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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K-Culture의 세계화: 오늘과 내일] 통권227호
 
2022-06-07 15:12:13
첨부 : 220607_brief.pdf  
Hansun Brief 통권227호 

윤주한 철학박사, 대구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


1. ‘K-Culture’의 세계화?

 


2022528일에 막을 내린 제75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영화감독 박찬욱이 감독상을, 배우 송강호가 남우주연상을 받은 사실이 큰 화제가 됐다. 넷플릭스 시리즈 <오징어 게임>, 아이돌 그룹 BTS의 흥행이 대중들의 선택에 의한 것이었다면, 박찬욱과 송강호의 수상은 예술 전문가 집단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한국 문화 콘텐츠가 대중과 예술 전문가 집단 둘 다에게 ‘1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 문화 콘텐츠의 위상이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상승한 듯하다.

 

그러나 한국 문화 콘텐츠가 세계로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를 정확히 따지자면 적어도 2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TV 드라마 <겨울연가>가 일본에 방영되기 시작한 것은 2003년이다. <겨울연가>의 성공적인 수출 이후로, <대장금> 등 많은 한국 드라마들이 한류 열풍을 이끌며 일본, 동남아시아, 몽골 등 아시아권에서 열렬한 사랑을 받아 왔다.

 

한류의 흐름이 어떤 변화를 맞이한 것은 2012년 즈음이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서구권에서 공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BTS, 블랙핑크 등 다수의 아이돌 그룹들이 그 뒤를 이어 서구에서의 한류를 이끌었다. 한편 대중음악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외시장의 장벽이 높다고 여겨졌던 영화, TV 드라마가 서구의 대중들에게 열렬한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한국의 문화적 산물이 세계인들에 의해 소비되는 것 자체는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다만 문화 산물을 수출하는 입장에 주로 서 있던 서구 문화권의 국가들이 우리의 문화 산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서구 문화에 대한 무비판적인 동경, 혹은 반대로 문화 국수주의의 태도를 경계하면서 작금의 현상을 진단할 필요가 있다.

 

 

2. 왜 서구인들은 K-Culture에 열광하기 시작했나?

 

 

우리 문화 콘텐츠가 서구 문화권의 국가들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현상에는 여러 복합적인 원인이 있을 것이다. 그중 가장 주요한 요인을 꼽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 다소 진부한 진단이지만,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가 상승하면서 한국의 것이라면 주목할 만하다는 관념이 널리 확산된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정치적, 경제적 위상이 지금과 같지 않았더라도 우리의 문화 콘텐츠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을지는 의문이다. 다만 국가의 브랜드 가치 상승이 문화적 산물에 대한 인정을 일방적으로 견인하는 것은 아니다. 양자는 서로 순환적 관계에 있다. , 국가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면서 문화적 산물에 대한 외부의 주목이 증가하게 되고, 문화적 산물이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국가 브랜드 가치도 올라가는 등 순환적 상승이 지속적으로 일어난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그러나 물론 이것만으로 한국 문화 콘텐츠에 대한 작금의 전 세계적 열광을 완전히 설명할 수는 없다. 또 하나의 요인으로 생각해 봄직한 것은 우리가 만들어내는 문화 산물의 질 자체가 향상되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대한민국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졌다고 하더라도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을 만한 보편적 경험과 가치를 담은 질 높은 작품들이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지금과 같은 현상은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 서구 중심적 관점과 서사에 넌더리가 나기 시작한 전 세계의 문화 향유자들이 기존의 재현 관습을 뛰어넘는 신선한 작품을 찾고 있을 때, 우리의 문화적 특수성을 담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인류의 보편적 경험과 정서를 탁월하게 표현해낸 한국의 문화 콘텐츠가 호소력을 갖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로는 세계인들의 미적 감수성이 확장되고 심화되었다는 것을 지적할 수 있겠다. 미적 감수성은 어떻게 제련될 수 있는가? 이에 대해 영국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David Hume)<취미의 기준에 대하여(Of the Standard of the Taste)>라는 철학사적으로 기념비적인 글을 통해 답을 제공하고 있다. 흄에 따르면 예술작품의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상적 비평가(ideal critic)’가 되기 위해서는 특정한 종류의 아름다움을 자주 살펴보고 관찰하는연습, 그리고 그 종류와 정도가 서로 다른 여러 탁월한 특성들을 자주 비교해 보고 그것들이 서로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가를평가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미적 감수성이 낮은 사람들은 눈에 익지 않은 대상을 마냥 낯설게만 보고 멀리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연습과 비교를 통해 미적 감수성을 훈련한 사람들은 낯선 대상을 익숙한 대상과 비교하고 양자 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해냄으로써 낯선 대상이 가진 가치를 찾아낼 수 있다. 유튜브, 넷플릭스 등의 플랫폼들이 약진하면서 유례없이 전 세계의 문화적 산물이 거의 실시간으로 공유되기 시작했고, 전 세계의 문화 향유자들이 다른 문화권의 문화적 산물들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이러한 상황이 다양한 문화권의 문화 향유자들에게 미적 감수성을 제련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고 보는 것은 충분히 합당할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이질적인 동아시아의 문화권의 산물도 적극적으로 받아들일 만큼 서구의 문화 향유자들의 감수성이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

