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ansun issue & focus 8월호
오래전 일본은 1970년도 중반에 겪었던 오일쇼크로 인해 경제가 나빠지면서 합계출산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여 1981년 1.74명을 기록했다. 이는 당시 우리나라의 합계출산율 2.57명보다 상당히 낮은 수치였다. 이렇듯 일본의 저출산 문제는 꽤 오래되었지만 2023년 기준 합계출산율은 1.26명으로 한국의 0.72보다는 월등히 높다
1985년 플라자합의로 인한 엔고 불황을 타개하기 위해 사용했던 금리인하 등의 경기부양책으로 경제에 엄청난 버블이 일어났고 여성들의 사회활동이 급격히 증가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보육시설이 미비했고 직장여성들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비우호적인 기업환경은 여전했다. 1990년 이후에는 버블경제의 거품이 꺼지면서 장기불황이 계속되었고, 고용난과 저 수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세대의 비관론으로 인해 2005년 합계출산율은 1.26명으로 최저치를 찍었다. 이후 일본 정부와 지자체의 특단의 저출산 대책으로 일본의 합계출산율은 흡족한 수치는 아니지만 1.2~1.4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일본의 저출산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일찍 시작되었고 아직도 가부장적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어 보육 환경이 우리나라와 비슷한데도 일본 합계출산율이 우리나라처럼 급격하게 감소하지 않고 꾸준히 유지되는 비결은 무엇일까?
1. 일본 여성은 우리나라 여성보다 이른 나이에 결혼
2022년 기준 일본 여성의 초혼 연령은 29.4세로 한국의 31.3세보다 낮으며, 2021년 기준 출산연령도 일본 여성이 30.9세로 우리나라의 32.6세보다 낮다(OECD 2021). 초산 연령이 낮을수록 가임 능력이 높을 뿐 아니라 잔여 가임기간이 길고 체력도 있어 둘째를 임신하기가 수월하다. 실제로 OECD에 의하면 일본은 20대 초반 출산율(20.8명)이 우리나라의 20대 초반 출산율의 (3.8명)의 5배 이상이다.
일본이 빨리 결혼할 수 있는 것은 결혼 시에 필요한 자금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적어(한화로 약 5천만 원) 결혼에 큰 허들 없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전세 제도가 없고, 서양 문물을 우리나라보다 훨씬 일찍 받아들여 부모들이 자녀 결혼에 집을 마련해 주는 일은 일부 상류층을 제외하면 흔하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 신혼부부는 월세로 시작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며 좁은 원룸에서 시작해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따라서 우리나라 결혼에 있어 가장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집값에 대한 부담이 적다. 결혼식도 가까운 친구나 친지를 초대하는 스몰웨딩이 많아 비용도 적게 든다.
또 일본의 경우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임금 격차가 26.3%로 한국의 42.3%보다 적고(2022 한국경총) 안정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나라처럼 대기업 취업을 위해 몇 년씩 준비하는 경우가 적어 사회생활을 비교적 일찍 시작하게 된다. 또 필요한 결혼자금도 많지 않아 중소기업 임금으로 충분히 모을 수 있어 일찍 결혼 진입이 이루어지게 된다.
일본 여성의 경우 결혼연령은 우리나라보다 낮지만, 생애 미혼율은 2020년 기준 17.8%로 우리나라의 7.6%에 비해 높다. 일본 여성은 젊어서 미혼인 경우 50대까지 미혼을 유지하는 경향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여성은 일본 여성보다 늦게 결혼하면서 40대 50대까지는 대부분 결혼하여 생애 미혼율은 낮고, 출산율은 떨어지게 된다.
2. 일본 여성의 낮은 대학 진학률
일본 여성은 남성보다 대학 진학률이 낮아 상향혼을 할 수 있는 남성의 수가 많아진다. 이는 우리나라 여성이 남성보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 학력 상향혼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좁아지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가 2020년 발표한 ‘남녀 공동참가 백서’에 따르면 일본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50.6%로 남성의 56.6%에 비해 5.9% 낮았다. 따라서 여성의 경우 더 일찍 경제활동을 시작할 수 있어 빠른 결혼 진입이 가능해진다.
더구나 전문대 진학률은 여성이 27.1%, 남성이 20.6%로 여성이 남성보다 높다. 일본 부모들은 특히 딸에 대해서는 학비 부담과 안전에 대한 우려로 대도시의 큰 대학보다는 집과 가까운 대학, 혹은 고향에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기를 원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전문대 진학률이 높은 일본 여성의 경우 상대적으로 더 일찍 취업시장으로 나갈 수 있어 일찍 결혼하기에 수월한 면이 있다. 또 일본 남녀 모두 대학 진학률이 우리나라( 남자: 76.4% 여자: 81.4%, 2020년)에 비해 낮고 고졸 취업도 원활해서 더 일찍 경제활동을 시작하게 된다.
3. 여성활약추진법 제정과 1억총활약 담당상 임명
일본 정부는 저출산 문제가 불거지면서 그동안 보육원확충, 산전 산후휴직, 육아휴직, 단시간 근무제도 도입 등 보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결혼 후 일본 여성이 일과 가정의 양립에 어려움을 겪는 것은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일본은 어린이집 설립 요건이 까다로워 어린이집 숫자가 절대적으로 적었다. 맞벌이 부부 자녀를 우선 어린이집에서 받아주지만, 워킹맘 자녀가 원하는 어린이집에 입소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다.
