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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또 한 번의 8월 15일을 맞으며
 
2020-08-07 11: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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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일국 정치학박사·문화평론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1985년 작 백 투 더 퓨처는 시간 여행을 소재로 한 대표적인 명작영화로 기억된다. 주인공 마티는 그의 부모가 연애를 막 시작할 무렵으로 시간 여행을 떠난다. 마티가 미래 자신과 형제들의 존재를 위해 어떻게든 부모를 연인으로 맺어주기 위해 애쓰는 대목이 웃음을 자아낸다. 훗날 마티의 부모가 되는 남녀의 만남이 불발될 위기에 처하자 미래에서 온 마티의 신체가 조금씩 사라지는 장면이 이 영화의 백미다.

 

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이 타임머신의 상상력에 열광하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궁금증, 그리고 과거 후회되는 일들을 만회하고 싶은 보상심리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타임머신은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2년 전 타계한 물리학계의 석학 스티븐 호킹(1942-2018) 박사는 생전에 매우 간단한 논리로 타임머신이 불가능한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과거에 존재하는 원인에 대한 결과는 그보다 미래에 나타나는 것이 우주의 질서라면서 타임머신을 작동시킨 원인에 대한 결과가 그 시점 이전에 나타날 수는 없다고 못 박았다. 과거지사는 오늘 우리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재확인한 것이다.

 

1948년 건국을 부정하거나 왜곡하는 사람들

 

사실 우리는 과거 사실을 인정하고 왜곡하지 않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도덕으로 믿어왔다. 인도의 독립운동가 네루(1889-1964)사실은 사실이다. 당신이 그것을 좋아하건 그렇지 않건 달라질 것은 없다(Facts are facts and will not disappear on account of your likes.)”는 명언을 남겼다. 영국의 유력 언론 가디언의 편집인이었던 찰스 P. 스콧(1846-1932) 역시 논평은 자유지만 사실은 신성하다는 어록을 남겼다. 그의 말대로라면 과거의 사실을 오늘의 필요에 따라 취사하고 왜곡하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이 될 수도 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 과거 사실에 대한 존중은 거의 실종됐다는 느낌을 받는다. 예를 들면 대한민국의 건국이 언제인지를 설문 조사하고 내 편이 더 많다고 의기양양한 이들을 볼 때 그렇다. 마치 다수의 지지만 있으면 과거의 사실도 내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오만함이 느껴진다. 자신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를 누비며 정의를 실현하는 영화 주인공이라는 착각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는 측은한 마음도 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근대국가로서 요건을 갖추고 이를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은 해는 1948년이며 타임머신이 등장하지 않는 한 이 사실은 달라질 수 없다. 그 해에 국민 영토 정부라는 국가의 3요소가 충족됐기 때문이다. 어떤 해외 록그룹의 노래처럼 슬프지만 그것이 사실이다(Sad but True).

 

더 슬픈 이야기를 하나 하면, 국제정치적으로 국가 3요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해당 시기 국제사회, 정확히는 강대국의 인정이다. 이 논리로 보자면 48년을 진정한 건국의 해로 만든 것은 정부 수립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미국이 축전을 보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학계에선 앞서 3요소에 더해 국제관계 창설능력을 인정받는 것을 국가성립의 최종 요건으로 본다. 거창하지만 사실 어려울 것 없는 얘기다. 뜻을 같이하는 몇몇 이들이 한적한 교외에 땅을 사서 국호를 짓고 선거도 해서 누구는 대통령, 누구는 총리라고 한다면 우리가 그들을 국가로 인정할 것인가?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1948년에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기본 요건을 갖췄다는 사실을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이 있다. 이들은 애써서 그 해를 정부 수립의 해로 한정하고 임시정부가 만들어진 1919년을 건국의 해로 보자고 종용한다. 이들은 대한민국을 1948년에 건국했다고 하면 임시정부 수립과 이후 독립운동의 역사를 폄훼하는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논의를 계속하기 앞서 헌법전문에 명시된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의의를 폄훼하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그는 부모를 부정하는 자식과 다를 바가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

 

