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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이스라엘과 이탈리아의 ‘대주주 의결권 제한’은 사실인가?] 통권168호
 
2020-11-27 17:05:56
첨부 : 201127_brief.pdf  

Hansun Brief 통권168호 


최준선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 서 언

 

한국에서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주주의 의결권 제한 제도가 있습니다. 최대주주는 사외이사가 아닌 감사위원 선임에 있어 6촌 이내의 친척과 4촌 이내의 인척이 가진 모든 주식을 합하여 그 중 3%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를 합산 3%’룰이라고 합니다. 다른 대주주는 각자가 가진 3%씩만 의결권을 행사하여야 합니다. 이를 개별 3% 이라 합니다.

 

감사 선임에 있어 3%로 의결권을 제한하는 것은 1962120일에 공포되고, 196311일부터 시행된 한국 신상법에 처음 등장했습니다. 한국은 그 전까지도 상법이 없어서 일본 상법을 의용(依用)했습니다. 이때는 5.16 군사 혁명 직후이고, 1948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후에도 한국 법률 제정이 지지부진했는데, 혁명정부가 입법을 서둘러서 이때를 전후해 기본법들이 다수 제정되었습니다. 상법 제정에는 1961919일 군사정부의 국가재건최고회의 법제사법위원회는 당시 법제처 차장이었던 유민상을 위원장으로 하고, 상법학자 정희철(총칙상행위), 서돈각(회사), 박원선(보험), 손주찬(해상), 박영화(증권), 차낙훈, 조규대의 7인을 심의위원으로 하는 상법안심의소위원회를 구성했습니. 위원장을 제외하고 모두 상법 학자들로서 이분들은 한국 상법 제1세대 학자들입니다. 이분들이 상법안의 심의에 착수했는데, 회사법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누군가가 이사도 대주주가 선임하고 감사도 대주주가 선임하면 모두 한 통속이 되어 대주주가 부정행위를 하기 쉬우니, 감사를 뽑을 때는 대주주들은 의결권을 3%만 행사하게 하여야 한다는 지나가는 소리처럼 언급한 것이 발단이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다른 분들도 그것 참 신선하다는 아이디어라고 생각해서인지 크게 반대가 없어서 상법에 이런 희한한 규정이 도입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습니. 그로부터 60년이 지난 오늘날,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어야 할 시점에서는 도저히 맞지 않은 내용이라 하겠습니.

 

최근에 일부 시민단체가 대주주의 의결권이 0%로 제한되는 국가가 있는데, 이스라엘과 이탈리아가 그 예라고 주장했습니다. 필자는 우리나라의 경제성장의 모델이 될 수 없는 이들 나라를 연구할 필요가 크지 않다고 보지만, 사실(fact)*을 확인하고, 건전한 토론과 학문 탐구 차원에서 입장을 밝히고자 합니다.

 

* 이스라엘은 텔아비브 증권거래소(TASE) 상장회사가 총 447개사(2019. 6. 기준) 뿐으로 기술기업이 강하고 글로벌 거대기업(글로벌 100대 기업)은 없으며, 인구 9백만명 정도의 작은 나라입니다. 이탈리아도 증권거래소(Borsa Italiana)에 상장된 회사는 총 455개사(2020. 9. 기준) 뿐이고 글로벌 거대기업(글로벌 100대 기업)은 없으며(90%가 중소기업), 관광대국이긴 하나 제조업은 빈약한 나라입니다. 제조업 강국이고 상장회사 수가 2,235(2020. 9.말 기준)인 한국의 모델이 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한국은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 경제 대국과 경쟁해야만 더 큰 발전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이스라엘의 경우

 

1. 위 단체의 주장 요약

 

이스라엘 상장회사의 사외이사는 최초 선임될 때, 소수주주의 과반 찬성에 더해 전체 주주의 과반 찬성이 필요하며,

 

사외이사는 3년 임기를 3번 연달아 할 수 있고, 재선임 되는 경우에 소수주주의 과반 찬성이 있으면 대주주는 거부권이 없기 때문에, 대주주 의결권이 0%로 제한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2. 필자의 해석

 

필자는 201138일에 개정되어 2011514(일부 조항은 915) 시행된 이스라엘 회사법 영어 번역본을 전거(典據)로 해 말씀드립니다.

