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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노동개혁 고삐 죄는 尹정부 빅딜보다 '스몰딜'로 돌파를
 
2022-12-29 09:16:20
◆ 조준모 성균관대학교 경제학 교수의 칼럼입니다.


노동개혁 성공하려면

최근 윤석열 정부는 노동개혁을 최우선 개혁과제로 내세웠다. 과거 정부에서 시도한 노동개혁은 미래를 대비하는 것이었지만, 현 정부의 노동개혁은 국가와 국민의 생존을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절체절명의 과제이다. 노동개혁의 주된 목적은 '이중 노동시장 구조개혁과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 할 수 있다. 그간 대기업 부문은 안정적인 내부 노동시장을 발전시켜 왔으며, 중소기업들은 원·하청의 생산 사슬을 타고 부가가치 분배가 줄어들면서 근로조건 격차가 심화돼 왔다. 산업4.0의 정보기술(IT) 확대와 코로나 창궐은 이러한 이중구조의 부작용을 확대 재생산했다. 이중구조는 대기업 노동시장에서 청년들의 대기 실업과 중소기업 노동시장에서 인력난을 유발하여 국가 인력의 유휴화와 산업경쟁력 약화를 동시에 유발해 왔다.

노동개혁이 성공하기 위한 조건으로 사회적 절박성, 노사관계 신뢰, 정치권의 리더십 등 3요소를 꼽을 수 있다. 세계적인 불황이 올해에 이어 내년까지 지속될 것이고 취업자 예상 증가폭이 10만명으로 올해 취업자 증가폭 81만명보다 90% 급감하는 고용 한파가 예상돼 기득권 노동시장 불공정성을 개혁해야 한다는 청년들의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그러나 노사관계의 신뢰와 정치권의 리더십은 바닥권으로 노동개혁을 실패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노사관계에 있어 정치, 투쟁과 불신이 여전히 팽배해 있고 정치권도 사회적 타협의 결과를 조정하고 건강한 입법을 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진영 이데올로기에 집착하고 있는 분열적 정치는 노동개혁을 어렵게 한다.

그나마 어려운 요건들을 순치(順治)시키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리더십을 보완해야 한다. 노동학자들이 머리를 맞댄 미래노동연구회에서 노동개혁의 초기안을 제시한 것은 전문가들이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미래노동연구회에서 '노사정이 참여해 왜 사회적 대화를 안 했느냐'식의 비판은 부적절하다. 노사정과 전문가가 동시에 참여했던 역대 정부의 사회적 대화에서는 전문가들이 노사 일방의 이데올로기 시녀 역할을 하거나 초점 없이 중구난방식 논의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번에는 이전과 달리 전문성, 독립성을 제고하기 위해 전문가 논의체를 외부화했고 논의 결과를 도출해 이를 토대로 2단계 사회적 대화를 진행하면 된다.


화물연대 운송 거부 사태가 법과 원칙의 틀 안에서 수습되면서 바로 노동개혁 입법을 시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져서는 안 된다. 이 경우 여소야대의 정치구조상 최종 입법 성과를 내기는 어렵다. 지금은 숨 고르기를 하고 차분히 인내심을 가지고 사회적 대화에 임해야 한다. 설사 사회적 대화를 한다고 해도 노사정이 합의에 이를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적 대화의 성과를 노사정 합의에만 매달릴 필요는 없다. 충분히 협의해 대다수 국민이 공감할 수 있도록 개별 과제들에 대한 논리들을 정리하고 '왜 노동개혁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들의 이해를 적극적으로 구해야 한다. 한편 세부 전략으로 노사 양측에 의한 지연 전술을 막기 위해 시간을 정해 놓고 논의해야 하는 일몰제로 논의의 책임성을 제고할 수 있다. 노동조합 가입률이 10%대인 현실에서 90% 미조직 취업자들의 목소리도 충분히 경청해야 한다. 과거 경험에서처럼, 무리한 합의를 위해 추상적인 합의안을 만들어 내거나, 특정 집단에 혈세 퍼주기식 합의를 해서도 곤란하다.

