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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與 대표 논란과 ‘정치의 사법화’ 비극
 
2022-08-09 17:28:19
◆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미디어·언론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법과 정치의 영역에서 여전히 풀리지 않는 문제가 있다. 바로 ‘사법의 정치화’와 ‘정치의 사법화’ 문제다.

먼저, ‘사법의 정치화’란 사법부의 판결이 현실 정치문제에 어느 정도 개입하는 것이 타당한지에 대한 논쟁이다. 예를 들면 1950년대 이후 미국 연방대법원은 낙태·총기·환경 등의 분야에서 기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판결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법원은, 정치문제에 대해서는 이른바 ‘통치행위 이론’을 제시하면서 가능한 한 정치과정에 대한 개입을 회피하고 있다.

반면, ‘정치의 사법화’는 정치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점들을 정치권 자체에서 해결하려고 하지 않고 사법부에 고소·고발·가처분 등을 통해 해결하려는 것을 말한다. 선거와 관련한 고소·고발인 경우, 제기하는 측에서는 매우 손쉬운 절차이지만 이를 당하는 쪽에서는 자칫 직을 잃거나 형사처벌을 감수해야 하므로 고액의 변호인을 선임해 장기간 대응해야 하는 등 큰 시간적·물질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학자는 특히 선거 문제에 대한 고소·고발에는 무고죄를 폭넓게 적용해 정치인들을 무위(無爲)의 소송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한국에서 ‘정치의 사법화’가 거론되는 또 다른 분야는 ‘가처분’이다. 흔히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이 방영되거나 출판되는 경우, 그리고 정당 내부에서 불리한 처분이 있는 경우에 이를 정치적으로 해결하려고 하기보다 사법절차에 의존하려는 게 상례화하고 있다.

문제는, 정당 내부의 의견 대립이나 정치행위에 대해서 일일이 ‘가처분’을 통해 사법부의 판단을 받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하는 점이다. 실제로 최근 여당의 대표가 자신이 임명한 윤리심사위원회에 의해 6개월의 당원권 정지라는 초유의 징계를 받았고, 그 여파로 곧 구성될 비상대책위원회의 성립 과정에 대해 ‘가처분’ 신청을 통해 다툴지도 모른다는 소식이 들린다. 당헌·당규에 위반된다는 것이 이유인 듯하다.

그런데 여야를 떠나 한국 정당들의 당헌·당규는 법령집처럼 촘촘하게 규정된 게 아니라, 매우 추상적이고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하다. 그 틈새는 정치과정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해 메우도록 하고 있다. 지나치게 엄격하고 해석의 여지가 없는 당헌·당규는 매우 역동적인 정치의 세계에서 재량의 여지를 없앨 가능성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법원이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신청한 가처분을 받아들인다면 법적으로 2명의 당대표가 존재하는 상황이 될 것이고, 반대로 가처분 신청이 기각된다면 본인의 정치적 입지는 당분간 극도로 불안정해질 것이다. 어느 쪽이든 한국 정치사에 매우 불행한 일이다. 정치권에는 덕(德)이 안 되고, 본인에게는 득(得)이 되지 않을 수 있다.

사법과 정치는 적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 정치가 사법을 무시해서 ‘법치주의 원칙’이 무너져서도 안 되지만, 지나치게 사법부에 의존해서 ‘법관통치(Juristocracy)’ 시대를 여는 것 역시 경계해야 한다. 정치는 신뢰와 존중을 바탕으로 해야 하고, 사법은 올바른 법령에 충실해야 한다. 정치과정에서 발생하는 복잡다기한 일들은 법관들의 법률적 판단보다는 우선 국민의 여론을 잘 살펴서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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