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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의료의 전면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통권211호
 
2022-03-22 13:49:42
첨부 : 220322_brief.pdf  

<기획시리즈2 - 새 정부에 바란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새 정부에 바란다] 정책제언을 시리즈로 게재합니다.


Hansun Brief 통권211호 

박종훈 고려대학교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보건의료정책연구회장


현재 우리나라의 의료제도는, 건강보험 도입을 시발점으로 본다면 약 반세기가 채 안 되는 역사를 갖고 있다. 본격적인 전 국민 의료보험제도 관점으로 본다면 30여 년 정도이다. 현재와 같은 건강보험 제도의 모습을 갖춘 것은 김대중 정부 때이니 20여 년이 조금 더 지났다고 볼 수 있다. 비교적 짧은 기간에 전 국민 보험제도를 바탕으로 의료 시스템을 이 만큼 안정적으로 성장시켰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만큼 무리수를 뒀다는 의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우리의 의료제도는 정치 경제적 상황에 따라 수정 보완되어왔기 때문에 순수 의료적인 견지에서 발전되어왔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그렇다 보니 현시점에서 볼 때 큰 틀에서는 완성도가 높아 보이나 각론으로 들어가 보면 전후 관계가 잘 맞지 않는 모순들이 있다. 그 결과 비효율적인 면을 많이 가진 제도가 되어버렸다. 그래서 새 정권에서는 의료제도의 전면적인 재검토와 수정 보완의 노력이 필요하다. 대표적인 몇 가지 사항을 꼽아보자.

 

1. 통제 불가의 과잉진료 시스템

 

과거 우리의 의료는 매우 절제되고 사려 깊은 의료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전공의 시절 기억 가운데 은사님들로부터 호되게 야단을 맞았던 것들의 상당수는 불필요한 검사를 시행해서였다. 왜 검사를 하는지 생각도 안 해보고 환자에게 부담을 줬으니 너는 의사로서 자격이 없다는 소리를 들었다. 그럴때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절제된 사려 깊었던 의료가 현재에는 보편적이고 일상적인 과잉 진료의 행태를 보인다.

 

아주 쉬운 증거를 보자. 우리나라의 급성기 환자를 위한 병상 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OECD 평균의 두세 배에 달하고 있다. 환자들의 평균 입원 일수 또한 OECD 평균을 훨씬 웃돌고 있다. OECD 국가 가운데 유독 별실이 많고 환자들의 입원 기간이 매우 길다. 이는 공급자와 사용자 모두 과잉된 면이 있음을 시사한다. 다시 공급자 측면으로 들어가 보면 더욱더 적나라하다. 단순 비교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나 노인들에게 시행되는 무릎 인공관절 수술의 경우, 우리는 일본의 수술 실적과 비슷한 수준이다. 일본의 인구가 우리의 2.5배 정도임을 감안한다면 우리의 과잉진료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다. 과잉진료는 진료 현장에서도 매우 쉽게 볼 수 있는데 이는 환자들의 지나친 의료 이용과 궤를 같이한다. 즉 공급자와 수요자 모두 과잉된 면이 있기에 적정화하기가 거의 불가능한 지경이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국민의 표를 의식한 저수가 정책과 통제하지 않는 무한 의료이용을 정부가 유도한 탓이다. 즉 싸게 마음껏 의료를 이용하라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불과 몇천 원이면 가까운 내과의원에 가서 가벼운 감기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는 과거 처방전이 없어도 약을 구입할 수 있었던 의약분업 이전에 약국에서 제조해서 받던 가격과 별반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그렇다 보니 환자들의 의료 이용은 절제되기 어려웠고 지나치게 싸다 보니 의료인으로서는 과잉진료로서 만회할 수밖에 없었다. 과잉진료의 문화가 개선되지 않은 상태에서 정부는 급여성 진료를 지속해서 확대해 나갔다. 이제는 어떠한 의료가 옳은 것인지 의료인들조차 헷갈리는 실정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재원의 한계가 있다 보니 중증 질환자의 의료비 부담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고 비급여 시장은 무한대의 증가세를 보인다.

 

2. 의료의 불균형이 극심하다.

