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sun Brief 통권309호
1. 북풍에 실린 초유의 오물풍선
지난달 28일부터 이달 10일까지 북한이 모두 네 차례에 걸쳐 오물풍선을 살포하고 이와 별개로 GPS 교란으로 우리나라를 공격했다. 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북한이 네 차례에 걸쳐 살포한 오물풍선이 발견된 장소는 서울, 경기, 인천, 강원 등 수도권과 전북, 경북, 충북, 경남 등 전국에서 총 778곳이다. 최근 북한은 남한을 제1의 적대국이라고 지칭하는 등 일정한 거리 두기를 하고 있는 가운데 어떤 의도로 오물풍선을 날렸고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알아보자.
2. 북한은 왜 갑자기 오물풍선을 보냈나
김정은은 지난 1월 15일 우리 국회에 해당하는 최고인민회의에서 ‘삼천리금수강산’, ‘8천만 겨레’와 같이 북과 남을 동족으로 오도하는 잔재적인 낱말들을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남한을 철두철미 제1의 적대국으로, 불변의 주적으로 확고히 간주하도록 교육교양사업을 강화한다는 것을 해당 조문에 명기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라는 등 지난 연말연초 남북 단일민족과 평화통일을 부정하는 발언을 여러 번 하였다. 이런 일련의 발언은 우리나라와 통일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김정은은 할아버지 김일성부터 아버지 김정일까지 이어왔던 통일정책 흔적을 교과서 에서 지우는 등 남한을 통일 대상이 아닌 제1의 적대국이라고 하였다. 그 이유는 북한의 나쁜 경제 상황으로 주민들의 불만이 큰데 거기에 더해 남한 문화가 급속히 확산하고 있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은 북한이 주도하는 통일은커녕 북한이 오히려 내부로부터 붕괴할 수 있다는 절박감 때문에 남한 문화 유입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남한을 상종해서는 안 되는 주적화하고 있다.
사실 북한 정권은 오래전부터 남한 문화의 북한 유입에 대해 우려하고 있었다. 특히, 북한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소위 ‘K-문화’는 북한의 사상체계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위기감이 들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그래서 북한은 2020년 반동사상문화배격법, 2021년 청년교양보장법을 제정하였으나 그 효과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2023년 1월 ‘평양문화어보호법’까지 채택했다. 이 법 제1조에는 ‘괴뢰말투를 쓰는 현상을 근원적으로 없애고 비규범적인 언어요소를 배격하며 온 사회에 사회주의적 언어생활기풍을 확립하여 평양문화어를 보호하고 적극 살려나가는데 이바지한다’라고 명시돼 있다. 여기서 괴뢰말투는 남한 말투를 뜻한다. 이 법과 함께 반동사상문화배격법, 청년교양보장법은 북한 주민의 인권을 침해하고 일상생활을 통제하는 ‘3대 악법’이라고 불리고 있다.
3대 악법이 만들어진 것은 오로지 남한의 문화 유입 때문이다. 북한은 대북 전단이나 대북 확성기 방송을 남한 문화 유입의 주요 경로로 인식하고 있는데, 대북 전단 금지법 위헌 결정 이후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가 재개되자 큰 위협을 느끼고 이를 차단하기 위한 절박한 심정으로 오물풍선을 살포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 우리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하자 북한은 혹 떼려다 혹 하나 더 붙이는 꼴이 되었다.
3. 김여정의 개성공단 폭파 이유
2020년 6월 4일, 김여정은 탈북민단체에서 북한에 보내는 전단(삐라)을 북한으로 보내는 것과 관련하여 북한 노동신문을 통해 “남조선 당국은 구차하게 변명할 생각에 앞서 그 쓰레기들의 광대놀음을 저지시킬 법이라도 만들고 애초부터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지 못하게 잡도리를 단단히 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며 “남조선 당국이 응분의 조처를 세우지 못한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업지구의 완전 철거가 될지, 북남 공동연락사무소 폐쇄가 될지, 있으나 마나 한 북남 군사합의 파기가 될지 단단히 각오는 해둬야 할 것”이라며 대북전단 살포 금지를 요구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16일 북한은 실제로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하였다. 이에 당시 문재인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부랴부랴 서둘러 일명 ‘김여정 하명법’이라고도 불리던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을 그해 12월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이러한 과정에서, 개성공단 폭파에는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대북전단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강한지 엿볼 수 있다.
4. 대북전단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
일부 언론이나 정치인들은 살포한 대북전단 상당수가 북한으로 가지 못하고 남한 지역에 떨어지고 북한의 실상을 알린다는 내용으로는 북한체제를 붕괴시킬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북 전단은 대부분 북한으로 가고 극히 일부만 남한 지역에 떨어진다. 또한 많은 탈북민이 대북 전단을 보고 북한의 잘못된 점과 남한의 실상을 알게 되었고 그것이 탈북에 영향을 미쳤다고 증언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단의 내용은 북한 주민의 사상을 흔드는 데 충분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북 전단에는 주로 “수령의 아들이 수령이 되는 나라는 세상의 우리밖에 없다”, “핵실험하고 미사일 쏴대면 쌀이 나오냐”라는 등 김씨 왕조의 세습 정치와 김정은 정권의 핵 개발을 강하게 비판하는 내용과 한국의 발전상에 관한 내용 등이 담겨있다. 이런 내용은 북한 주민에게 사상적으로 많은 영향을 줄 수밖에 없는데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덕분에 북한은 잠시 대북 전단에 대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2023년 9월, 대북전단 살포 금지법은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결정이 났다. 그렇지 않아도 남한 문화 유입으로 북한 주민들의 사상이 흔들리는 등 내부적으로 혼란하여 남한과의 단절을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탈북민 단체에서 대북 전단 살포를 재개한 것은 북한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상황이라 판단하고 대북 전단 살포를 자신들의 ‘사상과 제도를 헐뜯는 정치선동 오물’이라고 비난하면서 남쪽으로 오물풍선 1,610여 개를 날려 보낸 것이다.
