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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국가연구개발 혁신,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 통권264호
 
2023-07-06 14:31:59
첨부 : 230706_brief.pdf  
Hansun Brief 통권264호 


곽노성 한선재단 기술혁신연구회장, 연세대학교 객원교수



윤석열 대통령은 국가 R&D 예산을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이로 인해 과기정통부는 R&D 예산안 법정 제출 시한을 넘기게 되었다. 그간 과학기술계 안팎에서 현행 국가 R&D 시스템에 대한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었고,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에서 이번 대통령의 지시는 매우 시의적절한 것이라는 진단이다.

 

그렇다고 이번에 이 문제가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역대 정부에서도 R&D 시스템 개편 시도가 있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오히려 혼란을 가져왔고 결국 안 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묘한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특히 기재부로 대표되는 정부와 과학기술계 간에는 뿌리 깊은 불신이 있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다른 나라에는 없는 두 개의 제도가 있다.

 

- 민간 전문가의 국가연구개발 예산 심의

 

국가 R&D 예산은 민간위원으로 구성된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이하 자문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한다. 심의라고 해서 결코 형식적이지 않다. 자문회의 산하에 10개의 전문위원회가 있다. 전문위원회에 올라온 R&D 예산에 대해 연구과제 수준까지 검토한다. 심의기구이어서 최종 결정은 아니지만 사실상 당락을 결정할 정도로 영향력이 막강하다. 이처럼 민간위원이 예산을 심의하는 제도는 다른 나라에는 없다. 미국의 대통령 과학기술자문회의(PCAST)는 순수 자문만 한다. 예산, 정책 심의는 대통령 소속의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에서 담당한다. 이 기구는 부처 장관 등 공무원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민간위원은 없다.


우리나라처럼 민간위원이 예산을 심의하던 일본은 2013년 심의에서 민간위원을 배제하도록 제도를 바꿨다. 민간위원이 예산 심의과정에서 국가 전략을 고려하기보다 자신의 분야 예산 확보에 집중하는 문제가 심각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과학기술정책 전반은 총리 자문기구인 종합과학기술혁신회의에서 심의하지만 예산은 미국처럼 부처 공무원으로 구성된 과학기술혁신예산전략회의에서 심의한다.

 

- 연구개발 예산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

 

그렇다고 과학기술계가 자신의 이해만 챙긴다고 오해하면 곤란하다. 과기계가 예산 심의를 주도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정부 예산 심의에 대한 불신이다. 예전에는 기재부 사무관이 연구사업 수준이 아닌 연구과제까지 일일이 검토했다. 그렇다 보니 해당 분야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무관을 상대로 저명한 연구자가 많은 시간을 기다리다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수시로 발생했다. 때로는 모욕적인 언사를 듣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과학기술계는 국가 R&D 예산 심의 기능을 기재부에서 과기정통부로 이관시키는 노력을 했고, 그 결과 지금의 예산 심의 시스템을 갖추게 되었다. 그렇다고 과거의 관행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대표적인 사례가 연구개발 예산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다. 선진국에서는 공항과 같은 대형건설 사업을 할 때만 시행하는 이 조사를 우리나라는 국가 R&D 사업에도 적용한다. 이렇게 정해진 사업은 보통 10년간 지속된다. 환경이 변한다고 사업 내용을 조정하기도 쉽지 않다. 때로는 더 이상 필요 없는 사업도 계속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10년 후 사업화 결과를 예측하는 예비타당성 조사가 매우 무의미한 일이다. 우선 지금 연구한 성과물이 나중에 어떤 실용화 결과를 가져올지 누구도 예측하기 어렵다. 또한 언제 그 성과가 나올지도 예측하기 어렵다. 대표적 사례로 중국의 리튬 인산철 배터리를 들 수 있다. 본래 이 기술은 미국에서 개발했다. 그런데 전기차 대중화가 지지부진해지면서 상용화하던 기업이 파산했고, 중국 기업이 이 기업을 인수했다. 이후에도 에너지 밀도가 낮아 저급 기술로 취급받던 이 기술은 가격경쟁력이 주목받으면서 우리 배터리 산업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미국도 이 기술의 잠재력을 알았더라면 중국으로의 기술 유출을 방관하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 전략기획 및 실행력 부족

 

우리나라와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과 국가 R&D 시스템에서 가장 큰 차이는 기획력이다. 선진국은 전략적 목표를 정하면 이를 달성하기 위해 풀어야 할 과학기술적 문제를 발굴한다. 그리고 이 문제를 잘 풀 수 있는 연구팀을 찾는다. 반면 우리나라는 그 순서가 다르다. 전략적 목표를 정한 후 관련 연구팀을 찾는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고 싶은 연구주제를 제안받는다. 그 다음, 그 주제를 전략적 목표와 연결한다. 얼핏 보면 미국이나 우리나라 모두 전략목표-문제제시-연구팀 선정이라는 R&D 기획집행 절차를 거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 내용을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 미국은 연구팀 선정 이전에 풀어야 할 과학기술적 문제를 발굴했기 때문에 연구가 성공하면 전략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연구가 성공한다고 해서 전략목표를 달성할지 불확실하다. 전략목표 달성에 필요한 과학기술적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한 것이 아니라 연구팀이 풀고 싶은 문제만을 풀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R&D 필요성이 아니라 예산 확보여부가 사업의 기획?집행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대 조류에 빠르게 반응한다. R&D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이 부각되면 관련 예산이 대폭 늘어난다. 국내 인력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다. 정작 지금까지 잘하던 연구의 예산은 대폭 줄어든다.


이런 상황에서 연구자가 생존하려면 자신의 전공에 맞춰 연구과제에 지원하기보다 수주하기 쉬운 과제로 전공을 바꿔야 한다. 자칫 지금까지 한 연구 성과를 아쉬워하면서 머뭇거리면 실험실 운영조차 어려워진다. 연구관리기관도 마찬가지다. 정상적 기획으로는 예산을 쓰기 어렵다. 일단 예산을 쓸 수 있는 연구팀을 섭외해서 아이디어를 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