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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독일의 경제민주주의와 미국, 일본, 이스라엘의 재벌개혁] 통권188호
 
2021-06-07 17: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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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통권188호 


<경제민주화 기획시리즈2>

우리나라에서는 경제민주화가 정치 및 경제부문에서 만병통치약처럼 사용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원조인 독일의 사회민주당은 이를 폐기했는데도 한국에서는 여전히 위세를 떨치고 있다.

'경제민주화' 부작용과 잘못된 담론을 바로 잡기 위한 기획시리즈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김상철 한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반도선진화재단 국가전략연구회 부회장


1. 독일의 경제민주주의 전개와 현황

 

. 2차대전 후 공동결정제로 제도화 한 경제민주주의

 

2차 대전 후 독일에서 경제민주주의는 동반자적 노사관계를 위해 노동자가 경영에 참여하는 공동결정제(Mitbestimmung)로 제도화되었다. 독일의 공동결정제는 노동이사제와 사업장평의회(Betriebsrat)를 핵심으로 한다. 노동이사제는 기업의 최고의결기구인 감독이사회에 비상임이사로서 노동자 대표가 경영자 대표와 동등한 권한으로 참여하는 것이다.

 

독일은 2차대전 패망 후 1949년 총선에서 기독교민주당(CDU)이 사회민주당(SPD)에 승리하면서 경제민주주의가 아니라 사회적 시장경제가 독일의 경제질서로 재편되었다. 그 후 경제민주주의 주장 가운데 공동결정제가 제한적으로 수용되었다. 전후 노동자의 공동결정제는 1951광산철강 공동결정법’, 1952 경영조직법’, 1976년의 노사공동결정법의 세 가지 법률에서 규정되었다. 1951년 법에서는 감독이사회에 노사대표가 동수로 참여하는 것과 나아가 감독이사회에서 노무이사를 선임해 경영이사회에 파견하도록 하였다. 1952년 법은 종업원 500~ 2,000명 사이의 기업은 감독이사회의 1/3을 노동자 대표로 구성하도록 규정하였다. 1976년 법은 2,000명 이상의 민간 대기업 감독이사회에 노동자 대표가 동 수로 참여하도록 규정하였다.


독일에서 노동자의 공동결정제도가 도입된 지 40년이 지났다. 그러나 알리안츠(Allianz), 바스프(BASF), 프레제니우스(Fresenius) 등의 공동결정제도 성과에 대한 평가는 일치하지 않는다. 실제 나타난 현상은 노동이사제의 비효율성과 근로자 경영 참여에 대한 부담을 이유로 독일보다 감독 이사의 숫자가 적어 신속한 경영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유럽회사(SE)로 전환했다. 2018년말 기준으로 유럽회사로 바뀐 독일회사는 3,000개가 넘었다. 반면 독일에서 공동결정제를 실시하는 기업의 비율은 계속 감소하고 있다. 이제 노동자의 경영참여는 독일에서도 쇠퇴한 철 지난 제도로 판명났다.

 

. 공동결정제 확대를 요구하는 독일 노조와 경제 민주주의를 폐기한 사회민주당

 

1960년에 당시의 독일 금속노조 위원장 오토 브레너(Otto Brenner)가 거시적 차원에서는 완전 고용과 사회정의를 위한 거시경제적 계획, 중간수준에서는 기업의 경제 권력 통제, 미시적 차원에서는 기업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라는 경제민주주의의 3단계 구상을 제안하였다. 하지만 60년대 이후 독일노총은 경제민주주의를 공세적으로 주장하지는 못했다. 최근 2002년 이후 특히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일부 좌파 진영과 독일노총(DGB), 금속노조(IG Metall), 통합 공공서비스노조(ver.di) 중심으로 경제민주주의 논의가 다시 살아났다. 독일노총은 20105월 총회에서 금융시장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경제민주주의의 확대를 촉구했다. 이어 독일노총은 2014년의 총회에서공세적 공동결정제를 제안했다. 독일노총 회장인 호프만(Reiner Hoffmann)은 공동결정제를 파견노동자까지 확대할 것, 노동의 디지털화를 고려할 것, 아울러 노사 동 수의 공동결정제를 기존의 2,000명 노동자 기준에서 1,000명으로 확대할 것을 주장했다.

