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구상의 가장 유사한 나라
한국(대한민국)과 대만(중화민국)은 비교정치학자들이 꼽는 ‘지구상의 가장 유사한 나라’이다. 정치 체제 면에서 대통령(총통)제 하 민주공화정을 택하고 있다. 자유시장주의에 기반한 자본주의 경제 제도를 가지고 있다.
민주주의 발전 면에서도 유사하다. 영국 《이코노미스트》 부설 기관 ‘이코노미스트 인텔리전스 유닛(EIU)’은 지난 2월 발표한 ‘2023년 세계 민주주의 지수’에서 167개 조사 대상국 중 대만은 10위, 한국은 22위에 올라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로 분류했다. 언론 자유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Without Borders)의 ‘2023년 세계 언론자유 지수(Worldwide press freedom index)’에서 대만은 35위를 기록했고 한국은 47위를 차지했다.
경제 부문 성과도 유사하다. 2023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약 3만 4000달러로 집계됐다. 같은 시기 대만은 3만 3299달러를 기록했다. 한해 전인 2022년 통계 기준 한국의 1인당 GNI는 대만(3만 3624달러)보다 낮은 3만 2886달러였으나 1년 만에 재역전했다.
정치 환경도 닮은 꼴이다. 한국은 1987년 ‘제6공화국 헌법’제정으로 박정희-전두환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군부 권위주의를 청산하고 본격적인 민주화 도정(道程)을 걸었다. 1993년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文民)정부가 출범했고, 1997년 대통령 선거에서 김대중 새정치국민회의(현 더불어민주당 전신) 후보가 당선돼 헌정 사상 첫 여야 정권 수평 교체가 이뤄졌다. 이후 2007년 이명박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전신) 후보가 당선돼 ‘선거’라는 민주주의 제도에 의해 다시 한번 정권 교체가 이뤄졌다. 이로써 민주주의 공고화(鞏固化)를 측정하는 2차례 정권 교체 테스트(two-turnover test), 이른바 ‘헌팅턴(Huntington) 테스트’를 통과했다.
1949년 제2차 국공(國共)내전에서 패배란 중화민국 국민정부의 대만 파천, 즉 국부천대(國府遷臺)후 대만에는 계엄령이 선포됐다. 1975년 아버지 장제스(蔣介石) 사후 1978년 총통이 된 장징궈(蔣經國)는 재임 시절 민주화를 이행했다. 1986년 국민당 밖 재야라는 의미를 지닌 당외(黨外) 인사들이 창당한 민주진보당(민진당)을 묵인했다. 1987년 38년간 이어진 세계 최장 계엄령을 해제했다. 이는 《기네스북》에도 등재됐다. 결정적으로 1988년 1월 장징궈 사망으로 장제스-장징궈 부자의 권위주의 통치가 종식됐다. 중화민국(대만) 헌법에 의해 본성인(本省人) 테크노크라트 출신 리덩후이(李登輝) 부총통이 총통 직을 승계했다. 그는 1991년 ‘동원감란시기임시조관(動員戡亂時期臨時條·반란평정 시기 임시법령)’을 폐지하여 대만의 절차적 민주화를 완성했다. 2000년 3월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 후보가 총통에 당선되어 첫 정권 수평 교체가 이뤄졌다. 2008년 3월 중국국민당(국민당) 마잉주(馬英九)가 정권 교체에 성공하여 헌팅턴 테스트를 통과했다.
각각 ‘한강의 기적’, ‘대만의 경험’으로 불리는 권위주의 체제 하 국가주도 경제 발전에 이어 민주화, 민주주의 공고화를 달성한 한국과 대만은 2000년대 선진국 대열에도 진입했다. 이는 후기 발전도상국의 대표적인 모범 사례로 꼽힌다. 다만 정치권의 이전투구(泥田鬪狗)도 치열하여 ‘의회 폭력’으로 오명을 얻기도 했다.
2. 닮은 꼴 정치 환경, 보수 정당의 위기
두 나라 정치 지형도 묘하게 닮은 꼴이다. 매번 선거 때마다 한반도는 동서로 양분된다. 영남(嶺南)을 중심으로 한 동쪽 지역에서는 보수 정당이, 호남(湖南)을 위시한 서쪽에서는 진보정당이 우세를 보인다.
반면 대만은 남북으로 나눠진다. 선거 개표 때마다 제1 항구도시 가오슝(高雄)을 중심으로 한 남쪽 지역은 녹색으로 타이베이(臺北)를 비롯한 북부는 파란색으로 물든다. 녹색은 현 집권당인 민진당, 파란색은 제1야당인 국민당(國民黨)의 상징색이다. 이를 대만의 푸른 하늘과 녹색 대지에 빗대 ‘남천녹지(藍天綠地)’라고 한다. 전통적으로 북쪽에서는 국민당을 위시한 범람(泛藍·pan-blue) 계열 정당이, 남쪽에서는 민진당을 비롯한 범록(泛綠·pan-green) 계열 정당이 우세하다.
