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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아프간 종전, ‘강대국 대결체제’ 부활 신호…주한미군의 전략적 가치 커져
 
2021-09-03 14:46:06

◆ 이용준 전 외교부 북핵담당대사는 한반도선진화재단 대외정책연구회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 美 아프간 철군과 한반도 정세

美, 세계 각지 군사 개입 통한 자유주의 확산정책 실효성 없다 판단…亞·太내 中 패권 방어에 집중
韓, ‘對中 편향·모호성의 베일’ 벗어야… 美 전략적 이해 변화 따른 안보 위기 가능성 대비 필요


미국은 8월 30일 아프가니스탄 철군 완료와 동시에 20년에 걸친 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종결을 선언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스스로 싸우지 않는 전쟁에서 미군이 더 이상 죽어서는 안 된다”면서 “국익이 없는 곳에서 싸우는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은 1973년 베트남 철군과 2년 후 공산화라는 비극적 상황들과 오버랩되면서 한국 사회에 큰 충격파를 던졌다. 김일성은 1976년 미군을 살해하는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을 일으켰고, 지미 카터 미 대통령은 1977년 취임 직후 주한 미 지상군 전면 철수를 지시하기도 했다. 이 역사를 기억하는 한국 국민이 아프간 사태에 긴장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미국의 아프간 철군은 미·소 냉전체제가 무너지고 30년 만에 강대국 대결체제가 부활한다는 신호다. 따라서 미·중 대결의 주 무대인 동아시아 지역 동맹체제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도 한국 정부가 중국 편향정책을 지속하고 동맹의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한반도 안보에 최악의 상황이 몰아닥칠 수도 있다.

◇강대국 대결체제 부활 신호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손을 떼는 정책 변경의 논리적 배경은 저명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저서 ‘거대한 환상(The Great Delusion)’에 잘 기술돼 있다. 그는 독재국가를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전환하려는 미국의 자유주의적 패권주의를 실현 불가능한 ‘거대한 환상’이라고 비판하면서,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을 자유주의적 패권주의의 재앙적 실패로 규정했다. 그는 미국이 중국의 아시아 패권국 군림을 막기 위해, 미국의 이익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 세계 각지의 군사 개입을 청산하고 미·중 대결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1년 당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국무장관이던 힐러리 클린턴은 학술지 기고에서 “21세기 정치는 이라크와 아프간이 아닌 아시아에서 결정된다”고 미국의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한 바 있고, 그 이래로 미국의 이라크와 아프간 철군은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이는 미국이 한정된 국방력으로 세계의 경찰 역할을 더 이상 지속할 수 없으므로 군사력을 대중국 전선으로 집중해야 한다는 정책적 고려의 반영이었다. ‘셰일 혁명’ 이후 미국이 중동사태 개입의 당위성에서 해방된 것도 정책 전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로 인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당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이 밝혔듯이, 강대국 간 경쟁이 또다시 현실이 됐고 테러리즘이 아닌 강대국 간 경쟁이 미국 국가안보전략의 주안점이 됐다. 이는 1991년 미·소 냉전체제의 종식 이래 미국이 홀로 세계의 질서 유지를 떠맡았던 시대가 끝나고 미·중 간 강대국 대결체제가 30년 만에 본격화함을 의미한다. 미·소 냉전 시대에 대공산권 무역 통제를 위해 구축됐던 ‘대(對)공산권수출통제위원회(COCOM)’ 체제를 연상시키는 미국의 대중 과학기술통제 체제는 그런 강대국 대결 시대 도래를 알리는 디커플링 정책의 표상이다.

