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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탈진실 사회 현상과 과제] 통권166호
 
2020-11-20 15:08:29
첨부 : 201120_brief.pdf  

Hansun Brief 통권166호 


이용환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총장

 오늘날을 진실과 거짓의 경계가 흐려진 탈진실(脫眞實, Post-truth)의 시대라고 한다. 객관적인 사실이나 진실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을 이용해 여론 형성을 조장하여 목적하는 바에 영향을 미치려는 현상이 자주 일어나기 때문이다. 탈진실의 사회에서는 공유된 객관적 기준보다 특정 집단의 기준을 적용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 기준을 전략적으로 사용하면서 사실보다는 자기들 이념에 맞추어 대중에게 감성적으로 호소하면서 접근한다. 대중은 이에 현혹된다. 그러다가 거짓으로 판명되거나 부작용이 나타나면 수정하는 것이 아니라 핑계를 대거나 다른 이유를 붙여서 책임을 회피한다. 작금의 정치행태가 이와 흡사하다.


  국회의 질의 답변에서도 탈진실 현상을 쉽게 발견한다. 성범죄사건으로 유발된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야당의원이 “피해자나 여성에 미칠 영향을 생각해봤느냐”라고 묻자, 여가부 장관은 “성인지 감수성에 대한 집단학습 기회”라고 답변했다. 8·15 광복절 집회 주동자는 코로나19 방역을 망치려는 “살인자”라는 청와대 비서실장의 발언도 같은 맥락이다. 개천절과 한글날 집회는 코로나19 감염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더니 확진자가 증가하는 시기인 11.14 민주노총의 민중대회는 허용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전·월세 대란과 집값 폭등 보도는 가짜뉴스라고 되받아친다. 모두 진실을 은폐하거나 호도한 발언들이다.


- 말의 중요성과 책임  
  정치는 말로 한다. 말은 서로의 생각과 의사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정치란 말을 통해 사람들 사이의 의견 차이나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해결하는 과정이다. 국가권력의 획득 유지나 사회질서를 바로잡는 것도 그 원초적 수단은 말이다. 법률도 말로 한 약속을 글자로 표시한 것이다. 법률에 힘이 생기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말에 힘이 실리려면 믿음이 생겨야 한다. 믿음은 단기간에 형성되지 않는다. 긴 기간 동안 언행일치가 반복되면서 형성된다. 믿음은 말을 한 사람이 그 말에 대해 책임질 때 생겨난다. 말에 믿음이 없으면 그 말은 효력이 없다. 말에 믿음이 없다는 것은 말을 하고 실행하지 않는 허언을 하거나 말과 다른 행동을 하는 거짓말의 경우이다. 거짓말은 타인과 조직에 해를 주기도 하고, 거짓이 드러나면 인간관계와 평판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거짓말은 대부분 본인이나 본인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해서 한다. 거짓으로 이익을 볼 수 있지만 그 거짓은 오래가지 못한다. 곧 드러나게 되어 있다.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믿음이 생겨날 리 없다. 믿음이 없는 사람과는 약속을 하려 하지 않는다. 이렇듯 한 번 믿음을 잃으면 회복하기 어렵다. 종국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은 사회적 외톨이가 된다. 거짓의 사회에서는 포용, 배려, 협동의 공동체 정신이 솟아나기 힘들다. 때문에 사회 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요즘 세태가 그러하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명언이나 “평생을 행복하게 지내려면 정직하라‘는 영국 속담은 모두 정직의 중요성을 설파하고 있다. 정직이 이렇게 중요한 덕목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거짓에 관대한 면이 있다. 특히 아이들의 거짓말에 대해서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감싸기도 한다. 우리가 거짓말에 대해 관대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서양은 거짓말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모세의 십계명에서도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라고 한다. 서양은 기본적으로 계약을 중시하는 사회이다. 계약은 서로의 약속이다. 이 약속을 깨면 사회질서가 깨진다. 그래서 계약은 지켜야 하는 것이다. 정직에 대한 엄격함은 바로 이 계약과 연계되어 발전되어 왔다.


  정직과 거짓의 시작은 말이다. 말이 행동으로 이어지면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고 이것이 반복되면서 믿음이 생긴다. 모든 제도, 규범, 인간관계가 바로 이 믿음 즉 신뢰에 기초한다. 오늘날 제도, 규범, 네트워크는 모두 믿음에서 형성된 것이다. 시장기능도 바로 이 신뢰에서 작동한다. 건강한 사회는 염치를 아는 사람들이 많은 사회이다. 정직한 사람들이 많고 이들이 사회를 이끌어 갈 때 사회적 신뢰가 형성된다.


- 신뢰 사회와 거짓이 춤추는 사회
  우리가 말하는 사회적 자본형성은 제도, 규범, 투명성, 정직성, 준법의식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형성되지만 그중에서도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는 상호 믿음에서 생겨난다. 사회적 신뢰가 높은 사회는 포용, 배려, 협동의 사회적 자본이 축적된 사회이며 건강한 사회이다.


