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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영화『미나리』, 코메리칸의 인류 보편적인 희망 이야기] 통권184호
 
2021-04-26 17:2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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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통권184호 


박광무 한선재단 문화관광정책연구회장, 성균관대 초빙교수

1. 진정한 가치를 찾는 여정

 

윤여정의 조연은 영화에서나 영화 밖에서나 한결같이 별처럼 빛났다. 아니, 그는 장내는 물론이요 장외에서도 사실상 주연이었다. 영화의 구성과 대사를 이끌어감에서 그러했고 그동안 있어온 무수한 수상관련 인터뷰에서 재치와 유머와 알찬 내용이 그러하였다. 그 이면에는 55년이라는 결코 쉽게 흉내 내기 어려운 오랜 연기생활의 관록이 베여있다. 영화 미나리에서는 출연진 모두가 가족이다. 가족은 미 대륙에서는 특히 보편적으로 중시하는 어휘이다. 특히 할리우드의 영화인들은 가족의 가치를 매우 높게 평가한다고 한다.

 

감독 겸 각본을 쓴 정이삭은 인상 깊은 인터뷰에서 한국인 가족의 미국이민사회 정착과정을 담담하게 자신의 이야기로 엮어 나갔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도 삶의 모든 것을 담아냈다고 하였다. 특히 미국의 여류작가 윌라 캐더(Willa S. Cather)의 자전적인 1인칭 소설 나의 안토니아와 아프리카계 미국 시인 클로드 윌킨슨(Claude Wilkinson)의 많은 시를 읽으면서 영감을 얻었고 그 통찰을 영화의 장면과 구성에 담았다고 했다. 그들의 작품 속에서 정이삭은 자신의 일을 기억하기 시작하였고 많은 새로운 것을 보게 되었다고 고백했다. 이것은 예술적 통찰과 영감의 시작이 역사적 문화적 차원에서 통섭의 경지를 넘나든 결과임을 보여주는 증언이다.

 

이미 받은 영화상으로도 영화 미나리와 감독과 출연진은 그들의 이름을 세계에 알리는데 충분하였다. 스티븐 연과 한예리, 그리고 앨런 김, 노엘 케이트 조와 윌 패튼까지 빛나는 출연진이 한 가족처럼 따뜻하고 진실하며 눈부신 역할을 수행한 결과이다. 2020-2021시즌 세계 영화계의 최고 권위인 아카데미상의 6개 부문에 지명된 것은 그동안의 영화제와 영화심사의 긴 여정에서 볼 때 예견된 수순이라 하겠다. 지난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과는 닮은 듯 다른 차원에서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계를 또 한 번 뒤집어 놓은 역사적인 작품이다.

 

이하에서는 영화 미나리를 희망과 가치 차원에서 분석하고 영화를 통한 한국적인 이야기가 어떻게 미국과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닌 세계 주요국에서 보편적인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되었는지를 탐색해보기로 한다. 나아가 이 시대에 진정 공감할 수 있는 희망과 가치란 무엇인가를 문화의 관점에서 살펴본다.

 

2. 미지의 낯선 땅에 뿌리내리고자 하는 희망

 

한 가족의 아버지인 제이콥(스티브 연)은 병아리 감별사를 하다가 미국 남부내륙에 위치한 아칸소에서 자신의 농장을 개척하기 위하여 아내 모니카(한예리)와 아들 데이빗(앨런 김), 딸 앤(노엘 조)과 함께 바퀴달린 집인 이동식 컨테이너에 몸을 실었다. 아이들에게는 움직이는 집이 신기하였지만 아내 모니카는 기막힌 현실을 대하면서도 남편 제이콥을 믿고 따르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이면서 말없이 지지를 보낸다. 영화에서 모니카는 외유내강의 현실적인 존재로서 하루하루를 나아간다. 한예리는 스티브 연과 함께 영화의 전개를 떠받치는 든든한 기둥으로, 빛나는 주연의 역할을 잘 감당해냈다.

 

희망이라는 단어는 그들에게서 그냥 선물처럼 주어지는 게 결코 아니었다. 척박한 환경과 지루한 시간과의 끝없는 격렬한 투쟁으로 버티는 과정에서의 한 줄기 빛이었다. 그 와중에 극의 전개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할머니 순자(윤여정)가 등장한다. 암담하기만 한 황무지 개척에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한 순자는 손자녀 데이빗과 앤에게는 세대를 이어주고, 황무지 개척에 고갈되어가던 모니카에게는 새 힘을 불어넣어준 에너지원으로 활약한다. 그것은 윤여정의 관록과 저력이 뿜어내는 힘으로서 영화의 전개에 놀라운 전환점을 만들어나갔다. 치밀한 대본도 모든 출연진의 완벽한 앙상블이 없이는 결코 빛을 발할 수 없는 법인데, 미나리에서는 독립영화로 시작한 처음부터 모든 출연자들이 (윤여정의 유모어에 의하면) ‘어려운 여건상한솥밥을 지어먹으며 가족의 끈끈한 유대를 배가하면서 영화를 현실보다도 더 실감 있게 표현해나갔다.