보수 정치 세력의 위기 혹은 몰락이라는 점에서도 한국과 대만은 유사하다. 한국 보수정당의 맥을 잇는 정당인 오늘날 국민의힘은 제22대 총선에서 패배했다. 2016년 제20대 총선, 2020년 제21대 총선에 이은 3연속 패배이다. 특히 지난 4월 총선은 집권 여당으로서 유례없는 참패를 당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범야권은 전체 300석 중 192석을 획득하여 절대적 여소야대 시대를 예고했다.
1949년 국부천대 이후 계엄령하에서 중앙 정치권력을 독점해 온 대만 국민당은 2000년 첫 야당으로 전락했다. 2008년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2016년, 2020년, 2024년 3번의 총통 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했다. 반면 1986년 창당한 민진당은 천수이볜 정부(2000~2004년), 차이잉원 정부(2016~2024년)에 이어 지난 1월 대선에서 라이칭더(賴?德) 현 부총통이 승리하여 헌정 사상 첫 3연속 집권 기록을 썼다.
이처럼 한국과 대만은 제(諸) 분야에서 유사점을 지녔다. 보수 세력이 위기에 몰렸고, 젊은 세대의 외면을 받고 있어 미래 전망마저 어둡다는 점에서도 놀라울 만큼 닮았다. 한국과 대만의 보수 정당 체질도 닮았다. 정치권 비주류로 밀려났음에도 여전히 권위적이고 안일하여 ‘공무원 정당’이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
3. 100년 정당 국민당, 3년 수명의 한국 정당
한국과 대만에는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있다. 정당 체제의 안정성이다. 극단적으로 말하여 한국과 대만의 정당 체제 안정성은 천양지차이다. 달리 말하여 한국의 정당은 극도로 불안정한 반면 대만의 정당은 안정적이다. 정당 리더십 분야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정당사는 복잡하기 그지없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정당의 이합집산이 지속되기 때문이다. 500개 이상 정당이 명멸(明滅)한 한국 정당 평균 수명이 3년 정도다. 10년 이상 존속하면 장수정당으로 꼽힌다. 보수정당의 계보를 이어오고 있는 국민의힘 사정도 다르지 않다. 1990년 민주정의당(노태우)·통일민주당(김영삼)·신민주공화당(김종필)의 이른바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탄생했다. 이후 신한국당(1995년), 한나라당(1997년), 새누리당(2012년), 자유한국당(2017년), 미래통합당(2020년), 국민의힘(2020년)으로 당명이 바뀌어왔다. 2012년 새누리당 출범 이후 대선·총선을 각기 다른 당명으로 치러온 셈이다. 8년 만에 4번 당명이 변경됐다. ‘국민의힘’이라는 현 당명도 언제까지 사용될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반면 대만 대표 보수정당 국민당은 100년 정당이다. 1919년 10월 10일 ‘중국국민당(中國國民黨)’창당 당명 변경 없이 존속하고 있다. 현 집권당 ‘민주진보당(民主進步黨)’도 마찬가지이다. 1986년 창당 이후 38년 동안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제3 정당 사정도 다르지 않다. 1993년 국민당에서 분당하여 창당한 신당(新黨), 2000년 국민당 탈당파가 결성한 친민당(親民黨), 급진 대만 독립 세력이 결집하여 2001년 성립한 대만단결연맹(臺灣團結聯盟) 등 이른바 군소정당들은 약 20년째 입법위원(국회의원), 광역지방자치단체장 등을 배출하지 못하는 원외(院外) 정당 신세다. 하지만 당명 변경, 해산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기본적으로 강력한 원외(院外) 정당인 대만 정당은 ‘정치 결사체’로서 정당이다. 반면 한국 보수정당은 국회의원들이 모인 ‘이익 집단’이자 ‘그들만의 리그’다. 이런 점에서 대만 정당은 한국 정당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평가된다.
정당 리더십 면에서도 한국과 대만은 극히 대조적이다. 지난 1월, 총통 선거에서 사상 첫 3연속 패배라는 굴욕을 당한 국민당의 주석(대표)은 여전히 주리룬(朱立倫)이다. 2021년 두 번째 주석으로 선출된 이후 현재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반면 현 집권 여당 국민의힘 리더십은 혼란 그 자체다. 2021년 6월 이준석 대표(현 개혁신당 대표) 체제 성립 후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성립이 반복되고 있다. 2022년 이준석 대표가 당원권 정지라는 ‘징계’절차에 의하여 사실상 축출됐다. 이후 주호영 비대위 체제(2022년 8월), 정진석 비대위 체제(2022년 9월), 김기현 대표 체제(2023년 3월), 한동훈 비대위 체제(2023년 12월)가 차례로 성립했고 지난 4월 제22대 총선 참패 여파로 한동훈 전 비대위원장이 사임하여 지도부 공백 사태가 지속되고 있다. 3년 사이에 당 대표가 2번 교체되고 4번째 비대위 체제 성립을 앞두고 있다.