◇한국 안보에 주는 신호

아프간 사태를 한국 상황에 대입할 때 두 가지 우려가 제기된다. 하나는 주한미군 주둔이 바이든 대통령이 말하는 ‘미국의 국익’에 해당하는가. 다른 하나는 대중 저자세와 북한 눈치 보기로 안보와 방어 태세를 스스로 허물고 있는 한국의 태도에서 미국은 ‘스스로 싸우지 않는’ 모습을 읽는 것은 아닐까.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아프간에서의 미 철군은 한국의 안보에 부정적 영향보다는 긍정적인 영향을 더 미칠 것으로 보인다. 첫째, 미국이 중동과 아프간 군사 개입을 청산하고 중국과의 강대국 대결체제에 집중할 경우, 미·중 대결의 주된 무대가 될 동아시아 지역 동맹체제는 더욱 강화될 것이다. 미어샤이머 교수도 “중국이 야기하는 위협은 앞으로 상당 기간 한·미 동맹 관계를 더욱 굳건히 해 줄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둘째, 냉전 시대 미국은 2개의 큰 전쟁과 1개의 국지전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군사력 유지를 목표로 삼았으나, 현재는 1개의 큰 전쟁과 1개의 국지전 수행 정도가 고작이다. 미국이 아프간과 이라크에서 동시에 큰 전쟁을 수행했던 상황에서 한국은 미국의 전쟁 여력 고갈이 안보에 미칠 악영향을 크게 우려했다. 따라서 미국이 두 나라에서 철군한 것은 미국의 한반도 군사 개입 능력을 키울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셋째, 미·중 대결체제가 고조될수록 중국과 지근 거리의 주한미군 및 그 기지에 대한 전략적 가치 평가는 높아질 것이고 주한미군의 철수 가능성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더욱이 이번에 독단적 아프간 철군으로 국내외적 비판에 직면한 바이든 행정부는 향후 한국 등 여타 지역에서의 병력 감축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신중하게 판단할 가능성이 크다.

◇대한민국 안보의 미결 과제

비록 미국의 아프간 철군이 주한미군 주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작지만, 주한미군이 미·중 대결 차원 이전에 한국의 안보를 위한 역할에 더욱 충실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있다. 그건 한국 정부가 기존의 대중 저자세와 중국 편향정책이 내포하는 심각한 위험성을 깊이 인식하고 동맹의 신뢰 회복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점이다.

미·중 대결은 미국이 20년간 약 2조 달러의 자금과 2400여 명의 미군의 희생을 대가로 지켜온 아프간을 포기하고 매달릴 정도로 패권국의 흥망이 걸린 중대 사안이다. 그 상황에서 패권국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패권 도전국 중국에 편향된 정책에 집착하거나 대중 저자세로 일관하는 건 현실적으로 용인되기 어렵다. 미·중 대결의 최종 승자가 중국이 될 가능성이 매우 작다는 점이 점차 분명해진다는 차원에서도 한국은 이념과 모호성의 베일을 벗고 미·중 가운데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안미경중(安美經中)’ 같은 애매모호한 논리는 더 이상 통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이 동맹에 역행하는 행동을 해도 미국의 현실적 필요 때문에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이 일시적으로 유지될 수는 있다. 그러나 양국 간 불신이 계속되면 언젠가 동맹은 사라지고 주한미군은 기지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또 언젠가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한반도 안보 이해가 사라져, 한국 입장에 구애받지 않고 동북아에서 군사행동을 단행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한반도 안보에 최악의 상황이 덮치는 것을 막기 위해 한국 정부의 대중 저자세 행보와 중국 편향 정책은 중단돼야 한다.

전 외교부 북핵대사·차관보


■ 세줄 요약

‘강대국 대결체제’ 부활 : 아프간 철군은 미·소 냉전 종식 후 30년 만의 ‘강대국 대결체제’ 부활 신호. 이는 미국이 중국의 패권국 군림을 막기 위해 세계 각지의 군사 개입 대신 미·중 대결에 집중해야 한다는 정책적 판단에 따른 것.

한국 안보에 주는 신호 : 미·중 강대국 대결체제에서는 동아시아 지역 동맹체제가 강화되고, 미군의 한반도 군사 개입 능력 또한 커질 것. 또 주한미군과 그 기지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가치 평가 역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됨.

대한민국 안보의 미결과제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는 이념과 모호성의 베일을 벗어야. 특히 중국 편향 정책에 따른 위험성을 인식하고 동맹의 신뢰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으면 최악의 안보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음.


■ 용어 설명

‘아시아 회귀’는 이라크·아프간전 등 세계 분쟁 해결에 집중했던 미국의 대외정책 중심을 아시아로 이동시키겠다는 것. 오바마·트럼프·바이든 시대로 이어지면서 대중(對中) 견제 집중론의 토대가 됨.

‘거대한 환상’은 소위 ‘공격적 현실주의’ 이론의 대가인 존 미어샤이머 교수의 저서. 그는 막강한 힘의 우위를 가진 미국이 왜 자유주의에 바탕을 둔 패권 확산 정책에서 실패를 거듭하는지를 분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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