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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정수연 교수의 부동산 정책 오해와 진실(9)
 
2022-11-09 17:11:29
◆ 정수연 제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부동산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시가격 현실화율(공시가격이 시세를 얼마나 반영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이 멈췄다. 신의 한 수다. 폐기하자니 대못으로 박힌 부동산가격 공시법 제26조의 2를 위반하는 것이 되고, 진행하자니 급속히 하락하는 가격보다 높은 공시가격이 국민을 괴롭힐 것이 뻔했다. 전 정부에서 증세 로드맵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은 시장이 침체해도 계속해서 치솟는 공시가격을 뱉어낼 참이었다. 이미 시장 수준을 반영할 수 없게 시스템화된 현실화율 로드맵은 폐기해야 마땅했지만, 법을 위반하는 것은 더 큰 부담이었을 것이다. 공시가격 현실화율 동결을 신의 한 수라고 평할 수 있는 이유는 ‘현실화율 80%는 부자 감세’라는 빈부 갈라치기 정쟁을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공시가격의 문제는 납세자 권리와 정확성 여부가 초점이 돼야 하지만, 늘 부동산의 정치화에 이용돼왔다.

납세자에게 공개되는 주택공시가격은 한국부동산원의 조사원이 만든 가격에 현실화율을 곱한 값이다. 그 조사원이 만든 산정가격이 10억원이라고 가정하자. 그 아파트 단지에서 실제로 거래되는 가격수준이 8억원이라면 분명 과다 산정한 것이다. 미국 같으면 큰일 날 일이다. 이 경우 미국의 과세당국은 곧바로 산정을 다시 할 것을 명한다.

“산정근거 투명하게 밝혀 납세자 권리 실현해야”


우리나라의 문제는 이 산정가격이 공개되지 않는다는 것에 있다. 사실 아파트 주민들은 그 산정가격만 공개된다면, 자기 아파트 단지의 시장가격 수준을 알기 때문에 바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10억원이 아니라 8억원이라고. 그러나 조사원이 만든 가격은 공개되지 않는다. 현실화율을 곱한 공시가격만이 공개될 뿐이다. 납세자는 공시가격이 정확한지 판단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현실화율이 90%이건 80%이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현실화율은 그저 오류공시가격의 문제를 현실화율 숫자 크기의 문제로 전환해버리는 역할을 할 뿐이다. 그래서 현실화율을 오류를 덮는 ‘베일’이라 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납세자는 그저 현실화율을 내려달라고 애걸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다. 정보가 공개되지 않으니 오류공시가격에 대해 시정을 요구하는 권리를 행사할 수 없게 된다. 빈부 갈라치기는 다시 등장해 정치권은 때로는 현실화율을 내려주고, 때로는 전 정부처럼 100% 현실화율을 정의의 이름으로 외칠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오류공시가격의 문제는 실종되고 우리 사회는 오로지 세금을 더 거두기 위해서, 혹은 세금을 덜 내기 위하여 돈을 놓고 투쟁하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런 사회야말로 ‘천민자본주의’와 다를 바가 없다. 오류를 시정하고 보완해나가 시간이 흐를수록 발전의 단계를 밟아가는 사회, 산정근거를 투명하게 밝혀 납세자 권리를 실현해나가는 사회여야 비로소 ‘선진사회’라 할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정확한 공시가격을 누릴 납세자의 권리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새 정부는 인수위원회 단계부터 전국 지방자치단체에 ‘공시가격 검증센터’를 설치해 오류를 검증하겠다고 했었다. 공시제도 선진화로 가는 길을 연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을 무력화하기는 매우 쉽다. 검증하고자 하는 자에게 ‘뭉그러진 자료’를 주면 된다. 산정자가 만든 아파트 산정가격에 집집마다 다른 현실화율을 곱한 최종값만을 검증센터에 제공하면, 검증센터는 아무것도 검증할 수 없게 된다. 국회의원들의 추궁에는 ‘검증센터에 자료를 제공했다’고 둘러대면 그만이다.

“산정가격·현실화율 공개 없이 제도 선진화 요원해”


산정가격도, 집집마다 다르게 적용된 현실화율도 모두 한국부동산원에 독점돼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새 정부의 공시가격제도 선진화 정책이 작동할 수 없다. 인력도, 예산도 없는 지방자치단체 검증센터는 검증 가능한 자료를 받지 못해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기권리를 위해 이의신청을 준비하는 각 아파트 단지의 모든 납세자도 마찬가지이다.

공시가격 산정근거, 그리고 산정가격과 현실화율의 투명한 공개 없이는 우리 사회가 공시가격제도를 통해 선진화될 희망은 없다. 공개돼야 논쟁에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아진다. 납세자에게 자신이 만든 산정가격, 시장을 반영해 만들었다는 그 가격결과물이 공개돼야 산정자도 정확성을 위해 노력한다. 그 과정에서 이 제도의 발전 또한 이루어질 것이다.

국토교통부는 현실화율을 동결하는 큰 결심을 했다. 2023년 공시가격은 꽤 흥미로울 것이다. 잠시 멈춘 현실화율은 2022년과 2023년의 공시가격 비교를 가능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우리는 2022년 공시가격과 2023년 공시가격 상승률을 비교함으로써 그것이 시장을 제대로 반영했는지를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한국부동산원과 감정평가사들의 능력에 기대어 주택공시가격은 산정된 가격 그 자체로, 토지공시가격은 감정평가된 그 자체로 베일을 벗고 그 민낯을 드러낼 참이다. 주택공시가격은 감정평가하지 않고, 감정평가사가 투입되지 않는다. 반면 토지공시가격인 공시지가는 감정평가하고 감정평가사가 투입된다. 이제 양자 간에 품질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공시가격 품질경쟁이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징계제도의 중립성을 확보하고 공시가격 작성 주체가 관리·감독 주체를 겸하는 등의 이해충돌 문제 해결은 필수라고 할 것이다. 이 제도는 살펴볼 것이 너무나 많은 제도다. 갈 길은 멀지만, 이 긴 여정을 잘 마무리할 수만 있다면 국토교통부와 새 정부는 1989년 공시가격제도가 처음 태동한 이후 30여년 간 해결되지 않던 난제를 해결하고 우리 사회의 투명성을 높인 사람들로 기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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