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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기업규제 3법과 보수정당의 정체성] 통권158호
 
2020-09-24 15:2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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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un Brief 통권158호 


이용환 한반도선진화재단 사무총장



경제민주화의 망령이 되살아나고 있다. ‘경제민주화의 원조인 독일에서조차 낡은 유산으로 치부되고 있는데도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힘을 얻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시작은 1987년 개헌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헌법에 경제의 민주화(헌법1192)용어가 이 때 들어갔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오늘날과 같은 규제논리로 작동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경제민주화에 대한 개념이 분명하지 못한데 기인한다.

 

1. 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김상철1)은 경제민주화 개념이 영어권과 독일이 다르다고 진단한다. “영어권 국가에서 경제민주주의는 기업경영자 혹은 기업의 주주에서 근로자, 소비자, 공급 업체, 이웃과 광범위한 공공을 포함한 더 많은 이해관계자 그룹으로 의사 결정권을 이동시킬 것을 제안하는 사회경제적 철학으로 정의된다(위키 영어판).” 영어권의 경제민주화는 주주중심경영에서 이해관계자 중심경영으로의 전환이다. 반면 독일에서 경제민주주의는 공동결정제와 경제의 질서정책에 근로자의 참여와 그 조직, 혹은 민주적으로 정당화하는 경제의 형성 및 조정을 프로그램화하는 사회 설계를 말한다(위키 독어판).” 우리가 모방한 것으로 알려진 독일의 경제민주화는 현재 거의 사문화된 상태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널리 회자되고 있다.

 

1987년 헌법 개정 이후 경제민주화전개과정을 보면 시작은 1990년대부터이다. 이 당시에는 민간주도 경제운영, 노동권 강화, 경제력 집중 해소 등의 용어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경제자유화와 독과점 및 재벌 규제가 혼용되었다, 이후 점차 경제자유화내용은 사라지고 재벌개혁과 중소기업 보호, 복지국가의 확대 등으로 논의의 중점이 이동했다. 그러다가 2011년을 전후하여 동반성장론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등장했다. ‘동반성장론이 새로운 성장의 동력으로 주창되면서 재벌개혁의 강력한 명분을 제공했다. 2012년 대선을 계기로 박근혜 후보가 핵심 공약으로 경제민주화를 내세우면서 쟁점이 되었다. 2017년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일자리 경제, 공정경제를 내세우면서 경제민주화를 소득 불평등 해소와 일자리 창출의 패러다임으로 확장했다.

 

팬데믹 상황에서 경제민주화가 왜 재등장 한 것일까? 코로나19가 유발한 경제난을 극복하기 위하여 기업인을 비롯한 경제주체들이 모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을 규제하겠다는 발상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이 경제의 중요성을 간과한 것일까? 아닐 것이다. 기본적으로 적지 않은 정치인들이 1980년대의 반기업적 사고를 현재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세상과 제4차 산업혁명으로 모든 것이 투명화된 이 시대에도 반기업적 사고는 바뀌지 않았다. 겉으로는 경제 활력을 말하면서도 실제 행동은 기업규제 강화에 몰입하고 있는 이유이다.

 

2. 기업을 규제할 때인가?

정책은 시대상황이 반영되어야 그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경제가 불황인 상황에서는 기업을 옥죄기 보다는 기업에게 활력을 불어넣는 정책이 바람직하다. 기업규제가 필요하더라도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고 시장이 제대로 작동될 때 하는 것이 정상이다. 환자가 기진맥진한 상황에서는 의사도 기력을 회복시키는 데 진력한다. 의사는 환자가 기력을 회복한 후에 질병치료를 한다. 기업규제도 마찬가지 이치로 접근해야 한다. 현재 세계는 불황의 터널에 있다. 팬데믹이 유발한 경제공황이다. 각국은 공히 자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기업환경 개선과 기업가 정신고양에 진력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만 기업규제 강화로 세계의 흐름과 역행하고 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여당은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의 기업규제3법을 통과시키려 하고 있다. 법안들에는 기업경영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내용들이 담겨 있다. 상법개정안에는 다중대표소송제도 신설, 감사위원 1명 분리 선임, 3% 의결권 제한이 담겨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에는 지주회사 지분율 규제 강화, 사익편취 규제 대상 확대, 전속고발권 폐지 등이 있다. 이중에서 가장 문제되는 내용은 다중대표소송제와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에 대한 감사위원 1명 이상 분리선임이다. 이들 두 조항은 기업 경영에 대한 무차별적 소송과 국내 기업들에 대한 투기자본의 공격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의 주주가 1%의 지분만으로도 자회사의 이사에 대해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자회사는 출자도 하지 않은 모회사의 주주 때문에 소송에 휘말릴 수 있다. 상법의 기본원칙은 법인격 독립의 원칙이다. 이 원칙에 따르면 자회사 문제는 자회사 주주가 해결하도록 해야 한다. 감사위원 1명 이상 분리선임안은 선출 단계부터 감사위원 1명 이상을 일반 이사들과 분리선임하여 지배주주의 의결권을 지배주주나 대표이사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취지이다. 그러나 대주주의 영향력은 3명 이상으로 구성되는 감사위원회에서 지분 행사 3% 제한 규정에 걸려 이미 차단돼 있다.

