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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각자 다른 배를 탄 대주주와 소액주주
 
2022-09-05 09:37:11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업가에 한국의 세제는 착취적 제도의 전형

경제적 자유·재산권 침해하는 상황

미래 위해 상속세 폐지와 배당세율 완화해야


소설 ‘안나 카레니나’는 1870년대 초에 구상되어 1873년부터 1877년까지 러시아 통보라는 잡지에 연재 되었으며, 1878년에 수정 작업을 거쳐 단행본으로 출간되었다고 한다. 작가 레프 톨스토이가 애초에 구상했던 소설은 그저 어느 불쌍한 유부녀의 ‘불륜이야기’에 불과했다고 한다. 모든 것이 그렇다.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 알려면 그리기 시작해야 한다”고 피카소도 말했다. 이 글 역시도 어떻게 결말 될지는 일단 쓰기 시작해 보아야 안다.


18세기 후반 신대륙에서는 독립전쟁(1775~1783), 유럽 대륙에서는 프랑스 혁명(1789)과 그에 이은 전쟁들이 터지는 가운데 영국에서는 대략 1760년~1820년 사이에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톨스토이가 ‘안나 카레니나’를 집필하던 1870년대 러시아는 여전히 농업국으로서의 지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산업혁명의 거센 물결은 러시아에도 서서히 침투하여 귀족들은 농노해방과 자본주의의 발달로 점차 전통적인 경제활동인 영농에서 멀어져갈 수밖에 없었다.


다른 유럽 국가와 마찬가지로 러시아의 경제적 주도권도 상인과 자본가에게 넘어가게 된다. 안나의 바람둥이 오빠 스테판이 그의 아내 돌리 소유의 임야를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이자 작가의 화신인 레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작 2만8000루불에 돈만 아는 속물 귀족 랴비닌에게 팔고 만다.


토지가 더 이상 중요한 생산수단이 아닌 것이다. 스테판은 나중에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무슨 위원회의 위원직을 맡아 8000루불의 연봉을 받는 관리가 된다.


이처럼 대략 1800년대 말 유럽에서는 이미 경제는 농업에서 상업으로 주도권이 넘어갔음을 보여주고 있다. 농업은 토지가 생산수단임에 비해 상업은 기업이 생산수단이다. 그 이후 이와 같은 주도권은 한 반도 바뀐 적이 없다.


현대에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이 ‘상공농사’(商工農士)로 바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현대적 생산수단인 기업이 번창해야 국민이 모두 넉넉한 부를 이룰 수 있게 됐다. 특히 세계가 하나의 나라처럼 좁아져 세계 시장의 선점이 국부의 결정적 요소가 됐다.

기업가에 한국의 세제는 착취적 제도의 전형

기업의 주인은 주주다. 한국 국민 중 주식을 소유하고 있는 주주 수는 2021년 말을 기준으로 1384만2667명이다. 즉, 한국 국민 1384만명이 생산수단을 소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중 대주주는 수백만에 그친다. 소액주주는 자신이 보유한 지분에 따른 의결권 외에는 기업의 의사결정을 좌우할 힘이 없고, 대주주가 영위하는 사업에 숟가락을 얹는 사람이다.


대주주는 자신이 직접 경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세상에는 뛰어난 경영자가 많으므로, 소액주주들은 대주주가 훌륭한 경영자를 임명해 기업을 잘 경영해 주기를 바라고, 주가가 올라가 수익을 올려주기를 바란다.


문제는 대주주가 훌륭한 경영자를 임명해도 경영 방향을 결정할 대주주에게 문제가 있거나 경영자의 경영여건이 나쁘면 사업을 제대로 할 수 없고 주가를 끌어올릴 수 없다. 그런데 대주주가 걱정 없이 사업에 투자할 수 있게 해 주는 것, 경영자가 걱정 없이 사업에 전념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다.


한국 대주주의 최대의 고민거리는 기업 승계다. 요즘은 어떤 아들과 딸도 선뜻 기업을 승계하려 들지 않는다고 한다. 기업 경영은 종합예술이라 일단 넓은 무대가 마련되어야 하는데, 온갖 규제로 사업 진출도 어렵고 퇴출도 어려운 구조다. 또 근로자와 고객, 소비자와 하청업자, 원료 공급자 등 모두가 조화롭게 상생하여야 하는데, 능력 있는 근로자 구하기 어렵고 강성 노조에 치여 사업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한다.


