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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독일서도 외면당하는 노동이사제
 
2021-12-14 11:17:30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집권당인 더불어민주당이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입법 절차를 강행할 모양이다. 대선 후보의 공공기관 이사제 입법 주문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노동이사제의 원조 격인 독일에서도 시들해진 이 제도를 도입할 이유가 없다.

독일 주식회사는 이사회를 2개씩 두고 있다. 감독이사회가 최고 기관이고 그 아래 경영이사회가 있다. 감독이사회는 경영이사를 선임하고 감독하며 해임한다. 근로자는 감독이사회에 참여할 수 있다. 근로자 수가 500명에서 1999명까지인 회사는 ‘3분의 1 참여법’에 따라 감독이사회 구성원의 3분의 1을, 근로자 수가 2000명 이상인 회사는 한국 회사법에 해당하는 ‘주식법’에 따라 그 2분의 1을 근로자로 각 주주총회에서 선임한다. 감독이사회 의장은 대주주가 추천한 이사 중에서, 부의장은 근로자 쪽 이사 중에서 맡는다. 감독이사회의 결의가 가부(可否) 동수인 경우에는 의장이 결정권을 갖는 구조다.

독일 기업들은 주로 은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므로 독일은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자본시장이 발달되지 않았고, 주식회사 비율도 전체 기업의 1% 정도다. 또, 독일에서는 산업별로 노조가 조직돼 있어 단체교섭은 주로 산별노조와 사용자단체(예외적으로 개별 사용자) 간에 진행된다. 기업 내에는 노조가 없어 개별 기업 수준에서는 근로자의 경영 참가가 어렵다. 따라서 독일은 노동이사제를 통해 기업 경영에 참가하려는 동기가 있다. 그에 비해 한국은 기업별로 노조를 조직하고, 노사협의회가 있어서 각 기업 경영진과 노조 간에 직접 단체교섭이 이뤄진다. 개별 노조가 직접 감시·소통·협력하고 직장별 파업도 빈번하다. 따라서 한국에선 노동이사제를 채택할 동기가 매우 약하다.

독일인 중에는 이 제도에 신경 쓰는 이도 거의 없다. 공시의무 외 노동이사제 규정을 위반해도 벌칙이 있는 게 아니다. 기껏해야 기업의 평판이 조금 나빠질 수 있을 뿐이다. 독일 경영학자들이 노동이사제가 경영 성과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수많은 논문을 썼지만, 이 제도로써 기업의 성과가 좋아졌다는 실증분석 결과를 도출해 낸 논문은 많지 않다. 외려 1970년대 ‘공동 결정법’에 의해 도입된 이 제도가 현대에는 부작용이 많아 폐지해야 한다는 논문이 많다. 기업 감시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2000년대 초 보다폰, 폭스바겐 사건 등 독일 굴지 기업들의 대규모 비리를 사전에 차단하지도 못했다. 다만, 이 제도를 폐지하지 않더라도 기업 운영에 큰 위협이 안 되므로 그냥 두는 편이다.

굳이 신경이 쓰이는 기업은 회사 자체를 유럽주식회사(SE)로 전환해 버린다. 유럽주식회사법은 노동이사제를 강제하지 않는다. 실제로 유럽회사법 발효 후 많은 독일 기업이 SE로 전환했고, 전환 소식은 주식시장의 호재가 돼 그 기업의 주가가 일시적으로 오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2000년 이후 독일에서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기업 수는 통계적으로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근로자가 성과와 능력을 인정받아 기업의 임원으로 발탁되는 것은 장려돼야 한다. 그러나 노조원이라는 이유로 경영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은 사람에게 감투를 나눠주는 제도를 강요하는 것은 표를 얻기 위한 얄팍한 책략으로 비칠 뿐이다. 국민은 그렇게 어리석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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