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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빛바랜 무역의 날과 상법 개악 먹구름
 
2024-12-06 17:33:02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제 12월 5일은 제61주년 ‘무역의 날’(수출의 날)이었다. 최근 수출은 14개월 연속 증가세를 이어왔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무역협회가 주관한 올해 기념식에서는 597명의 무역 유공자와 1545개 기업이 포상을 받았지만, 3일 밤에 터진 ‘계엄령 사태’에 묻혀 버렸다.

사람밖에 없는 한국에서 수출을 빼곤 경제를 논할 수 없다. 그런데 외국 투자은행(IB)들이 최근 우리 경제 견인의 주축이었던 수출 증가세가 구조적 요인에 휘청이면서, 오는 연말부터는 이미 정점을 지난다는 ‘피크 아웃’(peak out·정점을 찍고 하락) 우려를 거론하고 있다. 내년 성장률도 1%대 추락 위기에 빠졌다.

이런 경제 환경을 아랑곳 않는 정치권은 상법 및 자본시장법을 대폭 개정해야 한다면서 30개가 넘는 법률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대부분 야당 의원들이 제출한 법안인데, 내용은 이사의 충실의무 확대, 독립이사 제도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임 확대, 집중투표제 의무화,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공시 의무화, 의무공개매수 제도 도입 등 규제 강화 법안 일색이다.

개정 법안들 가운데 가장 황당한 것은,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총주주까지 확대’한다든지, 이사에게 ‘모든 주주를 공정하게 또는 공평하게 보호’해야 할 ‘공평·공정의무’를 부여한다는 것이다. 기업 합병과 분할 등 리밸런싱(구조조정) 과정에서 회사의 이익과 주주의 이익이 불일치하는 경우는 흔히 있다. 이때 이사가 모든 주주의 이익을 합치시킨다는 것은 이론적·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주주의 구성도 지분을 팔 수 없는 지배주주로부터 초단타족과 헤지펀드 등 다양하다. 그런데 주주총회 결의를 집행할 책임만 있는 이사가 무슨 수로 모든 주주의 이익을 다 만족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이런 법안의 목적은, 일반주주들이 대주주 편에서 일한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수 있게 해 달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소를 제기하면 이사는 자기 돈으로 소송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회사가 비용을 부담할 수는 없는 것은, 이사 개인에 대한 소송이기 때문이다. 요즘 소송은 기본적으로 3∼5년이 걸린다. 수년간의 소송으로 심신은 피폐해지고 소송으로 큰 비용이 들어간다. 살고 있는 집이 압류돼 가족들은 불안에 떨게 된다. 설령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받는다 하더라도 거액의 소송비용을 날리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가 기업 이사(理事)를 하겠다고 나서겠으며, 어느 이사가 기업의 미래를 위해 발 벗고 뛰겠는가.

그런데 이사를 상대로 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지금도 그 청구권의 소멸시효 기간인 10년 내에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일례로 10년 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의 합병 사건에서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가 완성되기 직전인 지난 9월 13일 국민연금은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당시 삼성물산의 이사들을 상대로 소를 제기했다. 당시 삼성물산의 이사들과 그 가족들은 지금 매우 불안할 것이다. 다만, 필자의 소견으로 이들에게 작은 위안을 보낸다면, 손해배상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주주총회 결의를 집행하는 회사의 충실한 대리인으로서 활동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처럼 지금도 얼마든지 소송할 수 있다. 리밸런싱 과정에서 일반주주에 대한 피해 구제는 자본시장법 관할 사항이다. 이치에 맞지도 않게 상법을 개정하는 대신 자본시장법을 정밀하게 손질하는 것이 일반주주에게도 이익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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