 

한편 독일에서 경제민주주의 원조인 사회민주당은 사실상 경제민주주의를 폐기했다. 현재는 독일의 정당 가운데 좌파당(Die Linke)이 경제민주주의 논의를 주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세계화의 물결 속에 금융자본이 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기업의 국제 경쟁이 더욱 심해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설득력이 없다. 100년 전의 자본주의 문제에 기초한 경제민주주의를 현재 상황에 적용하려는 자체가 무리다.

 

2. 미국, 일본, 이스라엘 재벌개혁과 경제 민주화

 

미국의 반독점법, 일본의 재벌해체와 이스라엘의 재벌개혁을 경제민주화의 사례로 거론하는 이들이 있다.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면 이들 국가의 재벌개혁은 우리나라와 많은 차이가 있다. 특히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경제민주주의 개념과 재벌개혁은 기본적으로 관련이 없다.

 

나프탈리는독점규제와 경제민주주의관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Naphtali,1928:30-34). 나프탈리는미국의 독점금지법과 독일의 카르텔 규제법인 경제력남용방지법(1923)은 모두 자유경쟁을 보호하고, 자유경쟁을 제한하는 협정과 조직을 금지하는 것이다. 때문에 이는 경제 민주화와 전혀 관계가 없다.”고 단언했다. 왜냐하면 이는 본질적으로 한 기업의 다른 기업에 대한 자유를 보호하는 것이지 독점적 기업의 이익에 반하는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자본의 집중화 속성으로 인해 인위적으로 자유경쟁을 유지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고 보았다. 나프탈리는 기업에 대한 국가 통제와 노동자가 거대 독점 기업 경영에 동등하게 참여하는 것이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 미국의 반()독점법

 

우리나라의 공정거래법에 해당하는 미국의 반독점법은 1890년에 제정된셔먼법1914년에 제정된클레이튼법(Clayton Act),연방거래위원회법(FTC Act)’이 있다.‘셔먼법(Sherman Act)철강, 철도 및 석유와 같은 특정 산업에서 소수의 기업이 카르텔(Kartell, 기업연합)을 형성하여 공정한 경쟁을 저해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입법화되었다. 기업의 가격담합이나 생산량 조절 등에 대한 공모를 위법으로 하였고독점을 하거나 독점을 위한 결합 또는 공모도 금지하였다. 당시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은 전 미국 정유 시장의 90%를 독점하여, 석유공급과 가격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1911년 루스벨트 대통령은 셔먼법을 통해 특정 업종의 독과점 방지를 목적으로 스탠더드 오일을 34개의 회사로 해체했다. 우리나라의 재벌은 특정 업종에서의 독점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사업에 계열사를 가진 구조이기 때문에 질적으로 다르다.

 

. 일본의 재벌해체

 

전후 일본을 점령한 미군정은 경제민주화 수단으로 농지개혁, 노동조합육성, 재벌해체를 단행했다. 재벌해체는 경제적 관점이 아니라 정치 군사적 관점에서 시행됐다. 2차대전 때 일본의 재벌기업은 군산복합체였기 때문에 일본의 군사력을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미국 군정이 전범 처벌 차원에서 해체한 것이다. 또한, 당시의 노동자는 전시의 노동 통제 아래 기본적인 보호도 받지 못하는 상태였다. 한편 일본의 재벌해체는 미국식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확립하기 위한 측면도 있었다. 따라서 노동자의 기업 경영참가 혹은 노동자 자주관리가 경제민주주의의 핵심인 유럽의 역사적 맥락과는 개념을 달리한다.


미쓰비시, 미쓰이, 야스다, 스미토모 등 4대 재벌은 연합군최고사령부(GHQ)의 재벌해체 조치로 토막토막 분리됐다. 하지만, 중공의 등장과 한국전쟁 발발로 미국의 대일본 재벌정책 기조가 변하였다. 1950년대 중반 이후 구 재벌계 기업의 합병과 재통합이 시작되어 일본의 재벌은 기업집단으로 재편되었다. 이후 일본에서 경제민주화에 관한 논의는 소멸했다.