 

 

3. K-Culture의 미래를 위하여

 

 

위에서 진단한 세 요소 중 어느 하나라도 빠졌다면, 지금의 신()한류 열풍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진단이 이루어졌다면 이를 바탕으로 미래에 대한 처방을 내릴 수 있다. 한국 문화에 대한 전세계적 선호가 일시적 유행 이상이 되도록 하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먼저 문화 생산자들은 이제 문화 시장이 진정한 의미에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한류가 몇몇 특별하고 운 좋은 작품들만으로 이루어지던 시대는 지났다. ‘글자(자막)를 읽어야 하는 영화나 드라마는 결코 보지 않겠다라는 태도를 고수하던 서구의 문화 향유자들의 생각은 이미 크게 변화하고 있다. 내 작품의 잠재적 감상자가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고 전제해야 한다. 이는 창작자로서의 자유를 펼칠 수 있는 무대가 광대하다는 의미도 되겠지만, 그에 걸맞은 책임감이 요구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지나친 자기 검열은 창조성을 발휘하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지만, 내 작품이 전 세계의 다양한 문화 향유자들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최소한의 자기 점검은 필요할 것이다.

 

다만 이것이 인위적으로 해외시장을 겨냥한 작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 세계인의 사랑을 받았거나 받고 있는 작품 중 처음부터 해외를 겨냥해서 제작한 것은 거의 없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의 창작자들이 가장 주요한 잠재적 감상자로 의도한 사람들은 우리이다. 양질의 작품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안에서 문화 소비가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활성화된 문화 시장은 창작자들을 기르는 인큐베이터이다. 물론 문화의 소비가 단순히 양적인 차원에서 증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국내의 문화 향유자들이 양질의 작품에 주목하고 시간과 비용을 아낌없이 소비하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한 환경은 뛰어난 감수성을 갖춘 이상적 비평가들이 많을 때 만들어진다. 양질의 작품을 선별할 수 있는 안목을 갖추고 있고 작품을 보다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고급 감상자들이 많아질 때 좋은 작품도 만들어진다.

 

그렇다면 결국 우리가 궁극적으로 지향해야 하는 것은 더 나은 미적 감수성을 갖추는 것이다. 이미 세계 시장으로 통하는 길은 만들어져 있다. 이제 우리가 주목하면 세계도 주목한다. 국내 시장에서 좋은 작품에 주목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감상자들이 더욱 많아질 때 세계적인 작품도 탄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요구되는 것은 문화예술 교육에 대한 투자이다. 문화예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반드시 국가가 나서서 무언가 해야 한다면 가장 우선 순위에 있는 것이 바로 문화예술 교육이다. 문화예술 교육은 단순히 문화센터식으로 다양한 예술 활동을 단기적으로 체험해 보는 데 그쳐서도 안 되며, 반대로 엘리트 예술인을 키워내는 것에만 초점을 두어서도 안 된다. 한 국가의 문화예술 발전에 있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그 국가의 구성원들이 가진 미적 감수성임을 고려하면, 문화예술 교육의 목표는 시민 일반의 미적 감수성을 제련함으로써 문화예술의 중요성을 진지하게 체득하게끔 하는 데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이 목표가 단기적으로 쉽게 달성될 수 있으리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향하는 점이 분명하다면 그 과정이 아무리 지난하더라도 가치가 있을 것이다. 세계인들의 미적 감수성이 확장되고 심화되면서 우리의 문화 콘텐츠에 내재된 가치를 찾아낼 수 있는 안목이 생긴 것처럼, 우리 역시 확장되고 심화된 미적 감수성을 갖춤으로써 양질의 문화 콘텐츠를 더 깊고 넓게 감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좋은 문화 향유자들이 있는 곳에서 비로소 좋은 문화 창작자들이 탄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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