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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일보] ‘누구’보다 ‘어떤 사람’이 중요하다
 
2021-08-04 15:39:29

◆ 칼럼을 기고한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현재 한반도선진화재단 정치개혁연구회장으로 활동 중입니다.


대선 7개월 앞 與野 경선 공허 

국민 공감할 비전과 철학 없어

오히려 계파 내 전 악순환 조짐

현역 의원의 캠프 참여가 문제

미국선 의원이 직접 참여 안해

치열한 경선 뒤에도 분열 없어


2008년 미국 대선에서 민주당은 힐러리 클린턴 후보와 버락 오바마 후보가 ‘본선보다 더 치열한 경선’을 치렀다. 그런데 경선 와중에 오바마의 정신적 스승으로 알려진 제레미아 라이트 목사의 ‘갓 댐 아메리카(빌어먹을 미국)’ 발언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는 “9·11 사태는 미국이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며 미국 정부와 백인을 맹비난했다. 백인들에게 오바마 공격의 빌미가 되자 그는 정면 승부를 택했다.

3월 18일 한때 미국의 수도였던 필라델피아의 헌법기념관에서 그동안 금기시했던 인종 문제에 대한 연설을 했다. 오바마는 라이트 목사의 발언에 대해 “진정으로 통합이 필요할 때 분열을 일으키는 발언”이라며 동조하지 않는다고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라이트 목사의 설교를 둘러싼 논란은 미국 사회가 진정으로 극복하지 못한 인종 문제의 복잡성을 드러낸 것”이라며 “대선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성찰하고 정직하게 포용하는 기회라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221년 전 미국 건국은 백인만이 참여한 반쪽짜리였기 때문에 미국이 보다 완벽한 통합을 위해선 흑인인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 연설이 주목받은 것은 왜 오바마에게 투표해야 하고,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 왜 나와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전달했기 때문이다.

결국 오바마는 흑인에게는 희망을, 미국에는 통합을 가져다줄 수 있다는 것을 확신시켜줬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인종 문제에 대해 솔직하게 고백한 그의 연설은 역사적 연설로 평가될 것”이라고 했다. 여하튼 오바마의 진정성이 묻어난 용기 있는 필라델피아 연설 이후 힐러리 진영에선 ‘갓 댐 아메리카’ 발언을 정치 공세의 소재로 삼기 어렵게 됐다. 결국 오바마는 짧은 시간에 예전의 지지율을 회복할 수 있었다. 

당시 선거 전문가들은 이 명연설로 인해 민주당 경선의 키를 쥔 슈퍼 대의원들에게 오바마를 거부할 충분한 핑계나 명분을 주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뉴욕타임스와 CBS 뉴스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전체 등록 유권자의 60%와 민주당 예비선거 유권자 68%가 오바마가 라이트 목사와 관련한 상황을 잘 처리했다고 답변했다. 라이트 목사의 발언이 오바마 의원에 대한 판단에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도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전체의 75%에 달했다. 이 모든 결과는 오바마가 지금까지 국민을 분열시키는 전략을 취하지 않는 통합적 이미지를 구축해왔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 13년 전 미국 대통령 경선을 소환한 이유는, 대선을 7개월 앞두고 막 오른 여야의 후보 경선에 주는 시사점이 크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경선에서 선두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와 이낙연 전 대표 사이의 신경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이 지사의 바지 발언, 형수 욕설 발언, 백제 발언 등을 둘러싸고 낯뜨겁고 저급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최근 국민의힘에 기습 입당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 역시 ‘주 120시간 근로’ ‘대구 민란 발언’ 등으로 구설에 올랐다.

그러나 정작 왜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 국민이 공감하는 연설이나 메시지가 없다. 대권 경쟁이 치열했던 미국 민주당 경선에서 오바마파 대 힐러리파는 충돌하지 않았다. 독립적 헌법기관인 현역 의원들이 후보 대선 캠프에 참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떤가? 현역 의원들이 앞다퉈 특정 후보 캠프에 들어가 총괄본부장, 수행실장, 대변인 등을 맡아 대리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민의 대표라는 직책은 팽개치고 권력에 줄을 서고 있다. 따라서 경선이 끝나면 원팀은 사라지고 경선 기간 형성된 계파 간의 내전으로 한국 정치의 비극과 몰락이 시작된다. 국민의힘 내부도 벌써 ‘친윤 대 반윤’의 대립구도가 형성되고 있다. 한마디로, 한국 대선 경선은 전진하는 것이 아니라 퇴보하고 있다.

이제부터라도 후보들은 왜 자신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 어떤 정책과 비전으로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지 치열한 정치 철학과 정책 경쟁을 해야 한다. 캠프에 참여하고 있는 현역 의원들을 해방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그것이 ‘행동하는 개혁’이다. 유권자들도 누가 대통령이 될 것인지보다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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