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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중앙] 정수연 교수의 부동산 정책 오해와 진실④
 
2022-06-29 14:33:45
◆ 정수연 제주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부동산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공공기관 개혁의 기준, 수익성보다 경쟁 중립성이 중요하다


한국경제가 빠르게 침체되고 있다.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자본주의 경제의 속성상 불황은 피할 수 없다.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오로지 호황이라는 산의 높이는 낮게, 불황이라는 골짜기의 깊이는 얕게 하는 것뿐이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은 법이다. 코로나19라는 위기상황에 대응해 전 세계적으로 풀리는 통화량을 보면서 인플레를 예감하지 않은 경제학자가 있었을까. 모두가 깊은 골짜기를 예감했으나, 이토록 속도가 빠를 줄은 아무도 몰랐을 것이다.

불황으로 빠져드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춰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정부는 공공기관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해봐야 한다는 측면에서 이는 바람직하다. 다만 과거 모든 정부에서 시도했던 그 일이 이번에는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는 심정이다.

혹여나 공공기관 개혁의 기저에 정치적 목적이 깔렸지 않겠냐는 의심에서 벗어나는 길은 하나다.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가 무엇인지도 구체적이어야 한다.

공공기관 개혁의 기준이 오로지 ‘적자 공기업 퇴출’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흑자 공기업이 더 위험하기 때문이다. 공기업이 흑자를 내려면, 방법은 두 가지이기 때문이다. 비용을 절감하거나, 혹은 매출을 늘리거나. 둘 다 위험한 방법이다. 공기업 직원을 마음대로 자를 수 없는 상태에서 비용절감의 유일한 방법은 제품 품질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는 공기업 서비스 질의 추락으로 이어질 수 있다. 공기업의 매출 증가 시도도 위험하다. 보이지 않게 민간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공기업 개혁, 민간에 영향 주지 않도록 살펴야

그렇다면 공기업의 민간 침해는 관찰될 수 있을까? 해당 시장의 전문가가 아니고선 관찰이 거의 불가능하다. 민간과 공공의 업무중복을 판단할 때 연구기관은 모든 분야를 다 알 수 없어 주로 ‘명칭의 유사성’만을 따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공기업은 그 ‘업무 명칭’을 바꾸는 꼼수를 쓴다. 2013년 ‘공공기관합리화방안’이 마무리된 직후인 2015년 한 공기업은 민간이 하던 표준주택 조사·평가 업무를 표준주택 조사·산정으로 명칭을 바꿔 가져갔다. 그러나 그것이 민간 감정평가업계와 충돌하는 업무라는 걸 아무도 인지하지 못했다. 명칭이 ‘평가’에서 ‘산정’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적자 공기업만을 문제 삼으면 ‘민간 침해’라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다. 공기업 입장에서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다른 영역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민간과 경쟁하는 공기업이 민간시장을 위축시킨다는 지적은 끊임없이 제기돼왔다. 따라서 다시 시작된 공기업 개혁이 민간시장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그렇기에 공기업 개혁의 시작은 해당 공기업이 생산하는 서비스의 특성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민간과 겹치는 영역은 얼마나 있는가, 그리고 ‘명칭 변경’으로 은폐되고 있는가를 분석해야 한다. 또한 공기업 자회사의 성격도 분석해야 한다. 인쇄나 전산 서비스 등 민간 기업으로부터 받아야 할 서비스를 자회사를 통해서 공급받고 있다면 그 또한 민간시장을 위축시키는 결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흑자 공기업만을 우대하는 것도 부적절하다. 스스로 벌어 스스로 흑자를 냈는가를 보아야 한다. 정부로부터 예산을 배정받아 업무를 수행하는 공기업이 흑자를 내면, 그것은 필요 이상의 예산을 과다 청구했다는 뜻일 수 있다. 공무원 조직에서도 ‘불용처리 예산’은 늘 비판의 대상이다.

그러니 오로지 돈, 흑자와 적자만을 따져 공기업 성과를 논하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그 공기업이 창출하는 재화와 서비스의 품질, 그리고 민간과의 경쟁 여부를 따져볼 때다. 정부 정책도 이제는 ‘정치색’보다는 ‘객관적 근거’에 기초해 수립될 때가 됐다. 객관적 근거라는 것이 단지 ‘회계장부의 숫자’여서는 곤란하다. 정책도 전문성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이 공기업 개혁을 바라보는 민심이 ‘불황으로 빠져들었으니 공기업도 불황을 느껴보라’는 식의 ‘너 죽고 나 죽는 심정’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정책의 궁극적 목표는 ‘민간을 잘살게 하고 일자리가 민간에서 더 많이 창출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 구성원의 바람도 그래야 한다. 따라서 이번 공기업 개혁은 공기업도 본연의 목적에 맞는 업무만을 하고, 민간에서는 더 많은 경제 활동이 일어나는 쪽으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그렇게 정부와 민간, 공기업이 함께 이 복합경제 위기라는 높은 파도를 넘어야 한다.

정부, 공정거래위 역할 강화해야

공공은 민간과 경쟁하지 않고 상생하며, 민간에서 더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도록 돕는 ‘조력자의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 공기업이 가진 자본, 전문성으로 민간 중소기업, 개인사업자들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는 중간재를 창출하고 있는지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 한국국토정보공사는 우리나라 ‘연속지적도’의 정확성을 보완한 ‘국토정보기본도’를 생산하고 있는데, 이는 ‘프롭테크(부동산에 정보기술을 접목한 온라인 서비스)’ 기업들에 중요한 투입 생산요소다. 연속지적도가 위성 영상과 잘 맞지 않으면 프롭테크 기업들은 이를 일일이 수작업해 사용해야 하는데, 공사가 이러한 것을 제공하면 수많은 기업이 시간과 노력,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많은 민간기업이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비용이 들어가는, 그러나 많은 기업이 요구하는 그런 재화와 서비스를 공급하는 것이 공기업 본연의 역할이어야 한다.

공기업이 가진 자원과 시스템을 민간과 공유하고 그것을 확산하려는 노력은 얼마나 하고 있는지, 혹시 ‘영업비밀’이라며 세금이 투입된 공기업 보유 데이터를 민간과 공유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공기업이 민간기업의 수익을 위축시키며, 어떤 공기업이 민간기업의 비용을 절감하는 데 기여하는가? 과연 어느 공기업이 ‘민간기업을 시장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일’에 기여했는지, 이제 우리는 그것을 보아야 한다.

한 가지 덧붙이자면, 민간도 무조건 보호의 대상이어서는 안 된다. 낮은 품질의 서비스를 생산하는 민간기업도 시장에서 퇴출할 수 있어야 한다. 품질경쟁이 가능한 시장으로 변화되도록, 경쟁의 장을 활짝 열고 공정시장을 확립하는 일에 방점이 찍혀야 한다. 정부는 공기업 개혁과 더불어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새 정부의 공기업 개혁이 성공한다면 그다음 단계는 무엇일까? 그것은 민간기업들의 품질경쟁 촉진 정책일 것이다. 담합에 기초한 가격카르텔, 새 기업 진입을 막는 진입장벽들을 찾아내 격파하는 개혁의 로드맵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필자 소개: 제주대 경제학과 교수이자 한국감정평가학회장. 중앙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2019년 감정평가학술대상 최우수상, 2020년 서울부동산포럼 제1회 학술대상을 받은 바 있다. 부동산경제학·부동산대량감정평가·부동산계량경제학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 활동을 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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