 

필자가 이 법률의 관계조항을 해석해 본 결과, 상장회사의 사외이사는 이사회가 추천한 이사들을 후보로 하여, 출석 주주의 과반수 찬성으로 선임하되, 지배주주와 이해관계 없는 주주의 과반수도 찬성해야 합니다(= 이중 과반수). 이때 각 주주의 의결권에는 아무런 제약이 없습니다.

 

사외이사의 임기는 3년이고 재선임은 2회 더 가능하지만, 회사는 정관 규정으로 1회로 한정할 수 있으며, 재선임 의결 방식은 다음과 같이 여러 경우가 있습니다. ,

 

1) 임기 종료된 사외이사가 회사나 주주에 의해 재선임 후보로 추천되지 않은 경우에는 새 사외이사를 최초 선임과 같이 이중 과반수에 따라 선임합니다. 따라서 주주의 의결권 제한은 없습니다.

 

2) 사외이사 임기 종료 후 회사가 그 사외이사를 재선임 후보로 추천한 경우에는 최초 선임과 같이 이중 과반수에 따라 의결합니다. 이때도 주주의 의결권에 제한은 없습니다.

 

3) 사외이사 임기 종료 후 “1% 이상 주주가 그 사외이사를 재선임 후보로 추천한 경우사외이사 본인이 자천(自薦)한 경우에는 지배주주와 이해관계 없는(has no affiliations) 주주들의 과반수이면서 전체 주식수의 2% 이상 찬성만으로 재선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오직 위 3)의 경우에만 대주주 및 출석 주주의 과반수 찬성이 없어도 사외이사가 재선임될 수 있는 조건이 됩니다. 그러나 이를 두고 사외이사의 연임시 무조건 대주주 의결권이 0%인 입법례인 것처럼 평가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외이사를 최초 선임할 때 이미 대주주의 의지가 반영된, 이사회 추천을 받았던 후보였고, 최초 이사 선임 총회에서 대주주의 의결권이 전혀 제한되지 않았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총회에 출석한 소수주주 과반과 전체 2% 이상 의결권의 찬성만으로 연임이 된다고 하더라도 진정한 의미에서 대주주의 의사가 전혀 도외시되고 그 의결권 행사는 0%이며, 소수주주만으로 사외이사가 선임되는 사례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이탈리아의 경우

 

1. 위 단체의 주장 요약

 

이탈리아의 경우 후보명부를 제안한 주주는 본인이 제안한 후보명부에만 투표할 수 있으므로 소수주주가 제안한 후보명부에 대주주가 투표하지 못하고,

 

소수주주가 제안한 명부에 포함된 후보 중 1인은 반드시 이사가 되므로 대주주의 의결권이 0%로 제한되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2. 필자의 해석

 

필자는 20201014일부터 시행되고 있는(In force from 14 October 2020) 현행 이탈리아 증권거래법(정확히는 금융통합법) 영어 번역본을 전거로 하여 말씀드립니다.

 

이탈리아 회사법이나 증권거래법의 특징은 강행규정이 많지 않고 기업의 자율성(self-regulation)이 강하게 인정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탈리아 증권거래법에는 최다 득표를 확보한 후보자 명부(slate, 이하slate로 기술)에서 이사회 구성원을 선임하되, 적어도 1명의 이사는 차순위를 확보한 slate에서 선임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 외에 이사 선임시의 투표 방식이나 의결권 제한과 관련된 규정은 존재하지 않아, 각 회사는 정관에서 구체적인 투표 방식을 결정해야 합니다.

 

이탈리아 주식회사가 이사를 선출하는 방법으로서 매우 특이한 것은 후보자 명부인 slate에 투표한다는 것입니다. 의결권 2.5% 이상을 보유한 모든 주주는 자유롭게 slate를 제안할 수 있고(주주제안), 2.5% 이상의 의결권을 확보한 펀드연합도 물론 slate 제출이 가능하며, 주주들은 각 후보자가 아니라 주주가 제출한 slate에만 투표할 수 있습니다.

