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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
 
2021-08-04 10: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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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ansun issue&focus 8月호 


<대한민국은 선진국인가?>

이용환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총장

 지난 7월 6일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회원국 만장일치 합의”로 대한민국을 개발도상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지위를 변경했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 57년 역사에서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높아진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은 유엔기구가 선진국으로 인정하기 전에 이미 세계에서 선진국 대우를 받고 있다. 2020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3만 1,497달러로 주요 7개국(G7)인 이탈리아(3만 1,288달러)를 추월했다. 2020년 경제규모 순위는 OECD 회원국과 주요 신흥국 등 38개국 중에서 10위를 기록했다. 분명 경제수준으로 보면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이라는데 반신반의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 우리사회의 시민의식

 OECD가 발표한 ‘더 나은 삶의 질 지수(Better Life Index, BLI)’ 순위를 보면 국민 삶의 현주소를 알 수 있다. 2020년 조사 결과를 보면 한국은 36개 조사국 중 28위로 평가되었다. 여러 가지 평가 항목 중에서도 궁핍할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커뮤니티(사회적 관계)가 가장 낮았다. 서로 돕고 돕는 문화가 우리의 전통미덕이었는데 이것이 약해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서로 배려하고 포용하는 공동체 의식보다 자기중심주의의 각자도생의 길을 가려는 성향을 보인다. 이 밖에도 OECD 평균보다 낮은 평가를 받은 분야는 환경문제, 일과 삶의 균형, 건강, 삶의 만족도이다. 반면 OECD 평균보다 높은 평가를 받은 분야는 시민참여가 40개 국가 중 1위를 차지했고 이밖에 주거, 교육, 직업, 소득과 안전이 평균 이상의 평가를 받았다. 문제는 삶의 질과 행복 척도분야에서 낮은 평가를 받은 점이다. 한편 2021년 세계 행복보고서에서도 우리나라는 낮은 평가를 받았다. 국가별 행복순위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149국가 중 61위이다. 경제수준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시민의식의 현주소를 보더라도 선진시민이라고 자부하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경제발전과 달리 도덕과 예의범절, 준법정신, 공공의식 등 사회발전은 오히려 퇴행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 삶의 현장에서 이런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골목길이나 전철 등에서 부딪히거나 상대방에게 불편을 끼치고도 “죄송합니다. 미안합니다. 실례합니다.”라는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좁은 곳에서 길을 비켜주거나 순서를 양보해도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은 물론 미소조차 보기 힘들다. 전철이나 실내 음식점, 카페에서 목소리 높여 얘기하는 사람이 아직 적지 않다. 자기중심적이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부족에서 나오는 행동이다. 어느 사이에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칭송받던 나라가 이렇게 되어버렸다. 


 경제적으로는 선진국 수준에 올랐지만 타인에 대한 배려와 포용의 사회기풍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아직 떨어진다. 이들 나라에서는 길 가다가 다른 사람과 부딪히면 미안합니다[쏘리(Sorry), 익스큐즈 미(Excuse me), 스미마셍(すみません)]가 바로 나온다. 버스나 전철에서 전화를 오래 하거나 시끄럽게 얘기하는 사람도 별로 없다. 혹여 소리 높여 얘기할 경우에는 옆 사람이 미소 지으면서 조용히 해달라고 한다. 우리와는 대비되는 행태이다. 이들 나라의 시민은 자기의 자유를 누리되 타인의 자유도 존중한다. 개인의 편리 못지않게 공동체 질서를 지키고자 노력한다. 이런 사회가 우리가 배우고 지켜나가야 할 선진시민사회이다.


