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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일보] 억강부약의 하향 평준화
 
2021-05-27 15:24:20

◆ 박재완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의 칼럼입니다.

 

부동산 세금에 관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고민이 깊다. 민심을 달래야 한다는 주장과 부자 감세라는 반론이 맞선다. 우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2019년 20.1%로 선진국 평균인 24.9%보다 낮다. 하지만 2017년 이후 세금 증가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위다. 건강보험료 등도 가파르게 올라 이를 더한 국민부담률은 27.7%에 이른다. 재산세와 법인세 부담은 선진국보다 무겁다. 특히 종합부동산세는 2년 새 6배 넘게 늘 전망이다. 2018년 이후 법인세율을 올린 나라도 우리뿐이다. 최근 2년 12개 선진국이 세율을 내린 흐름과 대비된다.

상속세 부담은 2019년 GDP의 1.6%로 OECD 평균(0.5%)의 3배다. 상속세 최고세율도 최대주주는 60%로 가장 높다. 기업을 물려줄 때 세금을 깎아주는 가업상속공제가 있지만 대기업엔 적용되지 않는다. 소득세 최고세율도 ‘핀셋 증세’로 5년 사이 세 차례나 올랐다. 지방소득세를 포함하면 49.5%로 OECD 평균을 훨씬 웃돈다. 건강보험료, 보유세, 부가가치세 등 간접세까지 더하면 고소득자의 실효세율은 심리적 저항선인 50%를 훌쩍 넘는다. 내달 인상되는 양도소득세율은 3주택자의 경우 무려 82.5%에 달한다.

그런데도 조세부담률이 선진국보다 낮은 건 부유층에 세금이 집중된 덕이다. 성명재 홍익대 교수에 따르면 한국의 소득 10분위 배율(하위 10% 소득 대비 상위 10% 소득)은 영국 절반에도 못 미친다. 우리 소득 분포가 영국보다 공평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소득세 10분위 배율은 영국의 17배나 된다. 납세 분포가 고소득층에 쏠린 탓이다. 2019년 소득 상위 1%와 5%가 각각 소득세의 41%와 65%를 부담했고, 하위 37%는 소득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고소득층이 낸 세금과 건보료가 저소득층이 누리는 복지와 의료 혜택의 근간인 셈이다. 따지자면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장담이나 정부가 보장하라는 요구도 전자에 부담을 떠넘기는 일이다.

이렇듯 우리 세제 부담이 최상층에 편중된 것은 정치권의 편 가르기 탓이다. 소수의 부자에게서 많이 걷어 다수의 서민을 돕는다는 ‘억강부약(抑强扶弱)’의 이분법은 작게 얻고 크게 잃어 하향 평준화로 귀결된다. 참담하게 실패한 사회주의 유물이다. 공산권은 논외로 해도 20세기 중반 인도와 영국의 시행착오가 그 표본이다.

1947년 독립한 인도는 대지주에 대한 반감을 업고 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채택했다. 주요 산업 국유화, 생산 할당과 가격 통제, 경쟁 제한과 중소기업 보호에 매진했다. 생산성이 올라 할당을 넘기면 처벌하기도 했다. 최고 소득세율이 97.5%, 관세율은 평균 355%에 달했다. 열심히 일하고 경쟁·혁신할 유인이 사라지면서 1970년대 후반 인도는 인구 과반이 가난에 허덕였다. 전후 영국도 사회주의로 몸살을 앓았다. 주력 기업과 서민 주택 대부분은 국가 소유였다. 근로소득에 83%, 자산소득엔 98%의 최고세율이 붙었다. 노조의 상습 파업까지 가세해 1950~75년 영국의 생산성과 투자 실적은 선진국 꼴찌였고, 성장률도 유럽에서 가장 낮았다.

20세기 초중반 미국 보스턴시장을 네 차례 지낸 제임스 컬리는 “가난한 사람들의 시장”을 자처했다. 그는 이민 노동자인 ‘우리’와 부유한 ‘저들’의 이분법으로 인종·계급 갈등을 부추겼다. 방만한 지출과 만성 부패에 세금마저 치솟자 기업가와 전문직이 줄줄이 떠났다. 자연히 일자리가 줄고 재정도 고갈됐다. 학계에서 ‘컬리 효과’로 불리는 억강부약의 후과다.

납세는 공동체를 지탱하는 기둥이다. 공시지가의 가파른 현실화와 같은 재량행정의 횡포를 줄여야 한다. 소득이 없어도 내야 하는 보유세는 선진국처럼 과표를 너그럽게 낮춰야 한다. “다주택자에겐 고통을 주겠다”는 식의 징벌성 중과세는 자제해야 한다. 억울한 피해자를 낳는 ‘제1종 오류’나 부실 진단이 빚는 ‘제3종 오류’의 가능성 때문이다.

199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제임스 멀리스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소득세 최고세율이 차하위 구간보다 낮아야 한다는 이색 주장을 폈다. 그래야 근로·투자 동기가 유지된다는 취지다. 그의 제안을 곧이 따르진 못해도 지나친 부자 증세만큼은 바로잡아야 한다. 세금을 더 걷자면 지난달 OECD 권고처럼 성장에 충격이 덜한 부가가치세와 환경세 등의 보편 증세가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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