해야"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생활필수품 중 돼지고기 가격은 외국보다 2배가량 비싸고,밀가루와 라면 값은 40% 이상 싼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소비자원이 29일 발표한 11개국 22개 생필품의 가격조사 결과에 따르면 외국보다 비싼 품목은 12개로 이 중 돼지고기의 값(국내산 삼겹살,㎏당 단위가격 기준)은 조사대상국 가운데 가장 비싼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 조사는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생필품 국내외 가격 조사를 지시한 뒤 처음 발표된 결과로,향후 가격 조정 및 독과점 규제 강화 등의 조치가 따를지 주목된다.
◆수급불균형 · 독과점 구조가 원인
소비자원이 이날 발표한 자료는 지난달 21일부터 25일까지 한국(서울) 미국(뉴욕) 캐나다(토론토) 영국(런던) 프랑스(파리) 이탈리아(밀라노) 독일(프랑크푸르트) 일본(도쿄) 등 주요 7개국(G7)과 중국(홍콩) 싱가포르(싱가포르) 대만(타이베이) 등 아시아 국가의 주요 도시 11곳의 대형마트 등에서 판매하는 22개 생필품의 가격을 조사한 결과다.
외국보다 비싼 품목은 돼지고기(104%),마늘(70%),쇠고기(56%),청바지(24%),스낵과자(17%),분유(8%),휘발유(2%),달걀(2%),샴푸(2%) 등이었다.
특히 돼지고기는 11개국의 평균 가격보다 104%나 비쌌다. 이에 대해 정주성 축산유통연구소장은 "돼지고기는 지난해 11월 구제역 발생 이후 공급이 3분의 1 이상 줄어 도매가격이 60% 이상 오른 데 따른 것"며 "쇠고기도 외국보다 소량으로 생산되는 유통구조 때문에 생산원가 차이가 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원의 원혜일 책임연구원은 "생필품마다 유통구조가 다른데다 석유 생리대 세제 등의 생필품은 소수업체가 시장을 독점 혹은 과점하고 있어 가격 불균형이 발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석유의 경우 국내 4개 정유사가 약 74%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고 세제도 4개 업체가 75%를,생리대는 3개 업체가 93%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라면(-46%),밀가루(-42%),등유(-19%),양파(-17%),설탕(-16%),식용유(-12%),화장지(-10%),우유(-10%),빵(-10%),LPG(-2%) 등은 외국보다 저렴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따라 그동안 가격을 올리지 못해 속앓이를 하고 있는 밀가루업체 등이 가격인상에 나설 것인지 관심이다.
◆국제시세에 맞춰 가격 변동 가능성
이번 조사는 지난해 10월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서민들이 생활하는 데 필수적인 품목들을 조사해 국제시세보다 비싸면 대책을 세워서 수급을 조정해서라도 가격을 떨어뜨려야 한다"고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소비자원도 이날 조사결과를 발표하면서 "국내 가격이 국제시세보다 높은 품목은 생필품가격정보시스템(T프라이스)을 통해 가격정보를 공개하고 공정거래위원회 등 해당부처,기관과 개선방안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소비자원 관계자는 "원인에 따라 다른 조치를 취해야겠지만 독과점의 경우는 공정위에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건의하게 될 것"이라며 "수급불균형의 문제는 해당 부처에서 조치를 취할 수 있는지 함께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소비자원은 2분기 중에 28개 생필품을 추가로 선정해 총 50개 제품의 국내 · 외 가격 차이를 조사할 계획이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
"물가상승률 年 3%대 후반 예상…기준금리 올려야"
김현욱 KDI 거시경제 연구부장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 사진) 거시경제연구부장은 주제발표에서 "당초 3.2%로 예상했던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3%대 후반으로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작년 말 작성한 KDI 공식 전망에서 물가 상승률을 3.2%로 내다봤으나 대내외 경제여건의 변화를 감안하면 상향 조정할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석유류와 농산물을 제외한 근원물가 상승률 전망치도 2.7%에서 3%대 중반으로 높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리비아 등 북아프리카 및 중동의 정치 불안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고 이상 한파와 구제역으로 농축수산물 가격 상승세가 지속돼 물가 상승률이 예상했던 것보다도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김 부장은 "원 · 달러 환율이 1100~1140원대를 오르내리면서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30~40원 높게 유지된 것도 물가 상승 폭을 키웠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최근 물가 상승이 예견됐던 일이라고 진단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초저금리가 장기간 지속되면서 통화량이 늘었고 2009년 하반기부터 빠른 경기 회복 영향으로 총수요압력이 증대됐다는 설명이다.
김 부장은 "본원통화 증가율이 2009년 18.1%,2010년 9.5%로 높았다"며 "본원통화 증가율이 1~3년의 시차를 두고 물가 상승률에 영향을 미친다고 봤을 때 중장기 차원의 선제적 대응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금융위기의 영향으로 마이너스로 떨어졌던 총수요압력이 2009년 말 이미 플러스로 반전됐다"며 "빠른 경기 회복에도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2%로 유지해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김 부장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확산을 막는 게 중요한 정책 과제라고 강조했다. 인플레 기대심리가 높아지면 물가와 임금이 서로 상승 작용을 하는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잠재성장률과 경기 상황에 비춰 연 3%의 기준금리는 너무 낮다"며 "한은의 금리 인상 속도에 따라 하반기 물가 향방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 한반도선진화재단과 한국경제가 공동기획으로 진행하는 제 22회 월례토론회는 [정책물가와 피부물가의 차이, 문제와 대안]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관련된 기사는 2011년 3월30일(수) 한국경제 A8면에 게재되었습니다. 기사원문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