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는 형법(제355조 제2항, 제356조 제2항)과 상법(제622조, 제623조) 외에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가법·제3조),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제5조), 신탁법(제140조, 제141조), 보험업법(제197조) 등 여러 특별법에 숨어 있다.
국회가 이들 모든 배임죄를 소탕하겠다는 것은 아니다. 이 중 형법상 배임죄 폐지만을 논의한다는데, 찬성하기 어렵다. 법 개정의 취지가 기업가정신을 고취하기 위한 것이라면 특경가법 제3조, 상법 제622조와 제623조의 폐지 및 경영판단원칙 도입을 고려하고, 형법상 배임죄는 유지해야 한다.
우선 특경가법은 1980년대 장모씨 어음사기 사건을 계기로 국회가 급조한 특별법인데, 허점이 많은 법률이다. 법에는 재산상 이익의 가액이 50억원 이상인 때에는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5억원 이상 50억원 미만인 때에는 3년 이상의 유기징역으로 가중처벌하도록 돼 있다. 입법 후 45년이 지난 오늘, 우리 경제 규모로 볼 때 5억원 정도로 기업인을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4억9900만원이면 가중처벌을 받지 않는데, 100만원이 추가돼 5억원이면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자유형을 최저 3년형에 처하는 것은 도무지 타당성이 없다. 특경가법의 배임죄 폐지는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상법상 배임죄 역시 폐지해도 문제없다. 기업 임원 등의 배임 행위에 검찰이 상법 배임죄 규정이 아니라 형법상 배임죄 규정 위반으로 기소해온 잘못된 관행 때문에 상법 배임죄 규정이 사실상 사문화됐기 때문이다. 이런 관행은 검찰이 기업인을 ‘가중처벌’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특경가법 제3조를 보면 형법 제355조 및 제356조 위반에 대해서는 가중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상법 제622조와 제623조 위반에 대한 가중처벌 규정은 없다. 따라서 상법을 적용하면 기업인 가중처벌이 불가능하다. 이런 관행은 특별형법인 상법상 배임죄 규정보다 일반 형법상 배임죄 규정을 우선 적용함으로써 ‘특별법우선적용원칙’ 위반이다. 동시에 피고인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법률을 적용해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정신에 반하는 자의적인 법 적용으로, 검찰의 사법권 남용에 해당한다.
일반 형법상 배임죄는 유지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재 배임죄는 상당히 효용성이 있다. 재산을 약탈당한 피해자는 범죄자를 배임 혐의로 고소·고발해 공권력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부동산 매도 계약 후 매도인이 중도금을 받은 상태에서 다시 타인에게 매도(2중매도)하면 배임죄로 처벌된다. 최근 아파트 등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면서 2중매매 사건 문의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계금을 모집한 후 도주한 계주도 배임죄로 처벌된다. 2024년 금융권 배임 사고도 17건 발생했다.
배임죄가 없어지면 재산상 피해는 개인적 민사 문제로 처리된다. 2중매매 피해자는 계약금 및 중도금 반환청구권(채권)을, 계원은 계금반환청구권(채권)을 행사해 구제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채권자 개인이 도주한 채무자를 어떻게 찾을 것이며, 돈도 법률 지식도 없는 서민이 변호사를 선임해 해결하기는 버겁지 않겠나. 특히 고령자나 사회적 약자는 피해를 보고도 마땅한 대응 방법조차 찾지 못해 더 큰 고통을 겪을 수 있다. 이는 국가가 지금껏 국민에게 베풀어온 중요한 사법 서비스를 폐지해 서민 피해자를 범죄에 방치하는 결과가 된다.
최근 검찰 보완수사권 박탈까지 예고돼 정부의 형사정책에 대한 국민 불안이 가중되고 있다. 형법의 배임죄 폐지는 반드시 재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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