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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여성은 밥을 남길 권리가 있다] 통권250호
 
2023-04-07 16:25:26
첨부 : 230407_brief.pdf  
Hansun Brief 통권250호 

손숙미 한반도선진화재단 양성평등위원회 위원장




최근 민주당 주도로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 법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쌀이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양곡관리법은 초과 생산된 쌀에 대해 정부가 의무적으로 수매 및 시장격리를 할 수 있게 하는 법이다.

 

1. 포퓰리즘의 양곡관리법

 

양곡관리법 개정안은 일시적으로는 농민들에게 달콤한 꿀처럼 작용하여 농민들의 표심을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포퓰리즘 법으로 지목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지금도 남아도는 쌀의 공급량이 더욱더 늘어나게 되어 정부는 막대한 쌀 저장비를 지출해야한다. 오래 묵은 쌀은 식용으로 소비하기도 어려워 결국 동물의 사료로 사용될 것이다. 또 부가가치가 높은 타 작물 재배 전환이 늦어져 결국 농민들에게도 불이익이 되는 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

 

여당의 민생 119 특위 위원장은 쌀이 남아도는 지금의 현실을 가슴 아파하면서, 양곡관리법 대안으로 쌀 소비촉진을 위한 밥 한 공기 다 비우기를 제안했다. 그리곤 쌀이 다른 식품과 비교해서 칼로리가 낮은데도 여성들이 다이어트를 위해 밥을 잘 먹지 않는 분들이 많다고 했다. 쌀 소비가 잘되지 않는 이유를 여성에게서 찾은 것이다. 매스컴에서는 양곡관리법은 없어지고 밥 한 공기와 여성만 남게 되었다.

 

우리나라의 쌀 소비량은 그동안 꾸준히 감소해 왔다. 2012년 국민 일 인당 연간 쌀 소비량이 69.8kg에서 202156.9kg으로 감소했다. 최근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외식과 급식에서의 쌀 소비량은 더욱더 감소했다. 2021년 국민 일 인당 하루 쌀 소비량은 155.8g으로 이는 밥 1.7공기에 해당한다. 국민 일 인당 쌀 소비가 줄어든 것은 소득 증가로 인해 다른 먹거리가 풍부해졌기 때문이다. 쌀 대신 밀가루나, 고기, 과일, 유제품 등의 소비가 급격하게 늘었다.

 

그동안 농림축산식품부는 국민의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수많은 정책을 시도했다. 쌀빵, 쌀국수, 쌀로 만든 과자 등 다양한 레시피 개발을 지원했다. 이러한 정부의 각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쌀소비 감소라는 거대한 트렌드를 이겨내기가 어려웠다.

 

베트남은 일 년에 벼를 삼모작 하고, 모를 던져만 놓아도 잘 큰다고 할 만큼 품이 적게 든다. 이에 비해 품이 많이 드는 한국 쌀은 국제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없어 초과생산되어도 수출이 쉽지 않다. 우리가 먹는 쌀은 자포니카로 동남아의 인디카에 비해 부드럽고 찰지다고 좋아한다. 그렇지만 세계적으로 자포니카를 먹는 나라는 우리와 일본을 제외하면 많지 않다.

 

쌀 소비촉진을 위해 여성들이 밥 한 공기를 다 비우면 도움이 될까? 아마 음식쓰레기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쌀 소비가 더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쌀 소비를 늘리려면 평소보다 더 큰 밥공기를 사용하거나, 밥을 공기에 수북이 더 담거나, 아니면 한 공기 이상을 먹어야 한다.

 

2. 여성에게는 밥을 남길 권한 있어

 

외식하다 보면 밥공기가 남녀별로 구분되어 있지 않고 주로 남성에 맞추어져 있다. 획일적인 밥공기 크기에 성인지적 관점이라곤 없다. 2020년 한국인 영양섭취기준에 따르면 성인여성(19~49세 기준)은 남성보다 하루 필요 에너지 추정량이 600Kcal 정도 적다. 이는 밥 2공기에 해당하는 칼로리이다. 이처럼 여성은 남성보다 더 적게 먹어야 하는데도 여성은 대부분의 외식에서 밥의 양에 대해 선택권이 없다. 다이어트를 굳이 하지 않더라도, 체격이 큰 여성을 제외한 일반적인 여성은 외식이나 배달음식에서 밥을 남기는 경우가 많다.

