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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일리안] 실패할 운명인 공공기관 지방이전
 
2022-08-03 14:41:16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효과 "증명된 연구 없어"

'지방 이전 논란' 산업은행, 인력 공백 우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계획이 수립된 이후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된 공공기관 지방 이전은 2019년 마무리됐다. 이를 계기로 부산, 대구, 광주, 전남, 울산, 강원, 충북, 전북, 경북, 경남, 제주 등 10곳에 혁신도시가 건설됐다. 그러나 이처럼 지정된 혁신도시로 옮겨간 공기업이 혁신적인 성과를 내고, 혁신도시에 사는 공기업 직원들의 소득도 혁신적으로 높아졌는가?


여러 국책연구소는 지난 정부에선 거의 기능을 상실해 친정권 보고서나 쏟아내는 어용연구기관으로 추락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효과 분석 보고서도 있기는 하지만, 결론은 두루뭉술, 하나마나 한 소리나 하고 있다.


최근에는 산업은행의 부산 이전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되고 있다. 지난 1월 말 당시 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은 기자간담회에서 산은의 부산 이전 공약에 대해 “옮겨봐야 소용없고 소탐대실할 것”이라며 이전 반대 입장을 밝혔었다. 학자로서의 양심을 쓰레기통에 버린 국책연구소 박사님들의 보고서를 정면으로 들이받는 거나 같다. 이동걸 전 회장의 말이 맞다.


한전이 삼성동 금싸라기 땅을 팔아 나주로 내려가 무슨 이익을 냈으며 전력 생산에 어떤 획기적 성과를 달성했는가. 국민연금관리공단이 전주로 내려가 많은 우수한 운용역들이 퇴사했다. 국민연금은 전주에 있더라도 운용역들은 한국 금융의 중심지인 여의도에 근무하게 했어야 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 효과 “증명된 연구 없어”

세종시에 갇힌 공무원은 더 문제다. 서울에 1시간 볼일 보려면 오가는 시간이 더 걸려 하루를 버린다. 공무원들과 민원인들이 세종시와 서울로 오가는 교통비와 에너지 및 시간 소모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그 돈이면 대기업 직원 이상으로 공무원 처우를 개선할 수 있을 것인데, 온전히 길바닥에 돈을 뿌리는 형편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세종시 공무원들이 그들만의 세상에 살기에, 기업인을 만날 일이 없다는 것이다. ‘김영란 법’이라는 바보 같고 해괴하기 이를 데 없는 법률이 더욱 문제를 더욱 꼬이게 만들었다. 기업인이 공무원과 점심한 끼 같이 하기 어렵게 됐다. 그러니 공무원들이 기업인이나 전문가들에게 배울 기회가 없다.


기업들에 무슨 규제가 문제인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다. 공무원들의 사기와 자존감은 떨어지고 우수한 인력들이 세종시 탈출 기회를 찾는 것은 하나도 이상하지 않다. 각 개인의 미래는 어느 나라에, 어느 지역에 사느냐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는 것, 심지어는 수명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특정 산업은 특정 지역에 집중되어야 한다. 그래야 ‘뭉침의 힘’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 U.C. 버클리 경제학과 교수 엔리코 모레티(Enrico Moretti)가 2012년에 쓴 '직업의 지리학'의 주요 내용이다. 뭉침의 힘이 작동하려면 무엇보다도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고 인재가 몰려들어야 한다.


보스턴, 샌프란시스코, 뉴욕 같은 데가 그렇다. 한국으로 말하면 여의도나 판교·동탄이 그렇다. 생명공학은 보스턴-케임브리지 지역, 샌프란시스코 만안지역 그리고 샌디에이고 지역이 발전했고, 영화산업은 로스엔젤레스에서 발달했다. 혁신의 도시 실리콘밸리, 마이크로소프트가 소재한 시애틀도 그러한 사례라고 모레티 교수는 지적했다.



지자체 유치전 본격화에도…인력 공백 우려

혁신적 기업은 혁신적 근로자가 모여 들었기 때문에 혁신기업이 된 것이다. 사람들은 얼굴을 마주보며 협력할 때 가장 창의적이 된다. 동료효과(peer effect)가 생기는 것이다. 1995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로버트 루카스(Robert Emerson Lucas, Jr.) 시카고대 경제학 교수는 1988년에 쓴 논문에서 “자신보다 교육 수준이 높은 동료들과 상호작용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더 생산적이고 더 창의적으로 변하는데, 교육 수준이 높은 사람들을 가까이 많이 두고 있으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금전적인 이득을 얻게 된다.”고 했다.


혁신적 기업이 집중된 곳에 근무하는 직원들은 평균보다 높은 급여를 받는데, 그것은 인재 유출을 두려워하는 기업들이 근로자를 붙잡아 두기 위해 높은 급여와 우수한 복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가처분 소득이 늘어난 근로자들은 더 자주 좋은 식당에 가고 더 많은 멋진 옷을 구매하고, 최고 수준의 헤어 살롱에서 더 자주 머리를 만지고 더 좋은 차를 산다고 한다. 이는 숙련된 근로자뿐만 아니라 미숙련 근로자들의 임금에도 영향을 미치고 그 도시 전체 주민들의 소득에도 영향을 미치며, 심지어는 주변 도시의 다른 직업 종사자들의 급여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말하자면 ‘개도 만 원 짜리를 물고 다닌다’는 거다.


기업을 강제로 전국에 흩어 놓으면 이와 같은 중요한 효과를 모두 버리는 셈이다. 공기업이라 해서 다를 바 없다. 주변에 다른 기업도 없고 비슷한 기업도 없는 곳에 외딴 섬처럼 공기업 하나 옮겨 놓는다고 무슨 기대효과가 있을 것인가. 지방균형발전을 명분 삼아 공기업을 강제로 지방에 흩어 놓는 것은 삽질일 뿐이다.


정치적인 의미는 있을지라도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의 관점에서는 빵점인 정책이다. 일자리 창출도 미미하다. 대부분 서울과 지방 주말부부가 되어 이산가족만 늘어난다. 경남 진주로 내려간 LH는 일부 임원은 목요일부터, 금요일 오후엔 사장을 비롯한 모든 임원들이 자리를 비우는 일까지 생겼다. 정치논리가 경제를 지배하면 정치인은 덕을 보겠지만 혁신이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국가 경제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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