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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의대 쏠림과 과학기술계 위기, 대안은?] 통권283호
 
2024-02-02 15:34:42
첨부 : 240202_brief.pdf  
Hansun Brief 통권283호 

곽노성 한반도선진화재단 기술혁신연구회장


대학입시에서 의대 쏠림 현상이 심각하다. 단순히 지방대 의대 정시 커트라인이 SKY 공대를 넘어선 정도가 아니다. 이제는 SKY 대학 공대에 합격한 학생도 지방대 의대 진학을 위해 재수, 삼수를 선택한다. 비단 의대만 아니다. 약대, 수의대, 한의대도 높은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많은 지방대의 입학생이 줄어 폐과를 고민한다. 하지만 약대는 예외다. 지방대 약대에 합격할 정도면 서울 소재 상위권 대학을 골라갈 수 있다.

 

반면 국가 경쟁력을 책임진다는 과학기술 인력 부족 현상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저출생으로 대학 입학생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지금의 과학기술 인력 부족 현상은 20년 전 저출생을 반영한 결과이다. 20151.24명이던 합계 출생률이 20230.7명으로 떨어졌다. 지금 우리가 보는 대학 정원 축소는 이러한 2015년 이후 급격한 하락을 반영하지 않고 있다.

 

과학기술 인력 부족의 문제는 비단 저출생 때문만 아니다. 우수 인재들이 해외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2012-202110년간 해외로 떠난 이공계 유학생이 34.6만 명에 달한다. 이들 대부분은 해외에서 학위를 받으면 65%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또한 국내 산업인력의 해외 이직도 심각한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하이닉스 대표가 나와 반도체 인력도 미국으로 가고 있어 인력이 부족하다는 하소연이 이를 방증한다.

 

 

1. 우려스러운 의대 정원 확대 정책


정부는 의사 수 부족과 고령화로 증가하는 수요를 감안해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의사단체는 정원이 확대되면 오히려 국민 의료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논리를 펼치며 반발한다. 여론은 의사단체에 부정적이다. 국민 10명 중 9(89.3%)이 찬성할 정도로 높은 지지를 얻고 있다. 정책마다 이견을 보이던 야당도 의대 정원 확대를 지지하고 있다.

의료 현장만 보면 정부의 정책이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의료 수요가 커지는 고령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의대정원은 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의대 정원 확대가 과학기술계에 미치는 영향이다. 의대 정원이 큰 폭으로 늘어난다면 과학기술 인력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클 것으로 보인다.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주요 대학의 공대 미달 현상이 발생하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러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능력을 갖추고 있다. 능력의 수준도 천차만별이다. 수학적 재능이 부족한 학생이 공대 교육을 받는다고 좋은 엔지니어가 되기는 어렵다. 의료는 내수 산업이다. 서비스를 수출하기 어려워 외화를 벌어들일 수 없다.

의대 정원 확대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일단 공급이 늘면 의사 수급이 나아질 것이라고 한다. 연봉 5억이 넘어도 지방의료원은 의사를 구하지 못하는 현실이 이를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의사들의 피부과, 성형외과, 안과 선호 현상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다. 정작 외과 등 생명을 살리는 필수의료 인력은 매우 부족하다. 서울아산병원 간호사가 수술할 의사를 찾다가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날 정도다. 지금 상황에서 의사 공급이 늘어난다고 의사들이 필수의료 관련 과를 선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진료비는 낮은 반면, 수술 과정에서 문제가 생겨 소송에 휘말릴 위험은 크기 때문이다.

 

2. 의료시스템 혁신을 통한 해결


저출생 고령화가 심화되는 상황에서는 의사 정원 확대를 최소화하면서 늘어나는 의료 수요를 충족시키는 어려운 과제를 풀어야 한다. 이걸 해결하는 방법은 의료시스템 혁신밖에 답이 없다.

우선 필수 의료를 중심으로 진료비를 높여야 한다. 의료사고 배상책임보험도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 그래서 의사들이 힘들고 위험하지만, 보람을 느끼고 다른 의료 분야에 비해 경제적 보상도 충분히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생명에 영향이 없는 의료 관련 비용은 가급적 환자가 직접 부담하는 방향으로 수가체계를 개편해야 한다.


의사의 역할을 필수적인 역할에 집중하고 간호사가 이를 보완할 수 있는 제도적 여건도 마련해야 한다. 이제 법에서 정한 의사의 권한을 침범하면 안 된다는 논리는 곤란하다. 법에서 의사에게 그러한 독점적 권한을 준 이유는 환자에게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줄이기 위함이다. 기술발전과 간호사의 역량 향상에 따라 위험이 낮아진다면 굳이 모든 행위를 의사가 할 필요는 없다.

