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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형제자매 유류분 제도 폐지에 부쳐
 
2021-11-23 16:35:51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대 중국의 문제 작가 옌롄커의 산문집 '나와 아버지' 60면 소제목은 '쓸쓸하고 차가운 빛'이다. 이 부분을 끝까지 다 읽었는데도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아 세 번을 되풀이해 읽었다. '빛'과 관련해서는 같은 페이지, "나의 삶 속에 다른 사람들보다 훨씬 많은 빛의 다발이 멀리서 미래를 밝혀주고 있는 것 같았다"는 구절이 있을 뿐이다.


중국 1960년대는 아버지의 형제들과 그 자식들은 모두 한 가족이었다. 옌롄커의 큰아버지는 무거운 방직기를 등에 메고 마을을 찾아 다니면서 양말을 짜 주는 사람이다. 며칠 만에 집으로 돌아오면 사탕과 콩엿을 아이들에게 나눠줬다. 단 한 번도 모두에게 골고루 돌아갈 만큼 사탕과 콩엿이 넉넉한 적이 없었기로, 그의 친생 자식들은 언제나 꼴찌로 받거나 아예 받지 못했다. 도시의 공장에 다니는 넷째 삼촌은 고향에 내려와 흰색 바탕에 파란 체크무늬가 아로새겨진 멋있고 화려한 단벌 데이크론 셔츠를 벗어 주저 없이 옌롄커에게 주었다. 중학생인 옌롄커가 그냥 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한국도 그 즈음엔 같은 상황이었다. 4촌까지도 모두 한 가족이었던 것이다.


법무부는 최근 형제자매의 유류분(遺留分)을 제외하는 민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발표했다. 유류분은 피상속인(사망자)의 뜻과 무관하게 상속인이 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보장된 최소한의 유산 비율을 뜻한다. 1977년에 도입된 이 제도에 따라 배우자와 직계비속(자녀·손자녀)은 법정 상속분의 2분의 1을, 직계존속(부모·조부모)과 형제자매는 3분의 1을 유류분으로 유언이 없어도 받을 수 있다. 반면 피상속인은 가족 아닌 제3자에게 유언을 통해 자신의 재산을 몽땅 상속하고 싶어도 유류분만큼은 줄 수 없다. 과거엔 주로 장남에게만 상속이 이뤄져 여성 등 다른 자녀에게도 생계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상속분을 보장해 주기 위한 것이었다. 법무부는 이 제도가 농경사회와 대가족제를 전제로 한 제도로서 도입된 지 40년이 훨씬 지난 현재, "형제자매의 유대관계가 과거보다 약해진 만큼, 고인이 자신의 재산을 더 자유롭게 처분할 수 있도록 유언의 자유와 효력이 강화돼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유대관계가 약해진 현대의 형제자매 관계는 이미 경제적 공동체로 보기 어렵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이 점에 관해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보는 것이 법무부의 입장이라면, 상법, 자본시장법, 공정거래법, 금융지주회사법, 은행법, 벤처기업육성법, 국세기본법, 법인세법, 소득세법, 상속증여세법, 부가가치세법 등 수많은 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특수관계인'을 경제공동체로 일괄 취급하는 논리는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법령상 특수관계인의 범위는 대부분 '6촌 이내의 혈족, 4촌 이내의 인척'으로 규정돼 있다.


법무부의 설명이 틀린 것은 없다. 그러나 형제자매는 촌수로는 2촌이다. 2촌도 가족으로 보지 않으면서 6촌 이내의 친족, 4촌 이내의 인척까지 묶어 규제의 틀 안에 넣고 감시하는 것은 과연 합당하다고 할 수 있는가. 독일·프랑스에서도 형제자매 간에 유류분을 인정하지 않는다고 설명하는데, 이들 나라에 한국식 특수관계인 제도가 있기는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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