 

Slate에 몇 명 이상의 후보를 적어 내야 하느냐에 관한 법규정은 없으므로 1명 이상이면 가능하나, 정관에는 보통 2명 이상을 기재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Slate에 기재할 이사의 자격에도 법률과 모범규준(Italian Stock Exchange - Code of Conduct)이 규정한 독립성 요건외에는 제한이 없어서 외국인, 여성 등이 임의로 기재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회사 정관은 일반적으로 “slate를 제출한 주주는 자신의 slate에만 투표를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고, 실무에서 대체로 그렇게 하고 있기는 하지만, 법률에는 그런 제한이 없습니다. Slate를 제출하지 않은 모든 주주는 다른 주주가 제출한 slate에 투표합니다. 이와 같이 slate를 제출한 주주는 그 slate, slate를 제출하지 않은 모든 주주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투표하는 것이 일반적이기는 하나, 타인이 제출한 slate에 투표할 수 없다는 법률 규정은 없습니다(no obligation to vote the presented slate). 다만, 주주는 하나의 slate에만 투표해야 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총회와 관련하여 slate상 최대주주는 투표 후에 비로소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주주 연합 등이 작성한 slate가 최다 득표를 확보하는 경우, 이 주주연합이 최대주주가 됩니다. 그런데 201512월 당시 이탈리아 증권위원회 위원장은 공개 연설을 통해 기관투자자들이 간섭은 하고 싶지만 회사를 경영하고 싶어 하지는 않기 때문에 slate에 적은 수의 이사만 제출해 다른 slate 보다 더 많은 표를 얻고도 더 적은 수의 이사만 선임하는 문제가 있다면서, “(이탈리아 방식은) 불투명한 투표절차로 비용을 심각하게 증대시키는 등 부작용이 크므로, 이사 선임을 이처럼 법률로 강제할 것이 아니라 다른 선진국처럼 개별 회사의 자율 규제에 맡기는 것이 적절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탈리아 주식회사 이사 선임의 난맥상을 보여주는 연설입니다.

 

결국 이탈리아는 이사 선임에서 대주주와 소액주주의 구별은 무의미하고 투표 결과 1순위 slate가 되었느냐 2순위 slate가 되었느냐 만이 의미가 있고, 1순위가 대부분의 이사를, 2순위는 1명의 이사를 선임한다는 것만이 진실입니다. 펀드 연합이 1순위가 되어 대부분의 이사를 선임할 수도 있습니다. Slate는 주총 25일 전까지 제출되어야 하는데 주주연합 세력들 간에 사전 서면 합의서가 필요 없고, 증권감독 당국에 신고도 필요 없기 때문에 투표가 끝날 때까지 결과 예측이 어려운 경우가 많고, 투표 시점에서 어느 slate1위를 차지할지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상황에서 대주주의 의결권 제한 개념이 성립할 수 있는지 의문이라 하겠습니다. 요컨대 이탈리아 증권거래법상 최대주주는 투표 후에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대주주 의결권 제한 개념은 성립이 어렵습니다.

 

물론 주주명부상 가장 많은 주식을 보유한 자는 반드시 있지만, 그는 명부상의 최대주주일 뿐, 누가 진정한 실력자인가는 주총 후에 드러납니다. 각자 자기 이름을 건 slate 경쟁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의결권이 제한된다는 관념은 없습니다. 위 시민단체의 논리라면 소수주주 연합에 이름을 올린 자들도 자신들의 slate에만 투표해야 하고, 최대주주가 될 것으로 추정되는 자의 slate에는 투표하지 못하므로 최대주주 slate에 대한 그들의 의결권은 0%라고 해야 하게 됩니다. 제가 국회의원 선거에서 다른 정당에 투표하지 않았다고 해서 저의 선거권은 0%였다고 주장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는 선택의 문제일 뿐입니다.

 

예외적인 경우로, 현실적으로 51% 이상의 지분을 보유한 주주가 있으면 그 자가 1순위 slate를 차지할 가능성이 큰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 빗대어 보면, 한국의 65개 대기업 그룹의 최대주주가 이 정도 지분을 갖고 있는 경우는 드물고, 결국 중견중소기업들이 타깃이 되어 곤란을 겪을 것입니다.

 

이탈리아 방식은 결과적으로 누가 최대주주가 될지 예측이 불가하고 다양한 책략이 가능하게 되어 있어 이탈리아 내부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데, 한국이 이를 본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 결 어

 

이번 논쟁은 다소 무익하기는 하나, 학문의 세계에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사실(fact)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fact)를 무시한 논쟁은 자칫 전문가를 자처한 분들의 선동으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번 논쟁을 통하여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서도 사실(fact)에 기초로 한 건전한 토론문화가 정착되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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