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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경제] 계약제도와 건설안전
 
2021-07-29 09:58:11

◆ 한반도선진화재단의 후원회원이신 이순병 한국공학한림원 원로회원의 매일경제 칼럼입니다.


건설현장에서 중대재해가 나면 회사 대표는 물론 사업주에게도 책임을 묻는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령을 확정하는 절차를 밟고 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과 별도로 사내 안전보건시스템을 의무화한 것이 특징이다.

필자는 개별 현장의 안전사고는 현장소장 책임이고 회사 전체의 안전재해율은 본사 책임이라는 기준으로 회사를 관리했었다. 재해가 빈번하면 회사시스템에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다. 중대재해처벌법도 이런 관점을 기반으로 한다. ISO나 QA/QC 시스템을 이해하시는 분들은 예방적 보증체계가 형사처벌체계로 법제화됐다는 느낌도 받을 것이다. 사업주와 경영책임자들에게 자문보좌기구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사법수요가 늘어난다는 이야기다.

여기서 몇 가지 의문이 생긴다.

해외현장에서 사망사고가 났을 때 그 나라에서 외국회사 대표를 사법처리한다는 이야기를 들어 본적이 있는가? 조선업도 도급계약에 의한 주문생산인데, 조선소 독에서 사망사고가 났다고 외국선주에게 책임을 묻는가? 또 건설산업의 혁신 과제 중 하나가 모듈러인데, 하도급 전문회사가 모듈을 제작하다 사고를 내면 사업주에게도 책임이 있는가?

이런 질문에 쉽게 “아니오”라는 답이 나온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은 도급생산의 개념에서 벗어났다는 뜻이다. 글로벌스탠다드를 지향하는 취지에도 맞지 않는 국내용, 민심달래기용이라는 생각이 든다.

건설도급의 절차적 키워드는 발주-계약-생산-인도-대가지급이다.

엄밀히 말해, 공사비나 공기 부족 여부는 입찰자가 판단할 문제로, 대안을 제시하거나 입찰을 포기하면 된다. 발주자 귀책은 계약이나 시행과정에서 부당한 것을 강요하거나 묵인하는 행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따라서 건설수요자에게 현장관리의 책임을 묻는 것은 국회의원에게 정부예산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과 같다. 국회의원들은 말이 안 된다고 할 것이다. 국회의원이 장관을 불러 놓고 추상같은 질문을 할 수 있는 근거는 예산집행의 책임이 정부에 있어서다.

우리나라 공사입찰은 발주자가 산출한 공종별물량에 입찰자는 단가만 기입하도록 돼 있다. 이를 합산한 직접공사비로 낙찰자를 결정한다. 경비와 일반관리비는 직접공사비에 발주자가 정한 요율을 곱하도록 돼 있다. 지정요율보다 낮출 수 있는 항목은 이윤 뿐이다. 다만 도급계약은 총액으로 하기 때문에 투입원가가 초과되는 공종이 있더라도 자기책임하에 목적물을 완성해 발주자에게 인도해야 한다.

그런데 안전관리비항목은 입찰자가 손을 댈 수 없다. 발주자가 직접 관리하는 영역으로, 안전관리비가 부족하면 발주자가 채워줘야 한다. 증감사유가 생기면 계약금액을 변경해 줘야 한다. 또 감리자는 불법 전용 여부만 판단하면 된다. 이건 형사적 문제이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발주자 입장에서 수급자를 찾는 가장 명확한 입찰 조건은 “공고일 현재 유효한 관련법규에 따라 소요되는 비용으로 투찰하라”다. 제한적 최저가입찰이 갖는 최악의 문제는 ‘낙찰금액 맞추기’만 양산하고 있다는 것이다. 낙찰률을 올려달라고 읍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안전관리비는 낙찰 이후 생각할 문제가 되고만 것이다.

국내 건설시장은 민간건축이 60%를 차지하고 현장근로자의 85%는 팀ㆍ반장을 통해 투입된다. 사망사고의 절반은 추락사고다. 소형민간건축이 안전사각지대라는 뜻이다. 그런데 대책은 늘 ‘큰 회사, 큰 현장, 사후처벌’에만 맞춰져 있다.

어긋난 대책이 결과로 후진국형 안전재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콘크리트 물타기, 철근빼먹기 등의 부실공사가 사라진 것은 규제보다 작업자들의 거부와 고발 때문이었다. 장례문화와 공중화장실 환경이 바뀐 것도 규제가 아니라 시민의식 때문이었다.

사고가 날 때마다, 민심을 달래기 위해 법을 만들다 보니 법은 누더기가 됐다. 모두의 책임은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판사님은 법대로 벌을 줄지 몰라도 당사자들은 책임을 인정하고 반성하기보다 억울하다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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