  반면 거짓이 춤추는 사회는 염치가 없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사회이다. 믿음이 사라지고 서로가 의심하는 불안하고 불편한 사회이다. 끼리끼리 모이고 대립하며 갈등한다. 믿음이 없는 사회에서는 개인의 발전도 사회발전도 국가발전도 기대할 수 없다. 시장기능도 작동하지 않는다. 믿음 없이는 거래가 이루어질 수 없기 때문이다. 신뢰가 없으면 사람이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선진국이란 경제적, 정치적 발전과 함께 특히 사회부문에서 성숙한 국가이다. 문화지체이론(cultural lag theory, 文化遲滯理論)에 의하면 물질적인 것이 먼저 발전하고 비물질적인 부문은 그 뒤를 따른다. 사회문화적 발전이 가장 늦는 이유이다. 사회적 자본 형성에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이유도 사회적 성숙에 시간이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반복되고 축적되는 과정에서 형성된다. 사회문화적 발전과 성숙이 이루어져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


  선진국은 성숙한 사회이다. 이는 시민 개개인의 생각과 행동에서 몸에 밴 교양과 예의가 묻어나는 사회이다. 정직성, 도덕성, 투명성, 공정성과 함께 배려, 포용, 협력의 공동체 정신이 자연스럽게 시민 행동으로 표출되는 사회이다. 이런 시민적 덕성은 먹고살기에 걱정 없는 경제적 요인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시민 개개인의 자존감과 행복감 그리고 전통과 역사에 대한 자긍심에서 우러나온다. 자긍심은 올바른 역사교육과 전통의 존중 그리고 나라사랑의 애국심에서 우러나온다. 현재 우리나라와 같이 자국의 역사를 폄하하거나 자학하는 경우에는 개인의 자긍심은 물론 애국심이 생겨나기 힘들다. 

 

- 선진화 과제는 탈진실 극복 
 우리도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벗어내면 선진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반대로 가고 있다. 탈진실 사회로의 조짐을 보이면서 거짓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이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려면 거짓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정직하며 투명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경제는 이미 선진국 수준에 진입했고 변방에 머물던 문화도 이제는 세계 중심으로 진입하고 있다. 문화 중심국으로 가기에는 아직 초보단계이지만 이미 그 방향으로 다가가고 있다. BTS가 빌보드에서 1, 2위를 하고 우리 영화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상을 비롯해서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최우수상을 받는 등 한국의 문화예술이 세계에서 인정받기 시작한 것이 그 사례이다. 아직 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제일 늦을 것으로 예상됐던 문화가 정치보다 한발 앞서 발전하고 있다.


  반면 정치는 후진하고 있다. 그것도 퇴행적이다. 오늘날의 갈등?대립과 혼란 상황도 그 원인은 정치다. 위정자들이 자기들이 말한 것을 지키지 않은 데다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비롯한 갖은 수단을 동원하기 때문이다. 정치는 타협과 양보인데 거대 여당은 정치의 기본을 저버리고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빌미로 힘의 정치를 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한 말을 바꾸거나 잊어버린 듯 다른 말을 한다. 라임, 옵티머스 사모펀드 등 권력 비리 의혹이나 월성 1호기 조기 폐쇄 근거의 하나인 경제성 평가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려는 검찰과 감사원을 압박하는 행태 역시 힘의 정치행위이다. 월성1호기는 여당이 주도하여 국회가 조기 폐쇄 결정의 타당성 점검을 감사원에 의뢰(2019.1) 한 것이다. 감사결과 경제성 왜곡이 밝혀졌다. 특히 감사 과정에서 피감기관인 산업부 공무원들이 444개의 파일을 삭제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런데도 여당 정치인과 법무부 장관이 감사원과 수사를 하고 있는 검찰을 압박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는 행위이다.


  신뢰를 저버린 행위는 이것만이 아니다. 심지어 당 소속 공직자의 과실에 의해 선거를 하게 될 경우에는 재?보권선거 후보를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96조 2항)까지 바꾸어 내년 4월의 서울시장과 부산시장후보를 내려하고 있다. 당헌 개정 근거를 위해 당원투표를 했지만 투표율이 26%에 그치자 의견수렴용이라고 말을 바꾸고 중앙위 의결로 당헌을 바꿨다. 탈진실의 전형적 사례이다. 법무부 장관 역시 여당의 행태와 비교하여 더하면 더했지 뒤지지 않는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국회 국감장에서 “27번 거짓말”지적에, “27번 윽박질렀죠”라고 대응했다. 추장관은 진실을 캐려는 검찰에 인사권, 수사지휘권, 감찰권을 동원해 검찰의 수사를 흔들고 있다. 진실을 밝혀 정의를 실현해야 할 법무부 장관이 오히려 진실을 덮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사는 이유이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먼저 정치가 사회적 신뢰를 얻는데 앞장 서야 한다. 거짓의 정치, 탈진실의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


 선진화된 한국의 모습은 정직?투명하며 공정하고 안전한 사회적 자본이 축적된 사회이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공화주의에 바탕 한 책임정치’와 중산층이 두텁고 꿈과 희망을 불러일으키는 살맛 나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소비적 복지가 아니라 생산적 복지. 환경과 자연을 보전하고 예의와 염치를 아는 문화국가가 이루어질 때, 대한민국은 선진국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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