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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경제] ‘계약 자유’ 침해하는 납품단가연동제
 
2022-11-25 13:52:13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근대 민법의 3대 원칙은 사유재산권 존중 원칙·사적(私的) 자치(自治) 원칙·과실책임 원칙이다. 사적 자치 원칙은 ‘계약 자유의 원칙’을 핵심적 요소로 한다. 헌법재판소는 "사적 자치는 계약의 자유ㆍ소유권의 자유ㆍ결사의 자유ㆍ유언의 자유 및 영업의 자유를 그 구성요소로 하고 있으며, 그 중 계약의 자유는 사적 자치가 실현되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다. 계약 자유의 원칙은 보통 계약 체결 여부의 자유·상대방 선택의 자유·계약 내용의 자유·계약 방식의 자유를 포함한다.

국회는 바야흐로 계약자유의 원칙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계약 내용의 자유’를 파괴하려 하고 있다. ‘납품단가 연동제’ 도입 시도가 그것이다. 이 제도는 하도급 계약에서 원자재 가격이 오르면 원사업자가 수급사업자의 납품단가를 올려주도록 하는 제도다. 법안에는 원자재 가격이 10% 이상 상승하거나 하락할 경우 납품대금에 연동해 단가를 올리거나 내리는 내용을 약정서(계약서)에 기재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내용이 담긴다고 한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제품 제조에 쓰이는 원자재 가격은 올랐는데 납품 단가가 그대로면 수익이 그만큼 줄기 때문에 대기업에 제품을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꾸준히 요구해 온 제도다.


그러나 사인(私人) 간의 계약서 내용 중에 반드시 어떤 내용을 포함하라고 국가가 강제하는 것은 ‘계약 내용의 자유’를 침해하여 ‘계약 자유의 원칙’을 침해한다. 나아가 민법의 대원칙인 ‘사적 자치 원칙’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것이다. 납품단가 연동제는 이명박 정부 때인 2008년부터 입법 논의가 있었지만 국가가 시장에 지나치게 개입한다는 우려에 따라 입법화되지 못한 것도 이 제도가 민법의 기본 원리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이 제도가 입법화되면 입법 만능의 한국 국회가 나서서 정치가 시장에 개입하는, 한국에만 존재하는 나쁜 제도를 또다시 만들게 될 것이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이 제도의 가장 큰 피해자는 수급사업자인 중소기업과 소비자가 될 전망이다. 원사업자는 이와 같은 의무조항이 적용되지 않는 외국 업체와 수급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크고, 결국 국내 수급업체인 중소기업은 해외 업체에 밀려 일감 자체를 얻지 못하게 될 우려가 크다.

소비자가 피해를 보는 것은 이미 원유가격 연동제에서 경험했다. 원유가격을 원유 생산비에 연동시키는 원유가격 연동제의 시행 결과 원유가격 상승률이 2017년부터 2020년 사이 72.2% 폭등했다. 우유는 남아돌고 소비자는 비싼 가격에 사 먹을 수밖에 없었으며, 같은 기간 유제품 수입은 급증했으며, 정부는 내년부터 이 제도를 폐지할 예정이다.

전경련이 지난 10일 개최한 ‘납품단가연동제 정책토론회’에서도 이 제도 도입은 국내 산업생태계를 약화시켜 장기적으로 중소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고용감소, 정부지출 감소와 무역수지 악화로 GDP가 감소하게 되는 부정적 효과를 유발한다는 점이 중점적으로 지적됐다.


계약은 이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계약 후 사정변경으로 그 계약 이행이 일방당사자에게 지나치게 가혹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때는 계약서상의 ‘하드십조항’(Hardship clause)를 이용하면 된다. 이 조항은 국내 계약서에서는 잘 활용되지 않지만 영미 계약서에는 널리 이용되는데, ‘사정변경조항’ 또는 ‘이행곤란조항’이라고 한다. 이는 계약을 이행해야 하는 양 당사자에게 어떤 정치적 또는 경제적 문제가 발생해 계약 이행이 곤란할 경우, 상대방에게 계약 내용을 변경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는 계약서 조항이다.

정부로서는 원사업자와 수급사업자에게 ‘하드십 조항’의 활용을 권고하면 충분하다. 이미 자율적인 납품단가연동제를 시행하고 있는 포스코가 모범사례다. 누구보다도 법률을 존중하고 법 원칙을 지켜야 할 국회가 도리어 법의 기본 원칙을 무지막지 파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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