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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민주주의의 적(敵) 망국적 포퓰리즘
 
2022-02-15 09:25:15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혁명 덕택에 황제가 된 나폴레옹은 역설적이게도 혁명에 따른 혼란과 혼동, 급진적인 변화, 특히 혁명 주력인 군중을 경멸했다고 한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은 몇몇 선동가에 휘둘린 군중의 집단폭력과 보복살인의 도가니였다. 인간은 지구상에서 가장 관용적이면서도 가장 무자비한 종(種)이다. 공화정부의 공안ㆍ공포정치 5년 동안 기요틴에 처형된 사람만도 4만 명이 넘었으며, 시민 50만 명 이상 희생됐고, 그 중 80% 이상이 평민이었다. 이런 참상을 겪은 그는 혁명보다는 관용과 법 앞의 평등, 합리주의, 그리고 질서와 권위를 선호했다. 민주공화정이나 주권을 인민 의지에 넘긴다는 ‘이상론’과는 거리를 뒀다(최파일 번역, 『나폴레옹 세계사』).


18세기 민주주의를 주창한 선각자들은 국민은 전적으로 선하며 순수하고 고귀하며, 그밖에도 무엇이 좋은지를 알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지적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궁중 귀족들이 그들의 군주가 가장 선하고 고귀하고 유능하다고 믿고 복종했던 것 못지않게 터무니없다. 왕과 귀족들이 평민을 수탈하기 위한 ‘이권 카르텔’을 구축했을 뿐인 경우도 많았던 것처럼, 민주주의 제도 아래서도 국민의 지지를 받아 수많은 독재자가 탄생했고, 독재자와 그 추종자들은 ‘승자동맹’을 맺어 자기들만의 배를 불렸다.


국민은 개별 시민의 합이기 때문에, 시민 일부가 현명하지 못하다면 그 합인 국민도 마찬가지다. 가장 명확한 예가 1917년 러시아 볼셰비키 혁명이다. 당시 러시아 인구 절대다수인 80%가 농민이었다. 이들은 토지를 요구했다. 로마노프 왕조 말기, 농노해방과 더불어 먹고 살기 어려워진 농민들은 토지관리인과 지주를 습격해 내쫓았고, 지주제를 붕괴시켰다. 레닌과 트로츠키는 ‘빵, 평화, 토지’라는 단순 명료한 슬로건을 민중의 뇌리에 반복적으로 주입했다. 토지의 ‘무상몰수ㆍ무상분배’를 약속했으며, 농민운동을 추인해 농민과 노동자들의 절대적 지지로 정권을 잡았다. 토지국유화가 단행됐다. 이는 단지 모든 토지의 국가 소유에 그치지 않고,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를 깨뜨리는 공산국가를 만든 것이었다. 이렇게 안나 까레리나의 나라, 도스토예프스키의 나라, 푸시킨의 나라는 공산국가가 되었다. 어언 100년이 더 지났지만 빼앗긴 토지를 돌려받는 일은 영영 불가능해졌다. 아직도 러시아 토지의 90%는 국가가 소유한다.


루드비히 폰 미제스는 ‘민주주의란 폭력 없이 국민의 의사에 따라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정치제도’라고 말했다. 선거와 의회제도를 통해 분쟁이나 폭력, 혹은 피를 흘리는 일 없이 정권 교체를 이룩할 수 있는 것이 민주주의다. 우리는 더 이상 정권교체를 위해 피를 흘릴 필요가 없다. 다만, 민주주의의 적은 망국적 포퓰리즘이다. 포퓰리스트는 미래를 희생해 현재를 보다 풍요롭게 만들자고 꼬드긴다. 누가 포퓰리스트인지 가려내야 한다. 속으면 안 된다.


"더럽고 추한 정치 지도자가 다스리게 되는 것은 그런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었던 국민들의 착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들의 수준에 맞는 인물을 골라 낸 것일 뿐이다"(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사랑은 없다』, 이동진 번역, 14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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