 

한국에서 초창기 경제민주화를 주장한 일부 학자들이 일본의 경험을 가져와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결부시켰다. 일본의 재벌개혁을 한국 재벌개혁의 논거로 삼는 것은 맞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경제민주화 논의는 역사적 배경과 주어진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물질적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내수가 아닌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을 선택하여 세계에서 유례없는 경제성장을 이룩하였다. 정부는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기업에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였고, 양질의 인적자원 공급을 위한 교육환경을 개선하였으며, 기술을 개발하여 기업에 보급하였다. 이는 일부 기업에게 특혜로 작용한 측면이 있으나, 자원의 효율화 측면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오늘날 우리나라는 대기업 중심의 경제성장으로 세계에서 7번째로, 인구 5천만 명 이상이면서 3만달러 이상인 3050클럽에 가입하게 됐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환율과 물가 수준을 고려한 구매력평가(PPP)기준으로, 1인당 국내총생산(GDP)2017, 한국이 411달러, 일본은 4827달러로, 한국이 일본을 추월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는 임진왜란 이후 400년간 한 번도 국력으로 일본을 이겨보지 못한 대한민국이 처음으로 일본을 따라잡은 역사적 사건이다.


. 이스라엘의 집중 금지법

 

최근 경제민주화를 주장하는 이들이 거론하는 사례가 이스라엘의 복합기업(conglomerate) 해체이다. 네이버 댓글 조작 혐의로 구속된드루킹김모씨도 이스라엘식 재벌개혁의 신봉자였다. 이스라엘의 재벌개혁은 2011745만명의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시작되었다.

 

이스라엘은 다른 서구의 나라들에 비해 사회적 불평등이 심한 편이었고, 빈곤율도 높았다. OECD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가처분소득 기준 이스라엘의 지니계수는 0.376으로 칠레(0.501), 멕시코(0.466), 터키(0.411), 미국(0.380) 다음으로 소득 불평등이 심한 나라였다. 이스라엘의 상대적 빈곤율은 199513.8%에서 201020.9%로 급격히 증가하였고, 2010년은 OECD 국가 가운데 가장 높았다. 2010OECD 국가의 상대적 빈곤율 평균은 11.1%였고, 한국은 14.9%였다. 20091월에서 20111월 사이에 주거비가 40% 이상 상승했고, 생필품 가격도 임금 인상분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올랐다. 20117월 사회운동가이며 비디오 아티스트인 다프니 레프(Daphni Leef)라는 여성이 집에서 쫓겨나 길거리에 텐트를 치고 페이스북에 사정을 알리면서 시위가 시작되어, 전국적으로 번져나갔다.

 

시위 촉발 원인으로 이스라엘의 부패와 정경유착이 지적되었다. 이스라엘 경제는 최첨단 기술 분야와 일반소비재에서 자동차 수입까지 장악한 독점유통업체의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당시 이스라엘 10대 그룹은 전체 상장사 시가 총액의 41%, 6대 그룹의 매출액은 국내총생산의 25%를 각각 차지하였다. 이스라엘은 80년대 말 경제위기를 계기로 국영기업을 민영화하였다. 지주회사 아래 금융과 비금융 자회사를 동시에 소유할 수 있도록 허용해왔기 때문에, 이 과정에서 부패의 정경유착이 심화되었다. 민간기업들의 금융사 소유도 무제한 허용되었다.

 

시위 시작은 임대료의 안정과 생필품 가격의 인하였지만 시위과정에서 사회정의로 바뀌었다. 이스라엘은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트라텐부르크(Tratenburg) 위원회를 설치하여 대책을 발표하였다. 2013년 이스라엘 의회(Knesset)경쟁 촉진 및 집중 감소를 위한 법률이라는 집중금지법(Anti-Concentration Law)을 통과시켰다. 이 법을 통해 의회는 부패와 높은 생필품 가격의 원흉인 거대 복합기업을 해체하였다.

 

주요 조치로는 피라미드식 소유구조의 제한과 금산분리였다. 법에 따라 신규 피라미드식 지주회사는 2단계 구조만 허용되고, 기존의 기업집단은 4년 이내에 3단계의 구조로 축소하고 6년 이내에 2층의 피라미드 구조를 만들도록 했다. 또한, 기업은 자산이 400억 셰켈(12조원) 이상인 금융기관과 매출 규모가 60억 셰켈(18000억원) 이상의 비금융회사를 동시에 소유할 수 없게 했다.

 

이스라엘의 재벌개혁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규제 강도가 더 세다고 하기 어렵다. 이스라엘의 경우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면 10대 그룹 이하의 기업은 은행소유도 가능할 것이다. 한국의 대기업은 해외에서 벌어들이는 비중이 높은 글로벌 기업인데, 이스라엘의 대기업은 대부분의 매출을 자국에서 올리는 토종 기업이다. 이스라엘의 기업 가운데 글로벌 100대 기업은 하나도 없으며, 이스라엘은 제조업이 매우 취약하다.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의 경제모델이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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