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선진화재단ㆍ한국경제 공동기획 월례토론회]
"돈 나올 곳 생각 않는 공짜 점심…무책임한 현혹"
● 무상급식 어떻게 봐야하나
지금도 가난한 학생은 혜택…모두에게 주자는 게 문제
유럽은 복지 축소 중인데 세금 더 내거나 부채 늘려야
"무상 급식은 아동기본권", "대상 선별 어렵다" 주장도
| ||
정치권에서 복지 논쟁이 한창이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복지 이슈 선점에 나섰다.
가장 논란인 것은 무상급식과 무상보육 · 무상의료 등 '무상' 시리즈다. 이 가운데 무상급식은 서울시에서 도입 여부를 놓고 주민투표까지 추진하는 등 집중적인 관심을 받고 있다. 한반도선진화재단과 한국경제신문은 25일 월례토론회를 갖고 '학교 무상급식 어떻게 봐야 하나'를 주제로 다양한 해법을 논의했다.
| ||
◆개념부터 명확히 해야
전문가들은 무상급식과 관련된 용어부터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았다. 이승훈 서울대 명예교수는 "논란이 되는 것은 모든 학생들에게 공짜 급식을 하자는 것이기 때문에 '전면 무상급식'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하다"고 제안했다. 점심을 굶는 가난한 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지금 그렇게 하고 있기 때문에 '전면' 무상급식이라는 말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신도철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세금을 늘리거나 후세대가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세금 급식이고 재정 급식"이라며 "정치권이 잘못 사용하는 용어 때문에 국민 전체가 포퓰리즘(대중 인기영합주의)의 함정에 빠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유럽 등 전 세계 많은 나라들이 재정 부담 때문에 복지를 축소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반면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무상급식을 단순히 경제 논리로만 봐서는 곤란하다"며 "비효율과 낭비가 일어날 것이라는 우려는 지나치다"고 말했다. 그는 "복지 정책의 대상을 가려내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며 선별적 급식의 문제를 지적했다.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굶는 아이들에 대한 선별적 급식은 아동을 차별하고 낙인감을 안겨주는 것"이라며 "국제연합(UN)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한국은 벌써 도입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외국에서는 전면 급식이 아니더라도 아동수당 등을 통해 실질적으로 무상급식을 하고 있다"며 지역 경제와 농어촌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세금 안내고 복지만 늘릴 순 없어
홍후조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학생들이 눈칫밥을 먹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에는 전적으로 동의한다"면서도 "공교육의 질을 높이는 데 써야 할 교육 재정을 무상급식에 쓰는 것은 우선 순위가 맞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무상급식 주장은 공짜에 더 의존하게 만들어 중산층을 타락시키는 것"이라며 "돈 나올 곳은 생각하지 않는 정치권의 무책임한 구호가 국민들을 현혹시키고 있다"고 꼬집었다.
부자들이 탈법과 탈세로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복지에 들어가는 세금을 더 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발상은 극히 위험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승훈 명예교수는 "부자들이 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면 처벌해야 하는 것"이라며 "복지라는 이름으로 여유있는 사람의 돈을 빼앗아 나눠주겠다는 생각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영기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이런 식으로 무책임한 복지 주장까지 제기된다면 귀결점은 결국 사회주의가 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교육 시스템 개선이 더 시급
그러나 무상급식은 교육상으로도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도 많았다. 홍후조 고려대 교수는 "공짜 점심 한 끼 준다고 어려운 학생들의 사정이 나아지지 않는다"며 "그 돈으로 복지의 사각지대를 없애고 가난한 학생들에 대한 지원을 더 늘리는 것이 낫다"고 강조했다. 강정모 경희대 경영학부 교수는 "무상급식은 어린 학생들에게 돈의 소중함을 망각시키고 의존심만 키우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이영옥 서울시여성능력개발원장은 "전면 무상급식을 하면 그 질이 낮아져 학부모들이 반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천세영 한국교육학술정보원장은 "지금도 학교 급식에 5조원가량이 들어가는데 전면 무상급식을 하면 그 규모는 훨씬 커질 수밖에 없다"며 "교육 예산상 실현 불가능한 것을 정치권이 들고 나왔다"고 비판했다.
김종석 홍익대 경제학 교수는 "무상급식에 대한 찬반은 성장론과 분배론의 대립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면서도 "어떤 경우든지 정치권의 선거 놀음에 이용돼서는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고 정리했다.