5. 대북 확성기 방송의 위력
오물풍선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우리 정부가 9.19 남북군사합의로 중단되었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를 결정하자 북한은 오물풍선 보내는 것을 자제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은 대북 전단보다 더 강하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은 우리에게 비대칭전력이다. 반대로 북한에는 우리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비대칭전력으로 오히려 북한의 핵과 미사일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 그 이상일 것이다.
휴전선 일대 남북 간 확성기 방송은 1962년 북한이 먼저 시작했고 그에 대응하여 우리가 1963년부터 시작하였다. 그 이후 1972년 ‘7.4 남북공동성명’을 채택하면서 남북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상호 비방과 무력도발 금지 등을 포함한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다. 그러나 1983년 ‘아웅 산 폭탄 테러’사건 등으로 우리가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며 서로 대형 전광판을 설치하여 운영하다가 2004년 열린 남북고위급회담에서 확성기 방송을 전면 중단하고 전광판 철거 등 휴전선 일대에서의 심리전을 중단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2010년 천안함 피격 사건을 계기로 우리가 다시 대북 확성기를 가동했다가 보름 만에 다시 남북이 합의해 방송을 중단했다. 이후 2015년 목함지뢰 사건으로 우리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하자 북한은 연천군에 있는 우리 측 대북 확성기를 목표로 하여 포격을 가하였고 이에 우리가 대응 사격을 가하는 등 전쟁이 터지기 직전의 일촉즉발의 상황으로까지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었다.
그러자 북한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급하게 요청하여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우리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홍용표 통일부장관과 북측에서 황병서 군 총정치국장, 김양건 노동당 비서가 회담을 통해 북한은 지뢰 폭발 사고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우리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우리 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직후인 2016년 1월 다시 가동되었다가 약 2년 3개월 만인 2018년 4월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중단됐다.
대북 확성기 방송 역사에서 보듯이 북한은 남북고위급회담이 열리면 통상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을 가장 먼저 요구하였는데 이는 대북 확성기 방송의 효과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대단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북한이 우리의 대북 확성기 방송에 예민하게 반응하여 확성기에 포격까지 하는 것은 그만큼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 체제 붕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6. 정부의 대응과 여론
오물풍선 살포와 관련하여 강력한 힘이 아니라 상호 긴장을 낮추기 위한 남북 대화를 통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이 있는데, 지난 문재인 정부 시절 북한과의 대화를 위해 남북 정상회담을 하고 9.19 군사합의를 체결하는 등의 온갖 노력을 하였지만 결국 돌아온 것은 북한의 핵, 미사일 실험과 우리 대통령을 향한 막말뿐이었다. 이러한 대응으로는 언젠가 우리가 위험에 처했다는 상황을 알지도 못한 채 치명적인 결과를 맞을 수도 있다.
그동안 역대 우리 정부는 이런저런 이유로 북한의 각종 도발에 대해 미온적으로 대처했다. 그 결과가 이번과 같은 전혀 상상할 수도 없는 오물풍선 살포 사건으로 나타났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은 그동안 수많은 도발을 통해 우리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다는 학습효과에 기반을 두고 항상 갑의 위치에서 남북 관계를 이끌고 가려는 의도를 보였다. 그리고 우리는 통상 북한의 의도와 그에 동조하는 일부 여론에 따라, 2015년 목함지뢰 사건 시 포격전 등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 강경한 대응보다는 북한의 정치적 의도에 끌려다니며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대응을 해왔다.
이번 오물풍선에 대응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는 내부적으로 갈등을 겪고 있다. 접경지 주민들은 탈북민 단체의 대북 전단 살포로 농사를 망칠 수 있다는 우려를 하고 있다. 경기도지사는 “경기도는 평화를 위협하는 행위에 단호히 대처하면서 도민 안전을 지키겠습니다. 전단 살포 예상 지역의 특사경 출동은 바로 즉각 할 수 있도록…”라며 대북 전단 살포에 대해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정부가 북한의 오물풍선 살포에 강하게 대응하기 위해 결정한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대해서도 바람, 습도 등과 같은 변수가 많아 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다든지 대북 확성기의 성능이 베일 가려 과장되었다는 등의 이유로 대북 확성기 방송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이는 북한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극구 반대하는 것을 생각하면 어불성설이다.
또한 오물풍선을 비무장지대에서 떨어뜨려야 했었다는 둥 여러 의견이 있다. 이에 대해서는 정부도 북한이 오물풍선에 생화학무기를 실어 보내는 단 1% 가능성에도 대비하는 등 오물풍선에 대한 대응을 전반적으로 보완하여야 할 것이다.
7. 평화는 힘에 의해서만 지켜진다
“아무리 더러운 평화라도 이기는 전쟁보다는 낫다”라고 말한 우리 정치인이 있다. 영국 수상 체임벌린이 더러운 평화를 선택했었지만, 그 결과는 참담한 제2차세계대전이었다. 북한의 도발 위협에 끌려다니며 얻는 가짜 평화는 궁극적으로 우리를 더 비참하게 만들 뿐이다. 지난 1월 윤석열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이라고 말한 바가 있다. 정부는 이런 자세로 빈틈없는 대북 대비태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김정은의 선의에 기대하는 가짜 평화가 아니라, ‘힘에 의한 진짜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 본고는 한반도선진화재단의 견해와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