더 중요한 문제는 착취적 제도다. 대런 에쓰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은 포용적 경제 제도를 가진 국가는 흥하고 착취적 경제 제도를 가진 국가는 망한다고 그의 저서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 썼다. ‘포용적 경제 제도’는 사유재산권을 보장하고, 공평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며, 신기술과 기능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는 제도이다.


이에 반해 ‘착취적 경제 제도’는 소수가 다수로부터 자원을 착취하기 위해 고안된 것으로, 사유재산권을 보장하지 않고 경제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주지 못하는 제도를 말한다.


한국의 상속제도는 착취적 제도 맞다. 사유재산권을 보장하지 않고 경제활동에 대한 인센티브를 제공해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온통 기업을 뜯어갈 생각뿐이다. 그 중 국가가 가장 혹독하다. 국가는 기업승계의 경우 최대주주에게는 최고세율 60%의 세금으로 피상속인이 일군 재산의 60%를 가져간다.


자기가 일 해 번 생산물의 50% 이상 상납하는 것은 조선시대 소작농이 땅 주인에게 매년 바치던 것이다. 기업은 현대판 소작농이라 할 만하다.


대주주 사망 후 평가는 시가로 할 수밖에 없으므로 평가될 주식에 대한 상속을 앞둔 기업의 대주주는 주가를 최대한 낮추어야 할 유인이 있다. 즉, 60% 상속세를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으려면 주식의 시가를 가능한 한 낮춰야 한다. 지주회사 체제하에서는 지주회사만 물려주면 되기 때문에 지주회사의 주가는 늘 제 자리 걸음인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대주주는 차라리 기업을 사모펀드에 팔아버리면 사모펀드는 상속 같은 것이 없으니 서로 윈, 윈이다. 기업의 실질적 의사결정권자인 대주주는 어떤 방향을 선택할 것인지는 물어볼 필요도 없이 주가를 낮추는 쪽이다. 이것은 주가가 오르기만을 학수고대하는 소액주주들과는 이해관계가 완전 상반된다. 상속문제를 벗어나도 다음 대주주 역시 똑같은 문제에 부딪친다.


소액주주는 배당을 기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주주는 배당에도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한국은 배당소득이 2000만원 넘으면 종합소득에 합산되는데, 지방세 10%까지 더해 최고세율 49.5%가 된다. 소득의 반을 정도를 국가에 납부한다면, 대주주는 차라리 배당받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할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세제는 착취적 제도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주주만 욕할 수 있는가. 누구든 법률이 허용하는 한도 내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스스로 국가에 기부하는 것도 아니고 국가가 기업 재산의 50~60%를 수탈하는데 어떤 기업가에게 ‘기업가 정신’이 흘러넘칠 수 있을까.

미래 위해 상속세 폐지와 배당세율 완화해야

대주주와 소액주주가 각각 반대 방향으로 노를 젓는 쪽배에 타고 있는 형국인 한국에서, 이 기막힌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은 일단 상속세를 없애거나 주식에 대해서는 자본이득세로 전환하는 방안뿐이다. 이런 방식을 채택하면 대주주도 회사가 커지고 주가가 폭등하는 것을 반길 수 있게 된다.


자본이득세란 주식을 상속한 시점이 아니라 주식을 처분해 현금화한 시점에서 상속세를 내는 것이다. 사실 주식을 상속받았다고 해서 갑자기 현금이 생기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경영을 잘 해 기업을 지켜야 할 엄청난 부담을 떠안는 것이다. 경영을 잘못해 파산하면 선대에 죄를 짓고, 잘 못되면 형사처벌까지 감수해야 하는 위험한 물건이 바로 주식이다.


주식 그자체로는 현금이 아니어서 이를 팔아야 하는데, 팔고 나면 경영권을 유지할 수 없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국회의원들이나 다른 많은 분들은 이런 조치에 대해 부자감세이고 부의 대물림이라면서 반대한다. 그러나 대주주의 이해관계와 소액주주의 이해관계를 일치시킴으로써 대주주나 소액주주 모두가 현대적 생산의 수단인 기업의 소유주가 되고, 기업으로부터 충실한 배당을 받아 부의 대물림이 아니라 가난의 대물림을 끊을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상속세 폐지와 배당세율 완화다.


상속세를 폐지하면 아무도 잃지 않는다. 국가는 세수가 증가하고, 기업은 안정적으로 승계되어 일자리가 유지되고, 경제는 성장한다. 착취적 경제제도를 버리지 않고는 한국의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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