대만 정당들이 안정적인 구조, 리더십을 가진 배경은 지난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지난날 유일 합법정당이자 오늘날 제(諸) 정당의 모체가 되는 중국국민당은 본디 마르크스-레닌주의 혁명정당이다. 그 연장선상에서 지난날 중국국민당 군대의 공식 명칭은 국민혁명군이었고, 오늘날까지 정당 연수원 공식 명칭은 혁명실천연구원이다.
1912년 중화민국 성립 7년 차인 1919년 중화혁명당(1913년 창당)을 모체로 창당한 중국국민당은 창당 시 소련공산당의 도움을 받았다. 정당 구조, 리더십 등 제반 분야에서 ‘공산당’을 모델로 했다. 정당 조직은 전체 당원→전국대표대회→중앙위원회→중앙상무위원회→주석 순으로 구성된다. 그 중 ‘중앙위원회’가 핵심 조직이다. 중앙위원회는 4년마다 열리는 전국대표대회(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위원으로 구성된다. 중앙위원회의 상설 기구로 정원 34인의 중앙상무위원회를 구성하고 1인의 주석을 선출한다. 상설 집행기관으로 비서장(?書長) 1인과 복수의 부(副)비서장 산하에 업무 영역별 위원회·부를 두고 있다. 정당 싱크탱크로는 국가정책연구재단(國家政策硏究基金會), 중앙 연수원으로 혁명실천연구원가 있다. 이러한 정당 구조는 전체 당원→전국대표대회→중앙위원회→정치국위원회→정치국상무위원회→총서기 위계로 구성되고 약칭 ‘중공중앙(中共中央)’인 중앙위원회가 최고 지도기관 역할을 하는 중국공산당과 닮음 꼴이다.
4. ‘비상대책위원회’가 일상화된 한국 정당
정당 구조 속에서 4년마다 선출되는 중국국민당 지도부의 리더십은 안정적이다. 주요 선거 패배, 개인 비리 문제, 당내 파벌 싸움 등으로 당 주석이 임기 내 사임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하지만 정당 지도부가 집단 사임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당 주석 사임 후 ‘대리’주석을 선출하거나 부주석 혹은 비서장의 ‘권한 대행’체제로 운영하고, 전임자의 잔여 임기 종료 후 다시금 전국대표대회를 개최하여 정당 지도부를 구성한다. 한국 정당의 ‘비상대책위원회’와 유사한 기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중국국민당을 벤치마킹하여 유사한 구조와 리더십을 지닌 민주진보당, 신당, 친민당 등 여타 정당도 다르지 않다.
정당의 생명력, 안정적인 리더십과 더불어 대만 정당이 한국 정당과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대만의 정당은 ‘당원(黨員)의 정당’이라는 점이다. 기본적으로 정치 지도자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특정 정당에 당적(黨籍)을 두고 장기간 활동하며 능력을 인정받아야 하는 구조이다. 이는 전·현직 지도자들의 경력에서 간명하게 알 수 있다.
2008~2016년 총통에 재임한 국민당 소속 마잉주 전 총통은 양친이 모두 국민당 정부 고위 간부이다. 국립대만대를 거쳐 미국 하버드대에서 유학한 마잉주는 대학 시절 국민당에 입당했다. 하버드대 법학전문대학원 재학 시절 중국국민당 해외공작위원회가 운영하던 반공 매체 《보스턴통신·Free Chinese Monthly》의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귀국 후 장징궈 총통 영어통역 비서로 정계 입문했고 행정원 대륙위원회 부주임위원, 법무부 부장, 타이베이 시장 등 공직을 맡았다. 국민당 내에서는 1984년 중앙위원회 부비서장을 맡아 본격 지도부에 진출했고 2005년 당 주석에 선출됐다.
5월 20일 총통에 취임할 라이칭더 현 부총통도 다르지 않다. 의사 출신인 그는 1994년 민진당 대만성 성장 후보 캠프에 의사 대표 자격으로 합류하는 것으로 본격적인 정치 인생을 시작했다. 이후 1996년 국민대회 대표, 1998년 입법위원, 2010년 타이난(臺南) 시장에 당선됐다. 2017년 행정원 원장(국무총리 해당)에 임명됐고, 2020년부터 현재까지 차이잉원 정부 부총통으로 재임 중이다. 그는 정계 입문 후 30년을 ‘민진당 당원’으로 활동해 오고 있다.
단적으로 말해서 ‘정치 경력 제로(0)’상태에서 특정 정당에 영입되어 단기간에 후보가 되고 선거에 승리하여 대통령·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대만 정치 풍토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비슷하지만 다른 나라’대만의 정당 사례는 ▲정당의 생명력 ▲정당 구조의 안정성 ▲정당 리더십 ▲정당 인재 육성 면에서 한국에 시사점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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