*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무상급식 한다고 선진국 아니다…`보편적 권리`로 포장하는 것은 잘못"
주제발표 현진권 아주대 교수
![]() |
무상급식은 정치인들이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개발한 정치상품이다. 정치를 공급자(정당)와 수요자(유권자)가 만나는 시장이라고 했을 때 무상급식은 합리적으로 무지한 유권자들을 파고들 수 있는 정책이다. 합리적 무지란 유권자들이 정당과 정치인을 선택하는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을 뜻한다.
무상급식을 보편적 권리로 포장해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무상급식은 'right(권리)'라기보다는 'entitlement(자격)'이다. 권리는 다른 사람의 희생을 요구하지 않지만 자격은 누군가의 경제적 희생을 전제로 한다.
무상급식을 어느 범위까지 확대할지는 결국 국민의 세금 부담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 북유럽 국가들처럼 조세와 사회보험료를 합친 국민부담률이 50%에 육박하고 국방비 등에 대한 부담이 작은 나라에서는 얼마든지 100% 무상급식을 할 수 있다. 무상급식을 하는 스웨덴과 핀란드는 2008년 기준으로 국민부담률이 각각 47.1%와 42.8%에 달한다. 같은 해 한국의 국민부담률은 26.6%에 불과했다. 한국은 또 전체 예산의 10%를 국방비로 지출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 있다.
이런 차이를 무시한 채 스웨덴이나 핀란드처럼 100% 무상급식을 할 수는 없다. 전면 무상급식 주장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세금을 늘리자는 얘기부터 해야 한다. 연간 학교 급식 예산 중 67%는 학생들의 부모가 부담한다. 학교 급식이 공공재가 아닌 사적 재화로 거래되고 있다는 의미다. 사적 재화라고 해도 국민이 원한다면 정부에서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정부 예산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려면 무상급식은 스스로 급식비를 감당할 수 없는 빈곤층으로 대상을 한정해야 한다.
기초생활보장 가구에 무상급식을 제공하고 차상위층에 대해서는 감면율을 적용하는 것이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이다. 정부는 사용할 수 있는 예산과 우선순위를 고려해 무상급식 대상자를 점차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
"전면 무상은 지나쳐"…"의무교육의 연장선"
학교 급식 성격 논란
학교 급식이라는 재화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를 놓고도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학교 급식이 '공공재'라면 정부가 모든 학생들에게 무상급을 제공할 필요가 있지만,공공재가 아니라면 정부 개입의 필요성은 그만큼 줄어든다.
주제발표를 한 현진권 아주대 경제학과 교수는 "급식은 공공재가 아닌 사적 재화이므로 정부 개입의 논리적 타당성은 없다"며 "공유지의 비극(tragedy of commons)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공유지의 비극은 개인들이 '공동으로 소유한 자원'을 우선적으로 과도하게 사용해 황폐화되고 결국 모두가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신도철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도 "치안이나 국방은 국가가 나서지 않으면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지만 먹는 문제는 그렇지 않다"며 "무상급식을 전 계층으로 확대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개입할 수 있지만 그런 경우에도 자립 능력이 없는 계층을 집중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조흥식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학교에서 밥을 먹는 것과 집에서 먹는 것은 다르다"며 학교 급식이 공공재 성격을 갖는다고 반박했다. 조 교수는 "무상급식은 헌법에서 정한 의무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설령 공공재가 아니라 하더라도 학교 급식은 모든 사람이 기본적인 수준을 보장받아야 하는 가치재 성격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교육이나 의료도 공공재가 아니지만 정부가 개입하고 있다"며 "누가 비용을 부담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있지만 학교 급식은 기본적인 권리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승훈 서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점심을 굶는 학생이 옆에 있으면 다른 사람들도 불편하다는 점에서 학교 급식은 공공재 성격이 분명히 있다"며 "하지만 그런 문제는 점심을 굶는 학생들에게 급식을 제공해서 해결할 문제이며,전면 무상급식은 과도한 지출을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만 지원해줘도 모든 학생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한다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할 수 있다"며 "비용을 아껴 교육의 질을 높일 수 있는 다른 부문에 쓰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유승호 기자 usho@hankyung.com
※한반도선진화재단과 한국경제가 공동기획으로 진행하고 있는 제 20회 월례토론회는 ["학교 (무상)급식"]을 주제로 진행되었습니다.
토론 내용과 관련된 기사는 2011년 1월26일(수) 한국경제 A4면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