  선진시민의 자세는 갑자기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가정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으면서 체화되고 염치를 아는 성인으로 성장한다. 요즘에는 맞벌이 부부 증가와 바쁜 삶으로 가정에서조차 예의범절과 사회생활에서 지켜야 할 윤리를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유치원이나 초등교육에서도 이런 교육을 하다가 만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서 우리사회는 어느덧 공동체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보다 자기 이익을 우선하는 사회로 변해버렸다. 공동체의 기본인 배려와 포용의 마음이 약해지면서 염치가 없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 공인과 정부의 책임의식

  시민의식뿐만 아니라 정치인을 비롯한 공직자들의 공인의식은 어떠한가? 현재 각 정당은 내년 대선 후보를 뽑느라 여념이 없다. 여당은 후보 경선 중이고 야당도 곧 후보 경선에 들어갈 것이다. 경선 과정에서 나타난 일부 현상을 보면 미래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기보다 적통이냐 아니냐, 백제 발언 등 과거 회귀적 논쟁으로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상대방 후보와 상대 정당 경선 후보에 대한 흑색선전이 점입가경이다. 심지어 윤리적으로 해서는 안 될 상대 당 경선 후보의 부인에 대한 흑색선전까지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정치인의 책임의식보다 오직 경선과 대선에서 이기는 것만이 목표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공인의식이 발휘될 리 없다. 


 정치의 본분은 안민(安民)이다. 그런데 각 당의 대선 경선 후보 간의 논쟁을 보면 안민보다 당리당략과 정치인 자신의 이익이 지나치게 앞선다. 이렇게 공인의식과 공적인 가치가 낮은 사람들이 권력을 잡으면 국민 삶의 개선이나 나라 발전보다 사적 이익이나 자기가 속한 집단을 우선할 가능성이 크다. 이들에게 국민을 위한다는 것은 명분이고 실제는 자기들의 권력 유지가 우선이다. 명분과 실제가 다르면 아무리 좋은 제도가 있어도 그 제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그 결과는 고스란히 고달픈 국민의 삶으로 나타난다. 선진국 수준의 경제발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행복감이 낮고 사회 발전이 뒤진 이유이다. 


 우리나라 정치인은 염치가 부족하다. 잘못을 해도 사과가 없다. 해도 진정성이 담기지 않는다. 형식적이다. 이런 모습은 오늘날 한국정치를 주도하고 있는 586 운동권 세력에서 자주 본다. 이들은 자기들만의 이념에 빠져서 도덕적으로 선(善)하다는 아집으로 무장함으로써 타인에 대한 배려가 없다. 이들이 염치를 알면 국민보다 자기들을 우선하는 정치나 자기 독선적인 정치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염치와는 담을 쌓은 사람 같다. 문무대왕함 승조원들의 코로나 집단감염사태에 대한 대응 방식도 같은 맥락이다. 감염사태를 유발한 원인에 대한 반성 없이 “최단 기간에 임무를 달성한 최초의 대규모 해외의무 후송사례”로 자화자찬하다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사실 586 운동권 정치인들의 발언과 행태를 보면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자기가 하면 개혁이고 남이 하면 적폐라는 내로남불 의식이 강하다. 여기에 거짓과 위선까지 더해지고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자기 탓은 없고 남의 탓으로 전가한다. 


  이런 현상은 코로나 19 감염병 대응에서 여실히 드러나고 있다. 코로나19 문제는 첫 단추부터 일이 꼬였다. 발병 초기에 감염병 발생지인 중국인 입국을 막지 않았다. 그러다가 감염병 대유행을 자초했다. 갑자기 유행하자 마스크 대란을 겪었다. 이후로 국민의 자유까지 희생하는 방역정책을 펼쳤다. 그 과정에서 공정성이 문제 되기도 했다. 같은 시위라도  내편 네편을 가려서 선별적으로 조치했기 때문이다. 백신확보에 차질을 빚은 것도 잘못 끼운 첫 단추 때문이다. 정부는 “가격 협상을 벌이고 있다”, “안정성이 입증될 때까지 여유 있게 하겠다.”라고 꿈지럭대다가 시간을 놓쳐버렸다. 이런 상황에서도 백신확보에 노력하기보다 K방역 성공만을 강조했다. 백신부족으로 접종이 지연되면서 국민들의 백신접종 피로도가 쌓여갔다. 백신접종 예약 시스템 서버가 다운되어도, 예약 서비스가 중단되어도 복원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 해역에 파견된 청해부대  문무대왕함(4천 400t급)에서 발생한 집단감염 사태도 백신접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속적으로 방역문제가 발생하고 있음에도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컨트롤타워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자기책임보다 남의 탓과 공동책임으로 돌린다. 그것도 아니면 아래 사람을 질책한다. 