2015년 이후 일본은 ‘여성활약추진법’을 제정하여 기업이 여성의 채용 비율, 근속연수의 남녀 차, 노동시간 상황 등을 공표하도록 의무화하였다. 또 2015년 합계출산율 1.45명 일 때 인구 1억 명 유지를 위한 ‘1억총활약 담당상(장관)’을 두어 저출산 문제를 전담하도록 했다. 이는 2023년 합계출산율 0.72를 겪은 후 올해야 ‘인구전략기획부’를 추진하는 우리나라와 대비된다. 그동안 실시했던 다양한 정책의 결실로 15~64세 일본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이 73.3%로 높아졌고(OECD 2021), 노동력부족과 최저임금의 인상으로 성별 임금 격차도 완화되었다.
2024년에는 자녀 나이 만 3세까지는 부모가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기업에 의무화를 추진 중이며, 만 3세 이후에는 재택근무, 유연근무, 단시간 근무 중 택일하도록 하는 제도를 도입한다고 한다.
4. 한국보다 낮은 사교육 부담
사교육은 천문학적인 경비로 부모들에게 큰 부담을 주면서 학생들의 학업 부담을 매우 높이게 된다. 이는 부모들이 좋은 학원이나 과외교사 선택, 자녀들의 학원 등·하교 등 자녀 학업 관리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자해야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학업 관리는 주로 엄마가 맡는 경우가 많아 이는 가사노동과 양육 외에도 맞벌이 여성의 일을 가중하여 일과 가정을 양립하기 어려운 환경으로 만든다.
실제로 2024년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즈’가 OECD국가를 대상으로 출산율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인을 분석한 결과, 1980~2019년에 걸쳐 정부가 지급한 아동수당, 보육보조금, 육아 휴직비 등 1인당 가족 친화 정책 지출 금액이 3배로 늘었음에도 출산율은 오히려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그러한 정책은 이미 아이를 가지려고 생각하는 여성에게 지급된 것으로 출산율 증가와는 유의미한 관련성이 없었다. 대신 숙제(학업)에 3시간 이상 소요하는 아동의 비율이 높을수록, 엄마가 직접 자녀를 양육하는 데 소요되는 시간(자녀와 같이 놀아주기, 숙제 봐주는 시간 등)의 비율이 높을수록 출산율이 의미 있게 떨어지는 결과가 나왔다.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은 사교육으로 연결되며 부모들에게 엄청난 양의 시간과 노력 투자를 유발하고 이는 양육의 큰 부담으로 작용하여 출산율을 떨어뜨리게 된다. 따라서 아무리 출산 장려를 위한 예산을 정부가 지출해도 지나친 학업 경쟁과 사교육 부담을 완화시키지 않으면 출산율 높이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경우 사교육 부담이 한국보다 적어 상대적으로 자녀 양육에 시간과 경제적 압박을 덜 받는다. 일본도 한때는 사교육 열풍이 대단했으나 1997년 어느 중산층 중학생이 자신이 저지른 엽기적인 아동 연쇄 살인사건은 ‘의무교육에 대한 분노에 기인한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일본 사회의 교육 제도상의 문제점이 드러나게 되었다. 이에 일본 정부와 학부모들은 교육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과열된 사교육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되었다고 전해진다.
한편 일본은 대학이나 대학원 졸업 이후 대기업에 취업해도 중소기업 임금과 격차가 적어 우리나라처럼 좋은 대학에 입학하기 위한 경쟁이 아주 치열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또 지역에도 명문 국립대, 사립대들이 있어 대학 진학을 위해 무조건 수도인 도쿄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인 서울 대학’을 졸업해야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보인다. 인구밀도가 높고 경쟁이 치열한 서울이 전국에서도 합계출산율이 꼴찌이고 지역의 출산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것을 감안하면, 일본의 지역거점 명문 국립대와 사립대들이 사교육 완화뿐 아니라 인구의 분산까지 가져와 출산율에 기여한다고 볼 수 있다.
5. 일본 포스터 페미니즘의 ‘여자력’
일본 페미니즘 운동은 1970년대 우먼리브 운동의 시작으로부터 1980년대 여성학의 창설과 1990년대 젠더 연구의 성립 등으로 특징된다. 경제 버블 시대인 1990년을 전후하여 남녀평등을 내세우는 젠더프리 개념의 페미니즘이 유행했지만, 한국처럼 급진페미니즘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일본의 포스터 페미니즘은 2010년경에 확산했는데 이는 개인의 자유와 경쟁을 중시하면서도 새로운 여성성과 주체성을 강조하는 ‘여자력’과 애국 여성 담론의 확산으로 나타났다.
‘여자력’은 ‘여성이 자신의 삶을 향상시키는 능력, 혹은 여성이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줄 아는 능력’이라고 정의하지만, 그 구체적인 내용은 ‘자신을 아름답게 가꾸고, 부드러운 말솜씨를 가지며, 요리 솜씨를 가꾸는 것’ 등 전통적 여성성을 강조하는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자력’이 지향하는 바는, 적극적인 사회 활동을 하면서도 매력을 발산하는 현대적인 여성상이라는 것이다.
한국의 급진페미니즘이 4비(비섹스, 비연애. 비결혼. 비출산 )운동으로 연결되어 비혼이나 비출산을 강조했다면 일본은 오히려 ‘여자력’을 강조함으로써 남성에게는 매력과 인기로 연결되어 혼활(혼인활동)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여자력’은 얼핏 보면 여성의 성역할을 고착한다는 측면에서 페미니즘과는 대치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많은 일본 여성이 ‘여자력’에 대한 거부감보다는 ‘여자력’을 여성의 고유한 영역으로 여기고 향상하려고 노력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따라서 일본의 포스트 페미니즘은 우리나라 급진페미니즘의 남성에 대한 강력한 저항운동과 달리 결혼이나 출산에 우호적으로 작용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우리와 같은 동양권이면서 가부장 문화가 강하게 남아있으며 1인당 GDP도 우리와 비슷하다. 일본의 경우를 벤치마킹하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을 적어도 1.00 정도로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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