 

윤여정의 빛나는 연기는 영화를 생기 있게 만들고 어머니 나라 한국에서 가져온 미나리 씨앗을 척박한 아칸소의 이곳저곳에 뿌리면서 새로운 생명의 움틈을 질기게 이어나갔다. 그것은 삶에 대한 짙은 애착 이었다! 실존의 상실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이민사의 영웅들은 그렇게 도전의 나날을 기록해 나갔다. 미나리, 그것은 작지 않은 기간 동안 피땀 흘려 가꾼 개척지의 살림살이가 모두 불타버리고 할머니 순자가 저세상 사람이 되어도 결코 앗아가지 못한 질긴 생명력의 상징이었다.

 

3. 생명의 가치를 존귀하게 여긴 스토리의 전개

 

생명은 바로 가치의 중심에 있었다. 살아남는 일 자체가 거룩하고 숭고함이었다. 할머니 순자는 미나리를 통하여 그것을 가르쳐주었다. 미국 이민의 역사는 전 세계로부터 이를 감행한 모든 이민자들에게 생명을 건 투신이었기에,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무한 도전의 발걸음이기에 보편적 가치로 공유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 미나리는 이러한 보편적인 생명의 가치를 메시지로 하였기에 강력한 공감을 형성하지 않았을까?

 

이어령은 그의 저서 생명은 자본이다(2013)에서 생명자본주의가 21세기 자본주의의 새로운 모델이 되어야 한다고 갈파하였다. 산업혁명의 산물인 산업자본주의를 넘어서 다음단계로서의 금융자본주의도, 공산주의체제에서의 붉은 자본주의도 아닌, 상생을 위한 생명의 자본주의로 경제이념이 정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지난 시즌 아카데미 상 네 개를 휩쓴 봉준호의 기생충이 자본주의가 지닌 모순과 암울한 계급적 대결구도를 보여주고 그 파멸적인 비극을 통하여 시대의 경종을 울린 계몽주의적 영화라면, 미나리는 이민으로 이루어지고 현재도 진행형인 미합중국의 건국이념을 가족의 존재와 생명의 가치를 통하여 잔잔하게 공감케 하는 힘을 지닌, 인류보편적인 감정과 감동을 자아낸 영화로 차별화되는 작품이라 하겠다.

 

주연들의 캐스팅은 이 작품을 성공시킨 결정적으로 중요한 전기가 되었다. 정이삭의 각본이 아무리 탁월하여도 이를 소화할 주연들의 빛나는 연기가 없었다면 감독의 말대로 다음 영화를 못 찍게 되는 상황으로 치달을 수도 있었다는 거다. 그만큼 가족의 가치와 생명을 이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살아가는 이치요 인류보편적인 가치로 열렬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힘이 되었다.

 

한 가족의 이야기는 지극히 특수하고 사소한 부분이다. 미나리는 그것이 영화라는 작품으로 완성되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인류적인 보편성을 획득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감독의 힘이요 각본의 치밀함이요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력의 정합이었다. 나아가 스텝들의 보이지 않는 뒷받침이 합체된 결과였다. 전문성을 갖춘 각기 다른 예술가들과 기술전문가들의 교집합이 시대의 걸작을 탄생시켰다. 나아가 이민자로서의 삶이 실제로 인생의 이력에 녹아있는 영화의 주요 구성원들이 연출하고 출연하였기에 이 같은 진실성과 사실감 넘치는 작품이 탄생될 수 있었다고 하겠다.

 

4. 시대적 공감과 보편적 가치를 위한 교훈

 

영화는 현실과 다르기도 하지만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조합으로도 나타난다. 예술작품이 역사적 사실과 때로 논쟁을 일으키고 그 결과 예술이 현실에 희생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영화 미나리는 영화가 현실보다 더 사실적인 내용으로 꾸며지면서도 모든 관객과 영화비평가와 전문가들에게 보편적인 공감을 불러일으켰다는 점에서 위대하다.

 

시대적인 흐름은 때로 인류적 가치에 배치되는 현실을 보여준다. 특히 미국사회에서 아시아계에 대한 차별적인 언어와 폭력이 난무하게 된 작금의 사건들의 한가운데에서 미나리가 이번 시즌 영화계의 최종 관문인 아카데미상에서 여우조연/ 작품/ 감독/ 남우주연/ 각본/ 음악 등 6개 부문에 지명되었다(nominated). 이 같은 기록은 지난해 봉준호의 기생충이 이룬 아카데미 6개 부문 상 후보로 지명된 것과 타이기록이기도 하다. 그리고 마침내 윤여정이 여우조연상 부문에서 오스카 트로피를 들어올렸다(2021.4.26.). 이러한 사실은 미국사회가 인종차별 문제로 오랜 열병을 앓으면서 또다시 영화 미나리를 통해 치유의 기회를 마련했음을 의미한다. 21세기 초연결시대와 포스트코로나 시대를 맞으면서 인류와 예술과 지성의 세계는 보편적인 생명, 사랑, 그리고 선한 개척과 도전의 정신을 존중하는 기대로 가득 차 있음을 본다. 영화 미나리가 그 중심에 있다는 사실과, 미국 이민사의 공감을 세계적 공감으로 승화시킨 한국인과 한국계 미국인의 합작으로 이루어 낸 사실에 박수를 보낸다.

 

이제 우리가 대한민국에서 무엇을 해야 하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를 영화 미나리는 작품을 통하여, 그 이후의 긴 세계적인 여러 영화제의 여정을 통하여 웅변으로 보여주어 왔다. 정이삭감독과 윤여정을 비롯한 모든 영화인들에게 마음으로부터 깊은 찬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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