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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朝鮮칼럼 The Column] 극복해야 할 ‘우물 안 개구리’ 외교
 
2022-05-04 11:00:08

◆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담당대사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대외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막 두 달을 넘긴 우크라이나 전쟁은 세계 여러 나라에 다양한 교훈을 남기고 있다. 대다수 나라가 우크라이나를 동정하고 각종 지원을 제공하면서도 어느 한 나라도 선뜻 나서 함께 싸우려 하지 않는 현 상황을 바라보면서, 세계 각국은 지극히 평범하고도 중요한 두 교훈을 새삼 깨닫고 있다. 첫째는 예측 불가한 외세 침략에 대비해 각자 자신을 지킬 자위력을 갖춰야 한다는 점이고, 둘째는 자기보다 강한 적에게 대항하려면 유사시 함께 싸워줄 동맹국과 우방국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냉전 체제 종식 이후 이라크 전쟁, 아프간 전쟁 등 크고 작은 많은 전쟁이 있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만큼 국제사회에 크고 즉각적인 영향을 미친 전쟁은 없었다. 2차대전 종전 후 70여 년간 군사적 중립을 고수해 온 핀란드와 스웨덴이 돌연 NATO 가입을 결정했다. NATO 회원국이면서도 친러시아 기조를 유지해 온 독일은 국방 예산을 두 배로 증액해 30년 만의 군사력 증강에 들어갔고, 러시아산 석유·가스 도입을 감축하며 러시아와 결별을 준비하고 있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를 연상시키는 러시아의 노골적 침략에 놀란 동유럽 국가들은 앞다투어 무기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동아시아도 예외는 아니다. 일본과 대만은 러시아의 준동맹국인 중국이 남중국해와 대만해협에서 벌이는 군사적 위협과 도발에 대응해 군비 증강을 가속하고 있다. 중국은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다른 어느 나라보다 큰 충격을 받았을 것이다. 중국은 그간 분리 독립을 추구하는 대만에 대한 군사적 침공을 누차 공언해 왔지만,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가해진 혹독한 금융 제재를 바라보며 모골이 송연했을 것이다. 석유·가스 수출국인 러시아는 국제 제재를 두 달이나 견뎌냈지만, 에너지와 식량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중국은 몇 주일이나 버틸 수 있을까. 세계 2·3위 군사 강국인 러시아와 중국이 처한 이런 난관은 그들 공동의 맹방인 북한에도 결코 남 일이 아닐 것이다.

전 세계가 우크라이나 사태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자구책 마련에 분주한 가운데, 유독 한국은 이를 강 건너 불로 여기며 초연한 기색이다. 최근 젤렌스키 대통령의 화상 연설을 맞은 우리 국회의 풍경은 이 나라의 후진국적 정체성을 만천하에 보여준 부끄러운 자화상이었다. 한국은 국제적 압력으로 대러시아 제재에 뒤늦게 합류했으나, 러시아의 경제 보복 가능성에 걱정이 많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늘고 있으나, 그들이 간청하는 무기 지원은 러시아 눈치를 보느라 거부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국내 일각의 진지한 우려도 없지 않으나, 그나마 유가 인상, 무역 손실 등 경제적 우려 일색이다. 한국 사회에 팽배한 이런 분위기는 1970년대에 ‘경제 동물’이라 조롱받던 일본 모습을 연상시킨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은 어떤 나라일까? 한국은 세상에 어려운 일이 생길 때 발 벗고 나서 총대를 메는 나라도 아니고, 인도적 현안에 헌신하여 존경받는 나라도 아니다. 주요 국제 쟁점에 관한 태도가 항상 모호하고 정체성이 애매한 나라, 항상 자신의 문제에만 몰입해 남의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는 나라, 남의 나라 전쟁에서 단 한 방울도 피 흘리기를 꺼리고 적당히 돈으로 때우려는 나라, 부득이 해외 파병을 할 때도 유난히 한적한 곳만 골라 주둔하며 유아독존 고집하는 나라, 그러면서도 한국에 전쟁이 나면 다들 몰려와 피 흘려 싸워주리라 믿고 있는 나라. 이것이 우리의 솔직한 자화상 아닐까?

이제 한국은 약소국도 개도국도 아니고, 경제력에서나 군사력에서나 선진국 문턱에 와 있다. 그러나 선진국의 관문은 그런 하드웨어만으로 지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경제력과 군사력에 더해 그 나름의 일관된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국제사회에서 목소리를 내야 하며, 가치관을 공유하는 나라들과 행동을 함께하고 땀도 피도 함께 흘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국민의 시각은 70년째 한반도라는 좁은 우물에 갇혀있고, 우물 밖 세계에 대해 어떤 진정한 관심도 애정도 없다. 그런 ‘우물 안 개구리’ 세계관이 만들어낸 ‘나 홀로 외교’에서 이젠 그만 벗어나야 할 때다. 한국은 70년 전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나라를 지켰고, 지금도 동맹국의 도움으로 안보를 유지하며 번영을 구가하는 나라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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