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선 칼럼

  • 한선 브리프

  • 이슈 & 포커스

  • 박세일의 창

[에너지경제] 일 좀 할만 하면 내쫓는 비효율
 
2021-11-23 16:36:51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열린 한 토론회에서 신현한 연세대 교수는 미국 경영학자들이 쓴 여러 실증적 논문을 분석하여 사외이사의 임기와 성과와의 관계를 밝혔다. "사외이사의 임기가 사외이사의 기능과 역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사외이사의 임기를 일률적으로 법률로 규율하는 것(one-size-fits-all approach)은 매우 적절하지 않다", "S&P 1,500 기업들을 조사한 결과 사외이사의 임기가 7년에서 18년 정도일 때 CEO의 경영성과가 개선되었고 주주의 이익도 증가했다", "2007~2008년 금융위기 당시 장기근속 중인 사외이사를 둔 기업은 위기에 강했다"는 내용이다.


이러한 결과는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이다. 보통 사외이사로 최초 임명되어 3년쯤 지나야 업무를 파악할 수 있게 된다. 사외이사는 회사 내 고정된 사무실도 없고, 이사회 일정이 있으면 사전에 대면 또는 비대면으로 회의 안건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사전 설명에 이의가 없으면 이사회 본 회의에 출석해 안건을 승인한다. 많은 회사에서는 임원들이 사외이사와 가급적 많은 시간을 가지고자 이사회에 이은 오찬 또는 만찬시간을 가져 소통에 힘쓰기도 하지만 사내이사처럼 회사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다. 이것저것 정보를 요구할 수는 있으나, 어떤 정보가 있는지 자체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래도 약 5~6년간 어울리다 보면 어느 정도 회사 사정을 알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위 미국 경영학자들의 논문에서 사외이사의 임기가 7년에서 18년 정도일 때 가장 회사의 성과가 좋다는 이야기는 진실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어떤가. 공무원들이 상법 시행령을 고쳐 상장회사 사외이사의 임기를 6년으로, 계열회사까지 포함 9년으로 일률적으로 제한했다. 위 미국 논문에서는 7년 정도 되어야 사외이사의 성과가 나타나고 18년쯤이면 절정에 이른다는데, 한국에서는 꽃이 피기도 전에 줄기를 자르라고 정부가 강제한다. 도대체 사기업체의 이사가 50년을 재직하든 100년을 재직하든 국가가 무슨 근거로 간섭해야 하나. 그것도 국회 입법을 피해 시행령으로 규제한다.

그 결과는 어떨까. 사외이사는 ‘값싼 장식품’에 불과하게 됐다. ‘값싼 장식품’이란, 사외이사의 봉급은, 물론 하는 일에 비해서는 많다고 볼 수도 있지만, 몇몇 대기업을 빼 놓고 그 절대액은 많지 않은데, 이사회 구성원 중에 사외이사 비율이 높을수록 좋은 지배구조라는 평가를 받기 때문이다. 이것이 입법취지는 아니지 않겠는가.

사외이사의 독립성만 강조하다보니 이렇게 됐다. 사외이사의 주요 기능은 독립성과 전문성이다. 3~6년 있다가 떠날 뜨내기와 회사의 장래를 논의하고 지혜를 모은다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사외이사는 거수기"라는 비아냥이 난무하는데, 정부가 나서서 부추기는 꼴이다. 이런 식으로 사외이사의 임기를 제한하는 나라는 한국 외 세계 어디에도 없다.


똑같은 일이 회계업계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주기적 지정감사제’ 이야기다. 2017년 개정된 외부감사법에 따르면 상장기업은 6년간의 자유계약에 의한 외부감사인 선임 후 3년 간은 증권선물위원회가 지정한 감사법인의 외부감사를 받아야 한다. 한국회계학회 회장을 역임한 송인만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회계감사인의 감사 효율성이 가장 높은 때는 선임 후 10년차인 때부터라고 말했다. 감사인이 6년 정도 그 회사를 지속적으로 감사하면 그 회사의 사정에 밝을 수밖에 없는데, 6년하고 나면 자동적으로 해촉되니, 일을 할 만 하면 내쫓기는 격이다. 그리고 3년간만을 감사할 새 회계법인이 지정된다. 이 3년짜리 회계법인은 기업의 역사와 이력도 모른 채 3년간 허둥대다 떠날 수밖에 없다. 외부감사인을 이렇게 국가가 지정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사외이사, 회계감사인 둘 다 전문성과 독립성이 중요하다. 그런데 독립성만 강조하다 보니 전문성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소홀하고, 나아가서는 기업의 자율성과 능률 따위는 무시되는, 또 다른 ‘OINK(Only in Korea)’가 되고 말았다.

◆ 칼럼 원문은 아래 [칼럼원문 보기]를 클릭하시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칼럼원문 보기]

  목록  
번호
제목
날짜
2077 [아시아경제] 선택의 기로에 선 한국과 3월 대선 22-01-13
2076 [문화일보] 文, 5년 헛발질 끝 대북정책 무위로… ‘평화 쇼’ 종북 굴종만 남긴 채 종언 22-01-13
2075 [문화일보] 한명숙·이석기 봐주기는 反법치 상징 21-12-29
2074 [아시아경제] SK㈜의 공정위 상대 행정소송은 공익소송이 된다 21-12-29
2073 [에너지경제] 영화 ‘지옥’과 중대재해처벌법 21-12-27
2072 [문화일보] 대선 ‘3대 악령’ 또 어른거린다 21-12-24
2071 [서울경제] 중대재해법 개정안, 패스트 트랙에 태워야 21-12-22
2070 [데일리안] 기업지배구조를 파괴하는 노동이사제 법안 21-12-22
2069 [조선일보] 한국과 호주의 동병상련·동상이몽 21-12-21
2068 [한국경제] 아우토반에서 배운 하르츠 개혁 21-12-17
2067 [문화일보] 노동이사제, ‘모국’ 獨서도 2000년대 들어 퇴조·회피… 韓 도입은 시대.. 21-12-17
2066 [문화일보] 이재명 ‘몽골기병대’ vs 윤석열 ‘삼각편대’… 개인기와 팀워크 격돌 21-12-15
2065 [문화일보] 청년들 앞의 지뢰밭 ‘가계빚 나랏빚’ 21-12-15
2064 [문화일보] 독일서도 외면당하는 노동이사제 21-12-14
2063 [아시아경제] 신냉전 시대의 생존전략 21-12-13
2062 [문화일보] 북한 뉴스 모니터링도 北정권 편들기 21-12-08
2061 [한국경제] 민간개발사업 토지 수용, 더 이상 안 된다 21-12-07
2060 [아시아경제] 2021년 12월의 한국 21-12-07
2059 [아시아경제]미중 대결이 한국에 주는 도전과 기회 21-12-02
2058 [한국경제] 대한민국이 중국과 '맞짱' 뜨려면… 21-11-25
1 2 3 4 5 6 7 8 9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