미래노동연구회가 제시한 노동개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근로시간제도는 내년 상반기까지 먼저 사회적 대화를 마치고 국회 입법을 시도할 수 있다. 임금체계와 그 밖의 주제들은 시간이 걸리는 주제이니 사회적 대화를 지속적으로 진행하면 될 것이다. 모든 과제를 패키지로 한 빅딜로 입법을 시도하기보다는 근로시간, 임금체계와 기타 사항 등 단계별로 순서를 밟아가길 바란다. 박근혜 정부 당시 사회적 대화에서 일반해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파견법 등 너무 무거운 주제들을 일괄 타결하려다가 행마가 무거워졌던 측면도 있었다.

먼저 근로시간제도의 개혁 방향은 경직적인 규제 틀에서 자율 선택폭을 확대하고, 개인의 자기결정권을 확대해야 한다. 근로시간 단축은 획일적인 '우리 모두 저녁이 있는 삶'이 아니라 '내가 선택하는 근로시간' '내가 선택하는 여가시간'으로 시간 활용의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그래야 산업4.0 시대에 걸맞게 경영진은 작업 방식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근로자들 입장에서 워킹맘, 여성 근로자의 경력 단절 방지 및 저출산·고령화 대응을 위한 근로시간 단축 청구권, 부성휴가의 획기적 확대 등도 비로소 가능해진다. 지방 근무 청년들도 근로시간 선택폭을 확대해 거주, 문화 향유, 결혼 준비 등에 차질이 없도록 개선해야 한다. 연차휴가 이용의 근로자 권리를 지금보다는 더 강화해 가야 한다. 주로 연구개발직에만 사용되는 선택적 근로시간제도가 다양한 직종에서 활용될 수 있도록 허용 직종을 확대하고 절차를 간소화해야 하며, 파트타임 정규직 일자리도 확대해 가야 한다. '건강권은 국가가, 노동 총량은 집단적 자치로, 근로시간의 선택은 개인이'라는 모토로 개별 근로자의 시간주권이 존중받도록 근로시간제도의 획일주의 문화를 개혁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정부도 국민에게 근로시간제도 개선의 의미를 바르게 홍보할 필요가 있다. 과거 정부에서 만들어진 '주 52시간 노동상한제 파괴하기'가 아니라 월 단위 연장근로의 한도를 주 평균 12시간으로 함으로써 '주 52시간 상한제' 틀을 월 단위로 유연하게 적용하자는 것이다. 더 나아가 단위기간을 분기, 반기 혹은 연으로 조정하면서 필요에 따라 '내가 유연하게 설계하는 근로시간제도'를 구축하는 것이라고 국민에게 이해를 구한다면 공감대는 훨씬 더 넓어질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현재의 미래노동연구회의 안을 두고 '도로 69시간의 장시간 근로로 회귀하기'라고 주장하는 것은 왜곡된 것이다. 장시간 노동 다음에 이어지는 단시간 노동, 그리고 현행법상 개인 선택이 존중돼야 하는 상황에서 단위기간 내내 69시간대로 돌아간다는 식의 주장은 선동이다. 일부 사업장에서 개인 선택권이 침해되는 탈법과 불법 가능성 때문에 경직된 법을 그대로 두어야 된다는 식의 반(反)개혁적 발상은 곤란하다. 이보다는 차라리 법 일탈을 막기 위해 근로감독을 더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할 것이다.

한편 임금체계 결정에 있어서도 통상임금, 주휴수당 등과 같은 법적 규제가 과도하기 때문에 임금제도의 사법화 경향이 심해졌다. 법적 규제를 단순화 및 최소화하고 노사자율로 경제환경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임금체계를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간 임금체계의 경직성을 유발해 왔던 호봉제는 장기근속 근로자들을 희망퇴직, 명예퇴직으로 내몰아서 근로자에게도 장기적으로는 독(毒)이 될 수 있음에도 노사 모두 근시안적으로 안주해 온 측면이 있다. 대기업-정규직-유노조 사업장에서 호봉제로 상승하는 임금 압박을 하청·협력사에 비용을 전가해 원·하청 임금 격차를 유발시켜 왔다.

