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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의대 증원 정책의 실체적 내용에 대한 법원의 개입은 부적절] 통권302호
 
2024-05-07 10:4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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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통권302호 

임종훈 전 국회입법조사처장, 전 홍익대학교 법대 교수


1. 서울고등법원 항고부의 조치


정부의 의과대학 정원 증원 방침에 반발하는 의대 교수 등이 정부를 상대로 의대 증원 처분 등을 취소해 달라며 제기한 집행정지 신청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고등법원의 항고심 재판부는 심문에서 5월 중순까지 (신청의 인용 여부를) 결정할 테니, 그 전에 (정부에 의한) 최종 승인이 나지 않게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증원의 근거를 하나하나 따져보기 위해서 정부 측에 증원에 대한 과학적 근거 자료를 제출하고, 증원에 대비해서 인적자원과 물적 시설을 제대로 조사하고 증원분을 배정한 것인지 등 증원과 관련된 현장실사 자료와 회의록까지 제출하라고 요청했다. 1심 재판부가 신청인 적격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청을 각하한 것과 전혀 다른 내용이다.

 

한편 항고심 재판부는 이러한 조치가 법적 구속력이나 강제력은 없다는 것도 밝히고 있다. 이례적인 언급이다. 아울러 항고심 재판부는 모든 행정행위는 사법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대입 전형 시행계획을 입학 연도가 개시되는 날의 6개월 전까지 공표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고등교육법 시행령 제33조의 규정을 고려하면, 2025학년도 대학 입학 정원은 20246월 말까지 공표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서울고법 항고심 재판부의 결정은 의대 정원 증원 문제에 관하여 중요한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2. 행정행위에 대한 사법적 통제와 그 한계


항고심 재판부가 언급한 대로 행정행위는 사법적 통제를 받아야 한다. 그것이 삼권분립 원리와 법치주의가 요구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모든 행정부의 작용이 사법적 통제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행정행위에 대한 사법적 통제는 주로 국민의 구체적 권리에 관한 법적 분쟁에 대해서 허용된다. 법적 권리의 직접적 침해가 아니고, 사실적ㆍ반사적 이익의 침해가 문제 되는 경우 사법부의 개입은 부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행정부의 행위 중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 수반되는 통치행위에 대해서는 사법적 통제가 적절하지 않다(물론 통치행위도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관련되거나, 법치주의 및 평등원칙에 반하는 경우 등에는 사법심사가 가능하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의 입장이다).

 

또한, 행정부의 자유재량이 인정되는 행위에 대해서도 사법적 통제가 부정되고 있다. , 다분히 정책적이고 전문ㆍ기술적인 사항에 대해서는 행정부의 판단을 존중하고 사법부의 개입을 자제해야 한다.

 

행정행위에 대한 이러한 사법적 통제의 한계는 삼권분립 원리의 또 다른 요청이다.

 

미국에서도 법원은 정부가 결정한 정책이 헌법이나 법률에 부합하는지, 정책 결정 과정에서 적절한 절차를 지켰는지를 심사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법원의 심사 결과, 정부의 결정이 국민의 헌법상 권리를 침해하거나, 자의적으로 결정이 이루어졌다면, 법원은 그 결정을 무효로 하거나, 수정할 수 있다. 심지어 법에 위반되는 정책의 집행을 금지하는 명령(injunction)을 발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법원은 일반적으로 정부의 전문 영역에 속하는 문제에 관해서는 정부 부처의 전문성과 재량을 존중해 준다. 정부 부처의 정책 결정에 대한 법원의 이러한 입장을 Chevron deference(1984년 미연방대법원의 Chevron U.S.A., Inc. v. Natural Resources Defense Council, Inc. 판결에서 유래) 또는 행정부에 대한 존중(administrative deference)이라고 한다. 미국에서 법원이 이러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은 법원이 가지고 있지 않은 기술적 지식과 전문성을 정부 부처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법원은 명백히 불법이거나 위헌이 아닌 한, 정부의 결정을 지지해 준다. 미국에서 정부의 정책 결정에 대하여 법원이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한편으로는 법치주의를 준수하고 국민의 권리를 보호해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법부와 행정부 간의 견제와 균형을 요구하는 삼권분립 원리를 존중하기 위한 노력으로 이해되고 있다.