예를 들어 필자는 1997년에 대학생이 됐는데 정식 학생증을 그해에 발급받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말하는 것이 대학생이 될 때까지 키워준 부모님이나 초중고 시절 은사들에 대한 폄훼가 될 수는 없다. 오히려 그것이 효도하는 길이며 은사의 이름을 빛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1948년에 대한민국이 세계 자유 진영으로부터 당당한 독립 국가로 승인받은 사실은 수많은 우국지사의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증명한 것이다. 만약 초중고 은사님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기리기 위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날 또는 고교 시절 대학에 가기로 마음먹은날을 대학입학기념일로 부르고 기념하는 이가 있다면 우리는 그에게 뭐라고 말해줘야 할 것인가.

 

2020.8.15.는 이성과 도덕관념 회복의 원년이 되어야

 

1948년 건국을 부정하는 또 다른 이유는 남한 절반만의 정부 수립을 건국으로 볼 수는 없다는 논리다. 물론 해방 후 남북한이 힘을 합쳐 통일 정부를 만들지 못한 것은 아쉬운 역사의 장면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민족통일의 뜨거운 가슴은 있어도 어떤 나라가 제대로 된 나라인가에 대한 차가운 이성은 다소 부족해 보인다.

 

한번 따져보자. 19193.1 독립선언은 조선은 독립국이며 조선민들은 자유민임을 선언한다.”로 시작된다. 1919411일에 제정된 임시정부의 임시헌법 제1조는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며 이는 그대로 1948년 제헌헌법으로 이어졌다. 오늘날 남한과 북한 가운데 19193.1운동의 자유와 임시정부의 민주 공화정신을 계승한 쪽이 어디인지는 재론이 필요치 않다고 본다. 북한은 철저한 신분제 사회로 소수 특권층만이 자유민으로 살고 있고 민주 공화라는 간판은 내걸었지만 혈통으로 세습하고 종신 철권통치를 보장한다.

 

어려운 정치학 이야기를 할 필요도 없다. 2019년 통계청에 따르면 북한 인구는 2,513명으로 남한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남녀 평균 기대수명은 69.9세로 남한의 82.7세에 비해 무려 12년이 적다. 수많은 동포들이 기본적 보건, 위생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북한은 3.1운동과 임시정부의 정신이 아니라 고조선의 홍익인간정신으로 봐도 한참 잘못된 나라다.

 

올해도 815일을 맞는다. 1945년 광복을 맞기까지 일신의 안위보다 독립을 먼저 생각한 우국지사(憂國之士)들의 헌신과 희생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한편 1948년 이날 대한민국이 반만년 역사상 최초로 국제사회로부터 주권국가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하는 시류가 안타깝다. 이후 질곡의 현대사를 지나면서 희비와 명암이 교차했지만 대한민국은 자유, 풍요, 민주주의를 성취한 모범국가가 됐고 다른 길을 택한 북한은 전 세계 불량국가의 사례가 됐다.

 

75년이 지났다. 일제 치하를 겪지 않은 이들에게도 8.15라는 숫자는 그 조합만으로도 우리에게 마법처럼 집단적 환희를 선사한다. 2000년대 초까지 전국 오토바이 폭주족들이 이날을 기념해 교통을 마비시킨 웃지 못 할 장면도 이제 추억이 됐다. 아마도 우리가 선대로부터 DNA를 통해 물려받은 8.15의 영감은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기쁨 그리고 새 시대에 걸맞은 각성과 깨달음일 것이다.

 

대개 새로운 시대는 사람들이 무심결에 의심하지 않았거나 깊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을 각성하면서 시작된다. 중세 왕정체제의 붕괴도 결국 왕과 평민이 왜 달라야 하지?’ 라는 단순한 의문으로 시작됐다. 2020년 한국 사회에도 다시 생각해볼 많은 고정 관념들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일제 36년의 식민통치는 그렇게 치욕스러워 하면서도 조선조가 500여 년간 중국에 조공을 바치고 고개를 조아린 역사에 대해서는 무감각한 이들이 있다. 이번 8.15가 단순히 과거의 경사를 자축하는 데 그치지 않고 2020년에 걸맞은 이성과 도덕관념을 회복하는 원년이 되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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