 

왜 음식점 주인들은 서빙하는 밥의 양을 다양하게 하지 않고, 남긴 밥을 음식쓰레기로 처리하는 것일까? 밥양을 다양하게 제공하려면 품이 더 많이 들고, 쌀이 다른 식품에 비해 가격이 싸기 때문이다. 만약 쌀이 금싸라기처럼 비싸다면 한 톨이라도 아끼려고 노력할 것이다.

 

여성들이 쌀 소비촉진을 위해 주어진 밥 한 공기를 남기지 않고 항상 다 먹는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질까? 외식에서 제공하는 밥은 대부분 흰밥으로, 잡곡밥보다 소화 흡수되는 속도가 엄청나게 빠르다. 십중팔구 칼로리는 과잉섭취되고 혈당은 치솟아 뚱보 호르몬인 인슐린 분비가 증가할 것이다. 한국인은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의 크기가 서구사람보다 작아 인슐린도 헉헉거리면서 분비하지 않을까? 인슐린의 작용으로 여분의 칼로리는 지방으로 변해 몸(특히 복부)에 저장될 것이다. 이러한 일이 반복된다면 결국 비만도가 증가하고 고혈압, 당뇨 같은 만성질환 위험이 증가할 수도 있다.

 

옛날 우리나라 사람들의 식사 사진을 보면 밥공기가 요즘보다 월등히 클 뿐 아니라 밥이 그릇 위로 불룩 솟아나 있는 걸 볼 수 있다. 요즘 밥 한 공기가 210g이라면 당시는 약 400~600g 정도로 보인다. 그런데도 당시에는 비만이 적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절에는 반찬을 짜게 만들어 밥을 삼키는 용도로 사용했기 때문에 반찬 섭취량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 밥으로 대부분 칼로리를 섭취했지만, 섭취한 칼로리는 농경사회에서 힘든 농사일로 많은 부분이 쓰였다.

 

현재 우리나라 사람들은 탄수화물에서 필요한 에너지의 60% 정도를 섭취하는 고탄수화물 식을 한다. 서구와 아시아 국가의 많은 통계자료를 모아 대단위로 분석한 논문에서 보면, 탄수화물로 섭취하는 칼로리 비율이 50~55%일 때 질병에 의한 사망률이 가장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따라서 우리나라 사람은 탄수화물에서 오는 칼로리 비율을 5~10% 정도 떨어뜨리는 것이 좋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히려 밥, 빵 떡 등의 탄수화물 식품 섭취를 줄여야 한다.

 

3. 쌀 소비 촉진보다 쌀 공급 줄여야

 

실제로 밥에서 섭취하는 칼로리가 54% 이상으로 높아지는 편중된 식사를 하면 단백질이나 비타민 무기질 등 대부분의 영양질적지수가 떨어진다. 2018년 필자가 국민건강영양조사 자료를 이용해서 발표한 공동논문에서도 남녀 모두 백미와 김치 섭취량이 많을수록 대사증후군 위험도가 높아지는 것으로 나왔다.

 

아무리 쌀소비를 늘리고 싶어도 쌀 소비가 줄어드는 대세를 막기는 어렵다. 잉여 쌀을 줄이기 위해서 밥 한 공기 다 비우기 운동을 해도 쌀 소비촉진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뿐더러 자칫하면 건강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따라서 국민에게는 밥을 남길 권리를 허락해야 한다. 더구나 성인지적 관점이 전혀 적용되지 않고 획일적으로 여성에게 제공되는 밥에 대해 여성은 밥을 남길 권리가 있다.

 

남아도는 쌀을 줄이기 위해서는 쌀소비 촉진보다는 쌀의 공급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식량 안보를 위해 일정량의 쌀은 확보하되 과잉생산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타 작물로 전환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정부는 농부들이 쌀농사를 줄여도 안정된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스마트팜 기술과 시설지원에 앞장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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