 

우리나라 의료는 독특한 면이 있다. 그것은 모든 중증 질환자들이 수도권 대형병원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이런 나라는 없다. 오사카나 시애틀에 사는 환자가 암 치료를 위해 도쿄나 뉴욕으로 가지는 않는다. 그런데 우리는 어떨까? 부산, 대구, 광주 등 그 어느 지역에 사는 사람도 암이 의심된다는 말만 들으면 바로 서울행이다. 그 지역에 좋은 의료기관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무조건 서울행이다. 환자만 서울행일까? 의사나 간호사도 서울행이다. 모두가 서울로 온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수도권 몇몇 대형병원으로 온다. 지방은 환자도 의료 인력도 없다. 수도권이라도 몇몇 대형병원을 제외하면 환자나 의료 인력 없기는 매한가지다. 이렇다 보니 메르스 사태 때 서울의 모 대형병원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메르스가 순식간에 전국으로 파급됐던 것도 전국에서 환자가 몰려드는 병원이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의료의 단계를 거치는 과정 없이 열이 난다는 이유로 부산에서 서울의 대형병원 응급실로 바로 들어갈 수 있을까? 규정은 있는 데 있으나 마나 한 진료 전달체계 때문이다. 우리의 의료는 하단에 수많은 개원의가 있고 중간 허리인 준종합 또는 일반병원은 개미허리 정도로 있고 바로 거대한 상급종합병원 체계로 되어있다. 중증 질환을 진료한다는 전제하에 각종 혜택을 받은 상급종합병원들이 개원의들에서나 볼법한 경증 환자들을 보고있으니 의료의 낭비가 이만저만 아니다. 언젠가는 정부가 칼을 빼기는 뺄 것 같다. 언제냐고? 대형병원들이 비대해질 대로 비대해진 뒤에 말이다. 이미 체질 개선을 하지 않고는 거의 괴물이 되어갈 수준의 대형병원들의 상황을 인정한다면 개원의들과 중소 병원의 미래는 물론이고 대형병원들의 미래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3. 누구나 피부과 의사를 꿈꾼다.

 

우리나라 의대 수석 졸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졸업 후 전공과는 피부과다. 여기서 말하는 피부과라는 것은 좁은 의미의 피부과이기보다는 피부과가 의미하는 분야를 말한다. 의료사고가 적고, 수련 기간 당직도 없고 전문의 취득 후 삶의 질이 좋은 분야가 연상된다. 24시간 늘 긴장의 끈을 놓으면 안 되고, 의료사고가 빈번할 수밖에 없는 신경외과, 일반외과, 흉부외과 등은 어쩌다 한두 명 가물에 콩 나듯 소신 있게 지원하는 인력이 전부고 대부분은 지원자가 없다. 젊은 세대를 탓할 수 없는 것이 의료 시스템이 젊은 의사들에게 그렇게 선택하게끔 조성되어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남들은 편히 살아도 너는 그러면 안 되지 않겠니?라는 말을 할 수가 없다. 힘든 분야를 뛰어들만한 아무런 장점이 없는 시스템하에서 의과대학 교육이 미래의 의사과학자를 양산할 것이라는 기대는 이미 접은 지 오래다. 최근에 대한민국의 의과학 분야의 미래에 대한 우려 섞인 이야기들이 학자들 사이에서 나오고 있다. 그 가운데 있는 필자가 보기에 이미 우려의 시기를 지나 심각 단계로 접어들었다고 본다. 모든 이공계 인재들이 의대로 몰리고 결국에는 피부과만 하겠다는 이 상황에서 무슨 미래의 의과학에 희망이 있을까? 과거 노무현 정부 때 의과학자 양성을 목표로 다양한 학부 경험을 가진 학생을 영입하기 위해 의전원 제도가 있었지만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다. 왜 그럴까? 의료 시스템이 누구도 선뜻 그 길을 가기를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부의 전폭적인 시각 변화가 있기 전에, 현재의 의과대학 체계에서는 의과학자 양성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의료는 국민의 삶과 바로 직결되는 문제다. 개선할 점이 무궁무진하지만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우물 안 개구리 식으로 우리식의 방식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서서히 달아오르는 가마솥 안에 있으면 익어가면서도 모른다고 했던가? 현재의 의료제도가 그런 형국이다. 새 정부에서는 의료를 근본부터 새롭게 들여다보고 미래의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의료제도를 설계할 것을 천명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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