 

3. 의대 정원 증원을 결정하게 된 경위


정부가 의대 정원의 증원을 결정한 것은 우리 사회에서 의사에 대한 수요는 증가하고 있으나 공급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은 2006년 이후 18년째 3,058명으로 동결되어 있는데, 응급실ㆍ소아청소년과ㆍ산부인과ㆍ외과 등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의사들의 기피 현상에 따라 이들 분야에서의 전문의 부족 현상이 심각해졌고, 지방 의료서비스의 인프라도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2022년 우리나라는 인구 1만 명당 의사 밀도(physician density)로 따진 세계인재경쟁력지수(GTCI)에서 100점 만점 중 38.90점을 기록해서 OECD 회원국 38개국 가운데 32위에 해당했다. 그리고 2022년 인구 천 명당 의사 수를 살펴보면, 서울은 3.54명이나, 충남은 1.55, 경북은 1.37명으로 지방에서 의사 인력이 크게 부족했다.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 변화에 기반해 의료수요를 전망한 결과, 2050년에는 우리 사회에서 약 2만 명 정도의 의사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의대 정원에 국한해서 살펴보면, 주요 외국과 비교해서 현재 우리나라의 의대 정원은 턱없이 부족하다(예컨대, 우리보다 인구가 30% 정도 많은 영국의 의대 정원은 8,600명 정도이며, 우리보다 인구가 60% 정도 많은 독일의 의대 정원은 9,500명 정도이다. 그리고 인구가 우리의 절반 정도인 호주에서도 의대 정원은 3,800명 정도이다). 또한, 주요 선진국들(예컨대, 독일)은 우리보다 의대 정원이 지금도 많지만, 고령화 등으로 앞으로 의료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더 많이 증가할 것이라는 판단에서 의대 정원을 증원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리 정부는 위에서 살펴본 여러 가지 현상과 통계 수치를 기초로 하여, 관계 전문기관(KDI,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등)과 전문가의 의견을 토대로 우리나라의 의료서비스 전반에 대한 장기적ㆍ과학적 예측에 기초해서 의과대학 정원의 증원을 결정한 것이다. , 의대 정원의 증원은 행정부 차원의 정치적ㆍ정책적 결단이라고 할 수 있다.

 

4. 의대 증원 정책의 실체적 내용에 대한 법원의 개입은 권력분립에 반함


위에서 검토한 바와 같이, 행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결정은 특정인 몇몇 사람들의 이익이나 불이익을 위한 결정이 아니고, 우리나라 의료서비스의 바람직한 미래를 위한 정치적ㆍ정책적 결정이다.

이러한 정치적ㆍ정책적 결정의 잘ㆍ잘못에 대해서 정부는 주권자인 국민에게 선거를 통해서 심판을 받음으로써 정치적 책임을 진다. 이것이 우리나라 헌법이 채택하고 있는 대의민주주의의 모습이다.

 

그런데 법원은 이렇게 복잡하고 중대한 정책 사안에 대해서는 행정부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전문성이 부족하다. 그리고 사법부는 그 결정에 대해서 주권자인 국민에게 어떠한 책임도 지지 않는다.

 

따라서 법원은 행정부가 의대 정원의 증원을 결정하면서 지켜야 할 실정법상의 절차를 위반하였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필요하고 가능할 수 있으나, 행정부의 증원 결정이 실체적 내용 측면에서 적절했는지를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한다면, 이는 대의민주주의와 권력분립원리에 반할 수 있다.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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