근로시간과 임금체계 개선의 두 가지 주제를 논의하는 데 있어 이들 개선을 뒷받침하는 근로자 대표제도도 동시에 개선될 필요가 있다. 현재 근로자 대표를 어떻게 선출하는지 모호하여 근로자 대표의 정의 및 선출 방식을 보다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근로자 대표를 분권화해 전체 근로자 대표가 소집단 직군의 특성을 잘 반영하도록 설계해야 한다.

예컨대 사업장에 A직군(생산직), B직군(사무직), C직군(연구개발직)의 세 가지 직군이 있고, 근로시간제도와 임금체계를 변경하고자 할 때 A직군 근로자들이 전체 근로자의 과반수를 차지한다면 B직군과 C직군의 특성이 잘 반영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A직군에서 선출된 과반수 근로자 대표가 B직군, C직군 근로자들의 작업 특성을 반영하고자 노력하지 않고 과반 독재를 한다면, B직군과 C직군 근로자들은 작업 특성에 맞지 않는 근로시간과 임금체계를 가지고 근로를 하게 된다. 이는 불공정하고 비효율적이다. 설상가상으로 그나마 과반수를 대표하는 근로자 대표마저 존재하지 않는다면 상황은 더욱 혼란스럽게 된다. A직군, B직군, C직군 각각 '부분 근로자 대표'를 선출해 작업 특성에 맞는 근로시간과 임금체계를 결정할 수 있도록 분권화된 근로자 대표제도를 설계할 필요가 있다. 현장 니즈에 따라서는 여성, MZ세대 등 소집단 '부분 근로자대표'도 둘 수 있을 것이다. 산업4.0 시대에 다양한 직종 종사자들이 출현하면서 자신들의 직무 특성에 맞게 근로조건을 설계할 수 있어야 하는데, 프로크루스테스 침대처럼 과반수 독재를 용인하는 현행 노동법체계가 소집단의 권리를 침해할 소지가 있는 부분은 개혁돼야 한다.

글로벌 트렌드는 개인과 소집단을 위해 다양한 선택권이 보장되는 추세이다. 예컨대 영국은 개인과 기업이 상호 결정하며 집단자치의 개입이 없는 근로시간 개인 결정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노동법, 근로자 협의, 산업안전 등에 근로자 대표의 정의 규정을 통일하되 이전보다는 유연한 선택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이 프랑스 마크롱의 노동개혁 핵심 사항이었다. 기존의 노동법에 비해 개인 혹은 소집단의 결정권을 대폭 강화한 일본의 근로계약법 제도 또한 이러한 글로벌 트렌드에 기초하고 있다. 근로자 대표의 범위를 전체 근로자 과반수에서 소분류 혹은 영향받는 그룹 혹은 개인으로 점차 분권화된 설계를 한다면 노동시장에서 대세를 이뤄가는 MZ세대의 '개인의 자기결정권 강화 요구'와도 부합할 수 있다.

중소기업에서는 노사 간 협상력이 '기울어진 운동장'의 양상이기 때문에 소집단과 개인들의 선택이 어렵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개혁을 거부하고 낡은 노동법에 안주하자고 주장하기보다는 근로자의 협상력을 강화해주는 대안적 제도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근로자가 처한 협상력 열세에 대한 해결책은 앞서 설명한 대로 노동법상 근로자 대표 정의와 선출 방식을 명확히 하여 근로자 대표체계가 제대로 작동되도록 하는 것이다. 무노조 사업장에서는 종업원 평의회와 같이 새로운 근로자 대표제도를 설계해주거나 '근로자 참여 및 협력 증진에 관한 법'상 근로자 대표 정의와 선출 방식을 명확히 해 노사협의의 구속력을 지금보다는 더 강화할 수 있다.

더 이상 노동개혁을 좌파우파의 이데올로기적 발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 대안 없이 흔들기, 일부 파편적인 사례를 확대 재생산하여 공포 마케팅을 해서도 곤란하다. 이제는 사회적 대화에 대한 과거의 잘못된 인식과 태도를 버리고 실사구시(實事求是)적 시각에서, 노사정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사회적 대화에 임해야 할 시점이다. '요구와 쟁취'가 아닌 '배려와 양보'의 진정한 사회적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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