 

상법개정이 통과될 경우에는 시총 규모가 작은 건실한 중견기업이나 코스닥 기업이 경영권 위협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될 것이다. 개정안에서는 상장사에 대해서도 비상장사처럼 1~3%의 지분만 있으면 보유 기간에 상관없이 소수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주식을 매입하고 주주 명의가 바뀌는 사흘 뒤면 경영권 공격이 가능하다. 헤지펀드 등 외국투기자본은 규모가 작은 알짜배기를 노릴 것이다. 상법은 외국투기자본에 문만 열어주지 말고 이에 대응할 수 있는 경영권 방어수단도 갖추는 균형 있는 법이 되어야 한다.

 

국회는 이번 기업규제 3법이 누구를 위한 법률 개정인지를 심사숙고해서 처리해야 한다. 오늘날 기업의 경쟁력은 국가의 경쟁력이다. 따라서 기업규제 3법이 경제민주화명분으로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옥죄이는 악법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제는 법률의 제?개정도 글로벌 기준(global standard)에 따라야 한다. 외국에 존재하지도 않는 법조문을 도입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 기업의 국제경제력을 떨어뜨리는 자해행위다. 따라서 기업규제 3의 개정 기준은 글로벌 기준을 잣대로 삼아 도입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기업의 국제경쟁력의 문제는 결코 정쟁의 대상이 아니라 국익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3. 경제민주화가 아니라 경제자유화로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시장과 기업에 대해 국가의 자의적 통제가 큰 국가이다. 때문에 기업은 권력의 눈치를 보게 된다. 평소에도 기업인들은 할 말이 있어도 피해를 당할까 자제한다. 그것이 현실이다. 정치인과 관료의 말 한마디가 기업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규제 3은 기업을 더욱 옥죄고, 이는 국가권력에 더욱 예속시키는 길로 나가게 될 것이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업의 창의적이고 도전적인 자세가 더욱 요구된다. 팬데믹의 파고를 넘기 위해서도 기업의 유연한 경영이 긴요하다. 그러나 기업규제 3법은 시대가 기업에게 요구하는 길을 막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더 큰 문제는 야당의 자세이다. 소위 보수를 자처하는 야당의 일부가 보수와는 결이 다른 정부여당의 기업규제 3법에 동조하고 있다. 차제에 야당은 자기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보수는 정부의 역할보다 시장을 중시한다. 보수는 역사와 전통을 중시하고 유연과 실용에 중점을 두고 책임을 강조한다. 그래서 급격한 변화보다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한다. 기업에 대한 규제나 시장에 개입하는 경우에도 그 명분이 분명해야 하고 그러면서도 현실에 부응한 유연한 보수주의의 원칙을 지켜 나간다.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이 맞물리는 상황에서 경제회복은 당면한 문제이다. 정치인이라면 무엇이 시대의 시급한 과제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경제가 무너지고 민생이 핍박해진 상황에서는 경제를 살리는 것이 국민들에게는 가장 시급하다. 그것이 생활정치이다. 지금은 기업을 흔드는 시점이 아니라 기업의 사기를 돋우어 경제난 극복에 모두 합심할 때이다. 혼돈시대의 보수 정당이라면 경제민주화보다 경제자유화를 우선해야 한다.


____________

1) 경제민주화의 개념과 한국에서의 발전과정은 김상철의 글을 차용하여 정리함.(출처: 김상철. 경제민주화에서 경제자유화로. 한반도선진화재단 공동체자유주의 세미나.2019.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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