 

지난번 간호사법 파동 속에서 수술실 간호사가 크게 문제가 되었다. 이미 1만 여명의 진료보조(PA·Physician Assistant) 간호사가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수술실이나 검사 시술 보조 등을 하면서 위법 여부가 모호한 상황에서 의사 역할을 일부 대신해 왔다. 미국은 PA 간호사가 되려면 관련 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우리도 양성화가 시급하다.

과학기술은 늘어나는 의료부담을 해결하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수가(受價) 개편으로 인해 증가하는 의료부담은 신기술 도입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빠르게 발전하면서 로봇이 사람의 기능 일부를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를 병간호에 활용하면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

 

신의료기술의 적극적 도입도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신의료기술을 사용하려면 사전 심사를 받아야 하는 전세계에서 유일한 국가다. 이렇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신의료기술을 허용하면 건강보험 재정에 부담이 될 것이란 걱정 때문이다. 대부분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는 처음에는 비싸다. 그래서 소수만 활용한다. 하지만 사용하는 사람이 늘수록 가격은 내려가고 나중에는 많은 사람이 그걸 함께 누릴 수 있다. 이제는 이러한 시장 논리에 맞춰서 신의료기술을 활용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건강보험 재정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을 막기 어렵다.

 

3. 과학기술정책의 전환: 기술에서 생태계로


올해 연구개발 예산의 급격한 축소가 크게 쟁점이 되었다. 2023년보다 14.7%로 감소한 것으로 역대 가장 큰 폭의 축소다. IMF 때도 줄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학기술계에 미치는 심리적 영향은 매우 크다. 예산 축소 과정에서 인건비는 가급적 유지하려고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실제 실험비의 축소는 14.7%를 넘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간 연구개발 예산이 일부 방만하게 운영된 측면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쓰기 어려운 기기를 한국에서는 쉽게 구입하거나 기업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아니라 더는 성장이 어려운 상황에서 국가연구비로 연명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번에 발생한 연구비 축소는 과학기술혁신에 대한 정치권과 정부의 이해 부족을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나라는 외국에서 새로운 기술이 나올 때마다 거기에 집중한다. 연구비도 확대하고 인력도 늘린다는 입장이다. 이런 인식은 비단 현 정부만 아니다. 과거 정부에서도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예를 들어 친환경이 뜨면 관련 예산을 대폭 늘리고 반도체가 뜨면 또 관련 예산을 대폭 늘린다. 현장에서 이런 예산으로 어떤 연구를 할 수 있는지는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과학기술 분야는 전공이 매우 중요하다. 기본적 지식과 방법론을 바탕으로 유연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인문사회 분야와 다르다. 전자공학 전공이라면 반도체 연구를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실제 기술발전이 산업에 도움이 되는 것은 별개다. 갑자기 그간 하던 연구주제를 바꾸면 깊이 있는 연구는 어렵다. 첨단 분야일수록 더욱 그렇다.

우리는 여전히 과거 성공 방정식에 매달려 있다. 1980년대에는 컨베이어 벨트처럼 예산을 투입하면 연구, 개발, 사업화가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주류 혁신이론이었다. 1990년대 들어 연구계, 기업, 정부의 자율성과 협력이 중요하다는 트리플헬릭스(triple helix) 모델이 혁신이론의 주류이다. 두 이론의 가장 큰 차이는 기술에서 사람 중심으로 정책이 전환되었다는 점이다.

 

지금 미국은 인공지능, 바이오, 반도체 산업에서 높은 경쟁력을 보여주고 있다. 그 배경에는 세계 최고의 인재를 빨아들이는 과학기술혁신 생태계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연구개발 정책은 생태계라는 개념을 매우 잘 이해하고 있다. 정부는 연구자가 창의성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독려할 뿐이다.

우리처럼 당장 보이는 성과를 내라고 채근하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갑자기 연구사업이 휘청거리는 일도 없다. 그렇다고 맡겨 두지만 않는다. 연구관리기관에서 전략을 만들고 목표를 달성하는데 가장 좋은 팀을 선정한다. 좋은 팀이 없으면 예산을 이월하기도 한다. 우리처럼 예산 소진을 위해 급하게 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당면한 일은 과학기술 인재의 부족이지 기술 부족이 아니다. 아무리 정부가 많은 예산을 지원해서 좋은 기술을 개발해도 그걸 하던 연구자들이 다른 나라로 떠나면 그 기술도 큰 타격을 받는다. 지금은 최고의 기술일지 몰라도 다른 나라로 간 연구자들이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할 것이기 때문이다.

 

모든 일은 결국 사람이 한다. 돈이 많아도 사람이 없으면 일을 할 수 없다. 이제 연구개발 정책은 기술만 보기보다는 사람을 봐야 한다. 과거 개발도상국 시절 다른 나라를 모방하면서 기술을 모방하던 시절은 잊어야 한다. 과학기술인이 창의적으로 연구개발하고 사업화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 이런 과학기술 정책전환이 의대 쏠림 현상을 제어하는 과학기술인력수급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판단된다.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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