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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한국서 기업 하지 말라는 중대재해법
 
2021-11-22 14:51:50
◆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반도선진화재단 선진경제질서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내년 1월 27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이 고약한 이유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이 법을 피할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불친절한 이 법률은 단 하나의 면책 규정도 없기 때문이다. 사기·강도·상해 등 대다수의 범죄는 범죄를 저지르기 전에 스스로 범행을 멈출 수 있다. 그러나 중대재해는 피하고자 결심하고 맹세한다고 해도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재해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의 의도와 무관하게 발생하기 때문이다. 일단 사업장에서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는 처벌을 피할 수 없다.

이 법률이 고약한 다른 이유는 처벌이 지나치게 강하다는 것이다. 중대재해라고 해도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고의로 사람을 사망하게 했을 리는 만무하므로 기껏해야 과실범(過失犯)인데도 불구하고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했다. 징역형 하한이 1년이므로 판사가 벌금형이 아닌 징역형을 선고한다면 반드시 1년 이상으로 해야만 한다. 이 법률이 이처럼 가혹하다는 점에서 기원전 621년 그리스 아테네 ‘드라콘(Drakon)의 성문법’을 닮았다. 드라콘의 법률이 얼마나 가혹한지, 양배추나 과일을 훔친 자도 사형에 처하게 했고, 채무를 갚지 못한 채무자는 채권자의 노예가 되거나 노예로 팔려 가야 했다. 훗날 아테네의 웅변가 데마데스는 이 법전을 두고 “잉크가 아니라 피로 쓰였다”고 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이 고약한 또 다른 이유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원 스트라이크 아웃’시키겠다는 것이다. 사업주는 대주주를 말하고, 경영책임자는 ‘사업을 대표하고 총괄하는 권한이 있는 사람 또는 이에 준해 안전 보건에 관한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고용노동부 해설서에는 ‘안전 분야 조직, 인력, 예산에 대해 최종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보통은 대표이사(CEO)를 말한다.

그러면 이 법률이 사업자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이 법률의 목적은 표면적으로는 사업주 처벌이 아니라, 재해를 예방해 인명 사고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마땅히 사업장의 안전을 증진하고 안전한 사업장을 운영할 때 어떤 인센티브가 주어지는지를 명시해야 한다. 그러나 이 법률은 인센티브는커녕 사업자의 의무와 책임, 의무를 다해도 결과적으로 발생한 사망 사고에 대한 사업주 처벌 규정만 나열하고 있다. 결국, 이 법률은 사업자에게 한국에서 더는 사업하지 말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법률의 시행이 임박한 지금 기업인들은 옴짝달싹 못 할 막다른 골목에 갇혀 있다. 기업인들이 무슨 죽을죄를 지었기에 배임죄의 굴레로도 부족해 중대재해 처벌의 굴레까지 씌우나. 국회가 찍어낸다고 다 법률은 아니다. 자연과 인간의 이성에 일치하지 않는 이런 법률은 진정한 법률이라고 할 수도 없다.

대선 후보들은 청년세대에 대한 구애에 매달리지만, 기업정책에 대한 진지한 비전을 발표하지 않고 있다. 얼마든지 청년을 고용하고 기업인 자신의 신변에 위협을 느끼지 않고 일에만 몰두하게 해 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가. 여당은 당장 이 법률의 시행을 미루고 법률의 폐지 또는 개정에 나서야 한다. 대선 후보만이라도 이 약속을 해 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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