  이런 사례는 방역문제뿐만 아니다. 정치인을 비롯한 고위 공직자들이 전문가 말을 잘 듣지 않는다. 들어도 이념 편향적이거나 형식적인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국가주도발상까지 가세함으로써 실패한 정책을 양산했다. 부동산 정책이 대표적이다. 시장에서 할 일을 세금과 규제로 대응하다가 부동산 가격폭등을 초래했다. 이제는 집을 사기도, 팔기도, 살기도 어렵게 되어 버렸다. 규제정책이 효과가 없으면 이를 바꿔야 했는데도 계속 밀어붙이다 정부 불신만 키웠다. 규제위주의 반기업 정책은 더 큰 부작용을 초래했다. 국내투자 회피와 해외투자를 유발했고 결과적으로 일자리마저 잃어버렸다.


 국가 주도 발상은 지방정부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인 것이 자사고 특목고 폐지 정책이다. 교육부는 2025년까지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는 정책을 강행하고 있다. 교육감들 역시 평등교육을 내세워 이 제도를 폐지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자율형사립고교가 교육감을 상대로 낸 자사고 지정 취소 소송에서 10개 학교가 1심 판결에서 모두 승소했다. 1심 법원은 교육감의 자사고 지정취소가 ‘위법(違法)·부당하다’고 판결했다. 그런데도 이를 수용하지 않고 항소를 했다. 염치없는 일이다.


  시장보다 정부가 잘 할 수 있다면 정부가 해야 되겠지만 실제 시장보다 정부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시장에서는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기능이 작동되지만 공공부문에서는 이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시장에 대한 간섭과 관여가 아니라 공정한 경쟁을 유도하는 질서 정책이다. 정부는 시장의 실패를 얘기하지만 공정경쟁정책만 제대로 하면 시장실패는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전문가가 할 일, 시장이 할 일을 정부가 손대기 시작하면 효율성이 떨어지고 부작용이 커진다. 공기업을 보면 안다. 민간기업과 경쟁에서 살아남을 공기업이 얼마나 될까? 


- 선진국의 조건

 코로나19의 전과 후는 완전히 세상이 바뀔 것이다. 세상이 바뀌고 패러다임 전환이 이루어진 시대에는 시민의식과 공인의식이 더욱 중요한 세상이 될 것이다. 선진시민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자신의 자유를 지키려면 타인의 자유를 존중해야 하듯이 선진국 시민이 되려면 스스로 선진국 시민답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선진시민의식을 가져야 한다. 선진시민사회는 서로 배려하고 포용하는 사회이다. 선진국 시민이 되려면 부족한 것을 메꾸어야 한다. 바로 염치와 공동체의식이다. 실수나 잘못한 일이 있으면 사과하고 상대방은 이를 너그럽게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서로가 예의와 질서를 지키고 상대방과 공동체를 존중하면 어느덧 우리의 시민의식도 선진국 수준으로 올라갈 것이다. 


 공인의식 또한 높아져야 한다. 사익보다 공익을 앞세우는 선공후사와 솔선수범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정부 역시 선진국이 되는 데 맡은 바 역할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하려 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 영역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시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시장에 맡기고, 지방이 잘 하는 일은 지방으로 위임해야 한다. 


 노력만 해서 되는 것이 아니다. 성과로 나타나야 한다. 개인의 삶의 질 개선과 행복감이 종전과는 다르게 느껴져서 국민 스스로 선진국이라는 것을 실감해야 한다. 당면 과제로는 일자리 문제 해결일 것이다. 중장기적으로 고용을 유발하는 경제성장과 함께 교육과 복지가 연계됨으로써 삶의 질이 개선될 때 선진국이 되었다는 변화를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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